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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항노화 AI신약"…한미그룹, 2030 매출 5조로 재도약 노린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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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오믹스 기반 신약개발 전략이 제약·헬스케어 그룹의 성장판을 다시 열고 있다. 한미그룹이 2030년까지 계열사 합산 매출 5조원을 제시하며 비만과 항노화, 디지털헬스케어, 로보틱스를 축으로 한 중장기 비전을 공개했다. 비만과 고령화가 맞물린 글로벌 보건 패러다임 전환기에 맞춘 포트폴리오 재편으로, 업계에서는 이번 발표를 AI 기반 고부가 신약과 메드테크 융합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도 나온다. 매출 성장뿐 아니라 20퍼센트대 영업이익률과 최소 주주환원율 제도 도입 등 자본시장 친화 전략도 병행한다.

 

한미그룹은 4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신사옥 한미 C&C 스퀘어에서 주요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를 대상으로 기업설명회를 열고 2030 성장 로드맵을 제시했다. 목표는 계열사 합산 매출 5조원으로, 올해 예상 매출 약 2조원 대비 연평균 20퍼센트 수준의 성장을 전제로 한 수치다. 그룹은 중심 축을 비만, 안티에이징, 디지털헬스케어, 로보틱스 등 4개 영역으로 명확히 규정했다.

지주사 한미사이언스는 사업 구조를 두 갈래로 재편한다. 첫째는 한미약품과 북경한미, 한미정밀화학으로 이어지는 신약·바이오 중심 축이다. 둘째는 JVM, 온라인팜, 의료기기, 컨슈머헬스케어를 묶은 약품 외 사업군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한미사이언스 내에 기획전략본부와 Innovation본부를 신설해 그룹 미래 사업 발굴과 전략 실행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겼다. 두 조직은 김재교 부회장이 직접 구축한 조직으로, 포트폴리오 조정과 투자를 일원화해 속도를 높이려는 구상이다.

 

새 체계에서 약품 부문과 Medtech와 헬스케어 부문이 균형 있게 성장하는 구조가 목표다. 한미사이언스 계열사 JVM은 기존 의약품 조제 자동화 장비에 더해 로보틱스 기반 신규 자동화 솔루션으로 사업을 확장한다. 의료기기 분야는 수술용 치료재료 위주에서 기구와 기계까지 영역을 넓히고 글로벌 유통망을 강화한다. 의약품 유통기업 온라인팜은 약국과 병원을 잇는 디지털 플랫폼 신사업을 확대해 데이터와 연결성이 핵심이 되는 디지털헬스케어 허브로 진화하겠다는 그림을 제시했다.

 

글로벌 전략도 병행된다. 한미그룹은 미국을 최우선 진출 거점으로 삼고, JVM 중국 생산법인 설립을 통해 생산·공급 기반을 넓힌 뒤 유럽과 중동, 남미, 동남아 등으로 공략 속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한미사이언스는 여기에 헬스케어 사업 확장을 더해 의약품과 의료기기, 서비스가 결합된 다층적 사업 모델을 추진한다.

 

핵심 계열사 한미약품은 2030년까지 국내 매출 1조9000억원, 해외 매출 1조원을 합한 2조9000억원 매출 목표를 내놨다. 매년 연매출 100억원 이상 규모의 대표 제품을 최소 1개 이상 출시하겠다는 펀더멘탈 지표도 제시했다. 세계 최초 3분의1 저용량 항고혈압제 아모프렐, 국내 제약사 최초 GLP 1 계열 비만 치료제 후보 에페글레나타이드, 롤론티스 오토인젝터 등은 기존 블록버스터를 뛰어넘는 플래그십 제품군으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한미약품은 혁신성 전략 측면에서 이미 축적한 개발 기획과 임상 역량을 활용해 글로벌 특허 만료 품목을 타깃으로 맞춤형 신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 특허 만료 이후에도 차별화된 제형, 투여 편의성, 병용 전략 등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식이다. 글로벌 제약사와의 파트너십과 공동 마케팅을 적극 확대해 기술수출과 공동개발을 병행하며 수익성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한미약품 R&D센터는 그룹의 미래가치를 담당하는 조직으로, 건강한 고령화를 키워드로 한 연구 전략을 공개했다. R&D센터장 최인영 전무는 GLP 1 계열 약물이 비만 치료를 넘어 전신 염증과 신경염증을 줄여 노화를 지연할 수 있다는 최근 연구 흐름을 소개했다. 그는 항암 신약뿐 아니라 비만을 세분화한 맞춤형 치료제와 항노화 연구를 병행하며 파이프라인을 넓혀가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 바이오인포매틱스, 다양한 생체 정보를 통합 분석하는 오믹스 인프라를 구축해 신규 타깃 발굴과 다양한 모달리티 연구 역량을 강화한다. 모달리티는 항체, 펩타이드, 유전자, 세포 등 약물의 형태를 뜻하며, 한미약품은 질환별로 최적 모달리티를 조합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혁신 항암 신약 개발과 동시에 H O P 프로젝트를 고도화하고, 항노화와 역노화 분야 연구에 집중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H O P 프로젝트의 차세대 삼중작용제 HM15275는 GLP 1 등에 기반해 비만 수술 수준의 체중 감소 효과를 목표로 한다. 동시에 근육량 증가를 통해 체지방 위주의 감량을 유도하는 신개념 비만 치료제 HM17321도 개발되고 있다. 두 후보물질 모두 GLP 1 축을 이용하면서도 에너지 대사, 근육과 지방 조직 조절을 복합적으로 겨냥한다는 점에서 기존 단일 작용 약물과 차별화된다. 회사는 비만과 노화의 공통 병리기전을 활용해 항노화 효과를 추가로 규명하는 전략으로 연구 범위를 넓힌다.

