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은 헌법상 책무이자 최종 목표"…이재명, 흡수통일 선 긋고 단계적 통일 구상 재확인

강태호 기자
입력

한반도 평화 구상과 대북 전략을 둘러싸고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 구상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통일 정책의 방향과 핵무장 논쟁, 그리고 미중 갈등 속 외교 노선이 맞물리면서 향후 정국과 안보 전략 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3일 튀르키예 국빈방문을 앞두고 튀르키예 아나돌루 통신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통일과 대북 정책, 동맹 외교 방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자료는 같은 날 공개됐다.

이 대통령은 "통일은 여전히 우리의 최종 목표이며, 단순한 이상이 아닌 헌법에 명시된 책무"라고 밝히면서도 "우리 정부는 일방적인 방식의 통일을 지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우리 정부는 한반도 전체 구성원의 민주적 의사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평화로운 공존과 상호 발전을 통해 점진적·단계적 통일을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일 시점과 형태를 서두르지 않고 장기적·점진적 접근을 택하겠다는 방향을 재확인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과거 제시해 온 흡수통일 배제 입장도 다시 상기시켰다. 그는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한다"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같은 기조를 유지하며 남북 체제 공존을 전제로 한 단계적 통합 구상을 강조했다.

 

구체적인 대북 정책과 관련해 이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처음 제시한 북한 비핵화 전략 E.N.D. 이니셔티브를 다시 소개하며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로 이어지는 구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현재 남북 간 모든 소통 채널이 차단되고 신뢰가 훼손되는 등 한반도는 중대한 난관에 직면해있다. 따라서 대화 재개가 저의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어떤 채널을 통해서든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을 것"이라고 말해 남북 당국 간 회담뿐 아니라 다양한 비공식 접촉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어 "평화를 위한 필수 동반자인 미국과도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평화의 중재자 역할을 요청했고, 저 자신은 평화의 촉진자로 북미대화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고 부연했다.

 

인터뷰에서는 한국의 자체 핵무장 여부를 둘러싼 질문도 나왔다. 이 대통령은 "저는 지난 미국 방문 당시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에 따라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NPT 체제를 확고히 준수할 것"이라며 자체 핵무기 개발 계획을 부인했다. 그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위협이 지속되는 가운데 어떤 도발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미의 확장 억제를 더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한미 확장억제 강화에 방점을 찍되, 독자 핵무장은 국제 규범과 동맹 구도 속에서 배제하겠다는 입장이다.

 

미중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중 관계 설정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이웃 국가인 중국과의 관계도 균형 있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지금도 최대 교역 상대국이자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위한 필수 파트너"라며 "과거의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협력을 발굴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안보는 한미동맹을 축으로 하되, 경제와 공급망 분야에서는 중국과 협력을 유지하는 이른바 안보·경제 분리 전략을 시사한 대목으로 해석된다.

 

동북아 안보 환경과 관련해서도 우려를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동북아에서 군비 경쟁이 격화되고 대결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북핵 및 미사일 위협 대응을 위해 한미동맹을 미래를 향한 포괄적 전략적 동맹으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중국과의 우호 관계도 유지하며 동북아의 긴장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강한 동맹과 중국과의 관리된 협력을 병행해 긴장을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한편 이 대통령은 곧 이뤄질 튀르키예 국빈방문을 앞두고 양국 간 실질 협력 확대 구상도 제시했다. 그는 "한국 기업의 튀르키예 시놉 원전 프로젝트 참여와 관련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세계적인 수준의 한국 원전 기술과 안전한 운영 능력을 바탕으로, 튀르키예의 원자력 발전 역량 제고에 기여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아랍에미리트의 바라카 원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등 지난 20년간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실적을 쌓았다"며 "정해진 기간과 예산 안에서 사업이 추진되도록 하는 최적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방·방산 협력과 관련해 이 대통령은 "튀르키예는 무인기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에 있고, 한국은 전차·자주포 등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며 상호 보완적 협력 확대를 제안했다. 원전·방산 분야에서의 전략 협력이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릴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통일과 대북정책, 한미·한중 외교 구상, 원전·방산 경제협력까지 포괄하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공개되면서 국내 정치권에서도 안보와 외교 노선을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크다. 국회는 향후 외교통일위원회를 중심으로 통일 정책의 구체적 이행 전략과 NPT 체제 준수 하에서의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며, 정부는 튀르키예 방문 결과를 토대로 남북 관계와 동맹·경제 외교를 연계한 후속 전략을 검토할 예정이다.

강태호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이재명대통령#한미동맹#한중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