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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 면담 두고 여야 모두 연락”…윤영호, 통일교 재판서 尹·李측 접촉 주장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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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통일교 측 재판에서 2022년 대통령 선거 직전 여야 대선 캠프와 통일교 인사 간 접촉 정황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다. 한반도 평화 서밋 행사에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이 참석한 것을 계기로 윤석열 후보 측과 이재명 후보 측 모두 연락해 왔다는 증언이 나오자, 교단 내부에서는 책임 전가라는 반박이 맞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우인성 부장판사 심리로 16일 열린 한학자 통일교 총재와 비서실장 정모 씨 등의 정치자금법·청탁금지법 위반 사건 공판에서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은 증인으로 출석해 대선 국면 당시 정황을 진술했다.

윤영호 전 본부장은 통일교 주최 한반도 평화 서밋 행사와 관련해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이 연설한다고 하니 윤석열 후보 측과 이재명 후보 측 모두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윤 후보는 참석하겠다는 연락이 왔고, 이 후보는 제주에 가 있어서 비대면으로 하면 좋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윤영호 전 본부장은 “제 기억엔 이 후보는 참석하기 어렵다며 펜스와의 대담을 나중에 하겠다고 했고, 이 후보 측에서 최근에 이슈된 민주당 캠프 두 분은 브릿지를 해줬다”고 진술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느 인사들인지 실명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어 그는 특정 정파만 상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윤영호 전 본부장은 “물귀신이니 뭐니 말하는데, 개그콘서트 같다”며 자신이 독자적으로 정치권을 상대로 의사결정을 할 위치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통일교 간부로, 정치권 로비 창구로 지목된 이현영 전 통일교 부회장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이런 내용이 불거졌다. 특검팀은 이현영 전 부회장에게 “윤 전 본부장이 대선 3∼4주 전 ‘Y로 하면 좋겠다’, ‘한학자 총재가 윤석열을 지지하라 했다’고 말했느냐”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이현영 전 부회장은 “윤 전 본부장의 물귀신 작전이다. 참어머니 한학자 총재로 명분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답했다. 윤영호 전 본부장이 한학자 총재를 끌어들여 자신의 행보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다는 취지다. 이 전 부회장은 윤 전 본부장이 정치계 인사들에게 접근한 것은 한학자 총재 지시가 아닌 독단적 행보라고 거듭 강조했다.

 

논란의 배경이 된 한반도 평화 서밋 행사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롯데시그니엘 호텔에서 펜스 전 부통령과 직접 면담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발언들은 대선 국면에서 통일교를 둘러싼 여야 접촉이 적지 않았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평가된다.

 

이날 법정에선 한학자 총재의 신병을 둘러싼 공방도 이어졌다. 재판부는 한학자 총재에 대해 추가 심리를 진행한 뒤 보석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원칙적으로 보석은 증거인멸, 도주, 중형 선고 가능성을 고려하기에 집행정지와는 요건을 달리한다”며 “증거조사를 진행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구속 사유 소멸 여부를 가늠하기 어려워 보여 심리가 어느 정도 이뤄진 후에 보석 여부를 고민하겠다”고 설명했다.

 

한학자 총재는 지난달 14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며 보석을 청구했고, 이달 1일 관련 심문이 진행됐다. 그보다 앞선 지난달 4일에는 안과 수술 필요성을 이유로 법원에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일시 석방됐으나, 이후 연장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흘 뒤인 7일 다시 수감됐다.

 

한학자 총재는 윤영호 전 본부장 등과 공모해 2022년 1월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에게 윤석열 정부의 통일교 지원을 요청하며 정치자금 1억원을 전달한 혐의로 지난 10월 구속기소됐다. 또 2022년 4∼7월 통일교 단체 자금 1억4천400만원을 국민의힘 소속 의원 등에게 쪼개기 후원한 혐의도 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성배 씨를 매개로 김건희 여사에게 고가 목걸이와 샤넬 가방을 전달하며 교단 현안을 청탁하는 데 관여한 혐의도 공소장에 포함됐다. 정치권과 통일교 간 물밑 접촉 전반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예고된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재판부가 신문 절차와 증거조사를 더 진행한 뒤 보석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한 만큼, 향후 공판에서 추가 증언과 물증이 어느 수준까지 제시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권 역시 통일교와 대선 캠프 간 연계 의혹을 두고 여야 책임 공방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재판부는 한학자 총재와 측근들을 상대로 한 증거조사와 증인신문을 이어가며 통일교와 정치권 사이에 오간 자금과 접촉 경위를 따져볼 계획이다. 정치권은 이 사건의 수사 및 재판 경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국회는 향후 관련 입법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검토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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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한학자#윤석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