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AI 자산 가격 과열 경고”…미국발 기술주 급락, 한국 증시 동반 출렁이며 변동성 확대

권하영 기자
입력

현지시각 기준 20일 미국(USA) 뉴욕 증시에서 인공지능(AI) 관련주를 중심으로 급격한 매도세가 쏟아지며 기술주가 일제히 하락한 여파가 하루 늦게 한국(Korea) 증시를 강타했다. 21일 서울 증권시장에서 코스피는 3%대 후반 낙폭을 기록하며 3,850선까지 밀려났고, AI 버블(거품) 우려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관통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1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51.59포인트(3.79%) 하락한 3,853.26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미국 엔비디아의 호실적에 힘입어 1.92% 상승하며 사흘 만에 4,000선을 되찾았지만, 불과 하루 만에 4,000선과 3,900선을 모두 내줬다. 장중 한때 지수는 오후 1시 51분께 3,838.46까지 밀려 3,800선 붕괴 가능성까지 노출했다.

코스피 3.79% 급락 3,853.26 마감…AI 버블 우려에 반도체·대형주 동반 약세
코스피 3.79% 급락 3,853.26 마감…AI 버블 우려에 반도체·대형주 동반 약세

직접적인 충격은 전날 뉴욕 증시에서 비롯됐다. AI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술주에 투매가 발생하며 미국 3대 주요 지수가 동반 하락했고, 업종 전반의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됐다. 엔비디아 주가는 실적 기대에도 불구하고 3.15% 하락 마감했고,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10.87% 급락했다. AMD는 7.84%, 팔란티어는 5.85% 떨어졌으며, 인텔(-4.24%), 퀄컴(-3.93%) 등 주요 반도체 종목도 약세를 피하지 못했다.

 

AI·반도체 관련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4.77% 하락해, 글로벌 반도체 섹터 전반에 대한 리스크 회피 심리가 강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엔비디아가 시장 전망치를 상회하는 실적을 내놓았음에도 매출 채권 증가가 부각되며 밸류에이션에 대한 의문이 커진 점이 투자 심리를 약화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거품 우려를 키운 것은 통화정책 당국자의 발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리사 쿡 이사는 최근 “고평가된 자산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증가했다”고 언급하면서, AI 관련 자산을 포함한 위험자산 전반에 대한 조정 가능성이 시장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이 같은 경계 발언은 고점 논란이 제기돼 온 AI 성장주에 대한 차익 실현을 자극해 글로벌 매도 압력을 키우는 기폭제가 됐다.

 

시장 구조 요인도 하락폭 확대에 한몫했다. 최근 글로벌 증시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옵션 만기일을 앞두고 추세 추종형(CTA) 펀드의 기계적 매도가 가세하며 낙폭이 깊어졌다는 분석이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CTA 펀드는 지난주부터 매도세가 이어져 온 가운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기준으로 지지선이었던 6,725포인트를 하회하자 기계적인 매도세가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프로그램성 매물은 단기 변동성을 증폭시키며 글로벌 증시의 동반 조정을 이끌고 있다.

 

미국 기술주 급락은 한국 증시에서도 곧바로 반도체 대형주 약세로 번졌다. 최근 지수 상승을 견인해 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일제히 밀리며 코스피 하락을 주도했다. 삼성전자는 5% 넘게 빠지며 이른바 ‘10만 전자’로 불렸던 주가 수준을 다시 반납했고, SK하이닉스 역시 9%에 육박하는 낙폭을 기록했다. LG에너지솔루션 등 시가총액 상위 대형주 전반이 약세를 보이며 지수 하락세를 키웠다.

 

글로벌 투자은행과 국내 증권가는 AI 관련 자산의 밸류에이션 부담에 금리와 수급 불확실성이 얽히면서 단기적으로 변동성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김지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 실적 발표 이후 미국 빅테크와 AI 관련 밸류체인의 주가 회복 시도가 있었으나 아직은 여의치 않은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실적 발표로 산업 수요에 대한 불확실성은 일부 완화됐지만, 투자를 집행하는 주체들의 자금 조달과 관련된 경계심이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까지 시장의 여진이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성훈 키움증권 연구원도 “다음 주에도 AI 버블 우려를 잠재울 만한 주요 이벤트가 부재한 점이 부담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12월 FOMC 전까지 관련 노이즈가 지속되고, 미국 증시는 매물 출회와 저가 매수 자금 유입이 맞부딪히는 가운데 변동성 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 주요 매체들도 AI 랠리를 이끌어 온 기술주 조정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경제지들은 엔비디아 호실적에도 주가가 하락한 점을 두고 “AI 붐의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전 과열 조정 국면”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AI 거품 론이 가시화될 경우 글로벌 기술주 재평가가 불가피하다”는 경고도 나온다. 유럽(Europe) 금융권에서도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 급락을 계기로 반도체 중심의 성장주 쏠림 현상에 대한 리스크 관리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향후 글로벌 증시는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과 AI 성장주의 실적 모멘텀, 그리고 밸류에이션 조정 속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AI와 반도체 산업의 중장기 성장성에는 여전히 이견이 크지 않다고 보면서도, 단기적으로는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 증시가 조정과 반등이 반복되는 불안한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고 전망한다. 국제사회와 금융시장은 AI 자산 가격 조정이 실물경제와 금융안정에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권하영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미국ai거품우려#코스피급락#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