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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고 흐린 날, 제림을 거닐다”…제천 가을 풍경에 스며드는 여유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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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천을 찾는 사람들은 흐린 하늘과 잔잔히 내리는 비에 더욱 마음을 맡긴다. 예전엔 비 오는 날 외출을 삼가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의 제천 여행자들은 오히려 빗방울 속으로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사소한 흐림과 습기가, 오히려 깊은 계절의 여운을 더한다.

 

충청북도 제천시의 의림지는 삼한 시대부터 이어진 우리나라 수리 문화의 살아 있는 상징이다. 신라 진흥왕 시절 악성 우륵이 둑을 쌓았다는 전설과 조선시대의 여러 기록이 스며 있는 곳. 특히 수백 년 된 소나무와 버드나무들이 제방 위를 감싸며, 지금도 제림 특유의 고요와 운치를 만들어낸다. 명승 제20호로 지정된 의림지 근처를 걷다 보면, 비 내리는 호수와 정자(영호정·경호루)가 어우러진 풍경에 무심코 발길이 멈춘다. 흐린 날씨엔 호수 위로 운무가 피어나,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덧입혀진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제천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제천

최근 SNS에선 제천 옥순봉 출렁다리 인증샷도 자주 눈에 띈다. 청풍호 위를 가로지르는 222m의 다리는, 야자매트 트래킹길과도 연결돼 비 오는 날 걸어도 미끄럽지 않다며 호평이 이어진다. 실제로 데크로드를 걷다 보면 발 아래 펼쳐지는 푸른 호수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여행자의 감성을 한껏 자극한다. 다리 위를 지날 때 불어오는 촉촉한 바람에 온몸이 ‘가을을 걷는다’는 실감을 준다는 후기도 많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제천시는 10월 들어 평일에도 관광객 발길이 적잖이 이어지고, 주말이면 자연 풍광을 감상하며 산책이나 사색을 즐기는 여행자 비중이 체감상 더 늘었다고 전한다.

 

현대여행트렌드연구소 한유진 책임연구원은 “최근엔 명소를 ‘날씨 좋은 날에만’ 찾는 공식이 옅어지고 흐린 하늘, 비 오는 날의 고요한 풍광을 일부러 즐기러 오는 여행자가 늘고 있다”며 “특히 제천처럼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공간에선 계절과 날씨의 감각을 온전히 마주하는 그 순간이 여행의 본질”이라고 느꼈다.

 

여행 커뮤니티에는 “우산을 쓰고 제림을 걷다 보면, 시간도 생각도 느릿해진다”, “빗소리에 감정이 씻기는 기분”처럼, 평소엔 지나치기 쉬운 풍경이 새롭게 들어온다는 반응들이 이어진다. 혼자든, 둘이든, 소란하지 않은 가을 제천의 길 위에서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경험담도 돋보인다.

 

작고 사소한 변화지만, 그 안엔 달라진 여행의 태도와 삶의 리듬이 담겨 있다. 제천의 이번 가을, 날씨는 흐리지만 자연을 직면하는 감각은 오히려 선명하다. 흐린 날의 여행이 주는 휴식과 사색, 그 조용한 여운을 기억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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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의림지#옥순봉출렁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