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GLP-1 비만약 시대…셀트리온·일동·디앤디, 효능 경쟁 본격화
GLP-1 계열 비만 치료제가 주사제 중심에서 먹는 약으로 이동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미국에서 첫 경구용 GLP-1 비만약 허가 여부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경구용 신약 후보 파이프라인을 전면에 내세우며 글로벌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체중 감소 효능은 유지하면서 근손실과 위장관 부작용, 투약 편의성 문제를 줄인 차세대 플랫폼을 선점하는 기업이 향후 비만 치료제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될 전망이다.
현재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을 이끄는 것은 노보 노디스크의 주사제 위고비와 같은 GLP-1 기반 약물이다. 업계에 따르면 노보 노디스크의 1일 1회 복용 경구용 위고비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국 FDA가 심사를 진행 중이며, 연내 허가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이미 같은 계열의 먹는 GLP-1 약물 리벨서스가 당뇨병 치료제로 승인된 바 있어, 효능과 안전성 데이터가 축적된 상황이다.

경구용 GLP-1은 환자가 스스로 투여해야 하는 주사제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복약 편의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수요가 크다. 특히 단기간 고강도 체중 감량 후 유지 요법 단계에 진입한 이들에게는 장기 복용이 가능한 경구제 형태가 매력적인 옵션으로 거론된다. 이에 따라 글로벌 제약사들은 차세대 경구용 제형 개발과 복합 기전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고, 국내 기업들도 기술 격차를 좁히려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셀트리온그룹은 이번 흐름을 정면 겨냥해 다중 타깃 비만치료제 개발 계획을 공개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최근 온라인 간담회에서 위고비로 대표되는 주사제 시대가 영구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근손실 부작용을 줄이면서 경구용 치료제로 전환하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셀트리온이 개발 중인 CT-G32는 4개 타깃을 동시에 공략하는 4중 작용제 모델로 설계돼, 기존 단일 혹은 2·3중 기전 약물이 안고 있던 개인별 반응 편차와 근육 감소 문제를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셀트리온은 CT-G32를 통해 비반응률을 5퍼센트 미만 수준으로 낮추고, 체중 감소율은 최대 25퍼센트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 분해 촉진과 대사 개선 기전을 복합적으로 묶어 약효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현재 여러 후보물질 중 성공 가능성이 높은 선도물질을 대상으로 동물 효능 평가를 진행 중이며, 내년 전임상 진입을 계획하고 있다. 후발주자이지만 글로벌 선도 기업 대비 우수한 효능을 확보해 단기간 격차를 줄이겠다는 포석이다.
일동제약은 자회사 유노비아를 통해 저분자 경구용 GLP-1 후보물질 ID110521156을 개발하고 있다. 이 물질은 펩타이드 기반 주사제와 달리 저분자 화합물 구조를 채택해 경구 흡수와 제조 효율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생산 공정 측면에서 대량 생산이 용이해 향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혈중 유효 농도를 18시간 이상 유지해 하루 1회 장기 투약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임상 1상에서 ID110521156은 4주 투약만으로 최대 13.8퍼센트 체중 감소 효과를 보여 초기 데이터부터 눈길을 끌었다. 기존 GLP-1 계열에서 빈번히 보고되는 오심, 구토, 설사 등 위장관 장애나 간독성 측면에서도 중대한 이상 반응이 관찰되지 않아 안전성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일동제약은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용량·기간을 확대하는 후속 임상을 설계해, 비만과 당뇨를 동시에 겨냥한 대사질환 치료제로 포지셔닝할 계획이다.
디앤디파마텍은 GLP-1과 GIP 두 가지 인크레틴 호르몬 수용체를 동시에 자극하는 이중 작용 경구제 MET-GGo를 개발 중이다. 최근 공개된 전임상 결과에 따르면 MET-GGo의 반감기는 약 101시간으로, 장기간 체내에 머물며 혈중 약물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특성을 보였다. 회사 측은 이 수치가 월 1회 제형으로 개발 중인 주사제 멧세라의 후보물질 MET-097i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기존 GLP-1 계열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장기 반감기라고 설명한다.
긴 반감기는 일정한 약물 농도로 인한 효능 유지와 함께 투약 용량과 횟수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급격한 최고 농도 도달을 피할 수 있어 오심과 구토 등 위장관계 부작용 발생 위험을 낮추는 효과도 기대된다. 비만 마우스 모델을 대상으로 28일간 수행한 전임상 효능 평가에서는 MET-GGo가 29.1퍼센트에 달하는 체중 감소를 보여, 글로벌 상용 약물과 비교해도 경쟁력 있는 수준의 결과를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종근당은 경구용 GLP-1 후보 CKD-514를 앞세워 글로벌 빅파마와의 격차 줄이기에 나섰다. 최근 미국비만학회에서 발표된 비임상 결과에서 CKD-514는 개선된 용해도를 바탕으로 대동물 모델에서 우수한 경구 생체이용률을 입증했다. 이는 소화관을 거치며 분해되기 쉬운 펩타이드 계열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실제 인체에서 약물이 얼마나 흡수돼 혈중에 도달하는지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다.
연구진은 CKD-514가 글로벌 경구용 비만치료제 후보 오포글리프론 대비 적은 용량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체중 감소 효과를 보였고, 동일 용량 비교에서는 혈당 강하 효과에서 우위를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후속 화합물군 역시 오포글리프론과 세마글루타이드와의 비교 시험에서 동등하거나 상회하는 대사 개선 효과를 나타냈다. 종근당은 이를 토대로 경구 흡수 효율과 대사 개선 효능을 동시 확보한 차세대 GLP-1 계열 파이프라인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국내 기업들의 잇단 진입은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이 구조적으로 재편되는 흐름과 맞물려 있다. 현재 시장을 주도하는 GLP-1 기반 주사제는 고가와 투약 불편, 장기 사용 시 근손실 우려 등 과제가 남아 있다. 이에 글로벌 빅파마는 GLP-1과 GIP, 글루카곤 등 다중 수용체를 결합한 복합 기전과 경구 제형 개발에 집중하고 있고, 국내 기업들은 비교적 빠른 임상 진입과 특화된 기전 설계를 통해 틈새를 공략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다만 경구용 GLP-1 계열 약물이 비만 치료제로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미국 FDA, 유럽 EMA,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주요 규제기관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체중 감소 효과뿐 아니라 심혈관계 안전성, 장기 복용에서의 근손실 및 대사 이상 여부, 위장관 부작용 관리 전략 등이 핵심 평가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임상 설계 단계에서부터 비만뿐 아니라 당뇨, 지방간, 심혈관 질환 등 동반 질환에 대한 통합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허가와 보험 등재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경구용 GLP-1 경쟁이 단기 유행을 넘어 비만 치료 패러다임 전환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사용자 입장에서 투약 편의성과 장기 복약 순응도는 치료 지속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경구 제형은 시장 확대의 촉매가 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강력한 체중 감소 효과에 따른 남용과 미용 목적 사용, 장기 안전성에 대한 불확실성 등 새로운 규제·윤리 이슈도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비만약 개발사가 급증하면서 효능과 안전성, 편의성을 동시에 차별화하는 전략이 중요해졌다고 진단했다. 이미 출시된 선도 약물들의 체중 감소 데이터가 상당히 우수한 만큼, 후발주자들은 이에 필적하거나 우월한 임상 데이터를 확보해야만 시장에서 존재감을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계는 국내 경구용 GLP-1 파이프라인이 실제 임상 후반부와 상용화 단계까지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과 보험 제도 변화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