 

항노화와 역노화 프로젝트에서는 인크레틴 기반 약물이 주요 검증 수단으로 활용된다. 인크레틴은 혈당 조절을 돕는 호르몬군으로, GLP 1이 대표적이다. 한미약품은 2030년경 항암, 비만, 대사성 질환을 아우르는 파이프라인이 항노화 연구로 확장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의약품 자동 조제 솔루션 글로벌 기업 JVM은 로보틱스와 소프트웨어를 축으로 한 자동화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올해 예상 매출은 약 1700억원으로, 2030년까지 5000억원으로 키워 약 3배 성장, 연평균 24퍼센트 증가를 목표로 한다.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약국·병원 조제 업무를 자동화하는 하드웨어와 운영 소프트웨어를 패키지로 제공하는 방식이 핵심이다.

 

재무와 주주정책 측면에서도 공격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미사이언스는 2030년까지 영업이익률 25퍼센트 이상을 계획하고 있다. 의료기기와 뷰티케어 분야의 고부가 사업 비중을 늘리고, 계열사 성장 견인으로 수익성을 끌어올리겠다는 시나리오다. 한미약품과 JVM도 각각 20퍼센트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목표로 설정했다. 한미약품은 글로벌 수준 R&D 역량을 기반으로 라이선스 아웃과 국내외 블록버스터 신약 출시를 통해, JVM은 북미와 유럽 매출 확대와 소프트웨어 사업 강화로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복안이다.

 

주주환원 정책도 구체화했다. 그룹은 최소배당금제도를 우선 도입하고, 성장에 따른 이익을 주주에게 돌리기 위해 최소 총주주환원율 제도를 함께 운영한다. 한미사이언스는 30퍼센트, 한미약품과 JVM은 각각 20퍼센트 이상의 총주주환원율을 목표로 제시했다. 자사주 매입과 임직원 주식기반보상 제도를 통해 인재 유치와 성과 공유를 동시에 추구하며, 안정적인 주주환원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전략은 기술개발 투자와 자본시장 신뢰 확보 사이의 균형을 겨냥한다. AI, 바이오인포매틱스, 오믹스 등 R&D 인프라 투자는 초기 비용이 크지만, 글로벌 기술수출과 특화 시장 점유율 확대를 통해 장기적으로 고마진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반면 단기간 성과에 대한 투자자 요구가 높은 만큼, 최소 환원율 제도를 통해 중장기 투자와 단기 주주 가치를 동시에 관리하겠다는 의도다.

 

김재교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 부회장은 이번 포트폴리오 재편을 그룹 성장축을 다변화해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약과 바이오 역량을 고도화하면서 약품 외 사업군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해 사업 연계 구조를 확장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는 2030년을 향한 R&D 중심 장기 성장 전략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항암과 비만을 넘어 항노화와 역노화 연구로의 확장이 인류 구조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의약품을 만들어 글로벌 제약시장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겠다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헬스케어 시장에서는 이미 GLP 1 비만 치료제와 항노화 연구, 디지털헬스케어, 병원 조제 자동화 등에서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한미그룹이 제시한 2030 비전이 실제 매출 5조원과 20퍼센트대 수익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리고 AI와 오믹스를 접목한 비만·항노화 파이프라인이 글로벌 무대에서 얼마나 존재감을 보여줄지에 산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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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그룹#한미약품#jv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