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에도 외화 포지션 갈렸다…하나 13.66퍼센트, KB 3.18퍼센트로 위험 노출 차이
고환율과 환율 변동성 확대가 이어진 가운데 국내 4대 시중은행의 외화 위험 관리 전략이 엇갈리고 있다. 3분기 들어서도 모두 외화를 순보유하는 롱 포지션을 유지했지만, 순외환 익스포저 수준과 현물·선물 포지션 구성, 리스크 허용 범위가 크게 달라지며 수익성과 건전성 사이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고환율이 지속되는 환경에서 은행별 위험 선호도와 자본 규제 부담에 따라 외화 포지션 조정 속도와 방향이 갈리고 있다고 본다.
3일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이 공시한 3분기 경영공시 자료를 보면 4대 은행 모두 자기자본 대비 순외환 익스포저를 플러스 구간에서 운용해 외화 순보유 기조를 이어갔다. 다만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익스포저를 점진적으로 줄이며 보수적 운용에 무게를 둔 반면, 하나은행은 두 자릿수 비율을 고수하며 공격적인 외화 순보유 전략을 유지했고, 신한은행은 하반기 들어 익스포저를 되레 확대하는 흐름을 택했다.

KB국민은행은 연초부터 보수적 성향의 외환 포지션 운용을 이어갔다. 현물 포지션을 마이너스로, 선물 포지션을 플러스로 가져가는 구조를 통해 외화 부채 노출을 헤지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외화를 순보유하는 전략이다. 자기자본 대비 순외환 익스포저 비율은 올해 1월 4.35퍼센트에서 2월 4.50퍼센트, 3월 4.56퍼센트, 4월 4.62퍼센트로 소폭 높인 뒤 5월 3.77퍼센트, 6월 3.55퍼센트, 7월 2.32퍼센트로 빠르게 축소했다. 이후 8월 3.04퍼센트, 9월 3.18퍼센트로 3퍼센트대 초반 수준에 머물러 4대 은행 중 가장 낮은 수준의 위험 노출을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KB국민은행의 익스포저 축소에 따라 환율 상승과 하락 모두에 대해 실적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작게 나타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나은행은 같은 기간 4대 은행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순외환 익스포저를 유지하며 대조적인 행보를 보였다. 자기자본 대비 순외환 익스포저 비율은 1월 12.73퍼센트에서 2월 13.36퍼센트, 3월 13.26퍼센트, 4월 13.56퍼센트로 13퍼센트 안팎을 꾸준히 유지했다. 5월 14.22퍼센트, 6월 14.25퍼센트로 비율을 더 끌어올렸고 7월 13.75퍼센트, 8월 13.89퍼센트, 9월 13.66퍼센트로 높은 수준을 이어가며 4대 은행 가운데 가장 큰 폭의 외화 순보유 포지션을 유지했다. 특히 5월 이후 넉 달 연속으로 현물과 선물에서 모두 매수 포지션을 가져가 외화 순보유를 적극적으로 확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구조는 환율이 추가 상승할 경우 평가이익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설계된 반면, 환율 하락 시 손익 변동폭이 크게 커질 수 있는 형태로 분석된다.
우리은행은 KB국민은행과 유사하게 외화 순보유 기조를 유지하되 리스크 축소에 방점을 찍었다. 현물 매도와 선물 매입을 조합해 외화 순보유 구조를 이어가면서도 자기자본 대비 순외환 익스포저 비율을 단계적으로 줄였다. 우리은행의 순외환 익스포저 비율은 1월 8.04퍼센트, 2월 8.87퍼센트, 3월 8.63퍼센트, 4월 8.12퍼센트로 상반기 초반까지 8퍼센트 안팎 수준을 이어갔다. 이후 5월 7.56퍼센트, 6월 7.56퍼센트, 7월 7.06퍼센트로 낮춘 데 이어 8월 5.16퍼센트, 9월 5.88퍼센트로 5∼6퍼센트대까지 떨어뜨리며 위험 노출을 축소했다. 시장에서는 우리은행이 고환율 장기화에 대비해 손익 변동성과 자본비율 부담을 동시에 관리하려 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신한은행은 연초보다 하반기에 순외환 익스포저가 확대되는 흐름을 보였다. 자기자본 대비 순외환 익스포저 비율은 1월 5.21퍼센트, 2월 5.77퍼센트, 3월 5.90퍼센트, 4월 6.12퍼센트로 상반기 초까지 완만한 상승세를 나타냈다. 5월 들어 비율을 4.59퍼센트로 낮췄으나, 이후 6월 6.16퍼센트, 7월 6.39퍼센트, 8월 7.63퍼센트, 9월 8.83퍼센트로 석 달 연속 끌어올렸다. 5월을 기점으로 현물 포지션이 줄어드는 대신 선물 포지션이 늘어나 전체적인 익스포저가 확대된 모습이다. 신한은행은 하반기 들어 해외 네트워크 관련 자산에 대한 환 헤지 비율을 축소하면서 선물 매입이 증가했고, 이로 인해 9월 말 기준 자기자본 대비 순외환 익스포저 비율이 8퍼센트 후반대까지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4대 은행을 통틀어 보면 외화 위험 노출을 관리하는 한편 외화자산 자체를 줄이는 방식으로도 대응이 이뤄졌다. 환율 상승이 외화 표시 위험가중자산을 확대시켜 자본비율 하락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외화자산 규모를 조정하며 자본 규제 부담을 낮추려는 전략이 병행된 것으로 해석된다. KB국민은행의 외화자산은 올해 9월 말 기준 449억3천100만달러로 집계돼 1년 전보다 16억2천700만달러 감소했다. 하나은행의 외화자산도 같은 기간 705억6천200만달러에서 693억3천600만달러로 줄어 12억2천600만달러 감소했다. 우리은행의 외화자산은 630억1천300만달러에서 560억2천200만달러로 69억9천100만달러 축소돼 4대 은행 가운데 가장 큰 폭의 감소를 기록했다.
은행권에서는 올해 내내 고환율이 유지되는 가운데 환율 변동성까지 확대되면서 자기자본 대비 순외환 익스포저 조정과 외화자산 축소를 병행해 수익성과 건전성 간 균형을 모색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향후 통화당국의 환율 관리 기조와 글로벌 금리 흐름에 따라 국내 은행들의 외화 포지션 전략도 다시 조정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