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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 수술법도 AI 추천 시대…서울성모병원, 치료전략 정교화

강예은 기자
입력

인공지능이 간암 수술 전략을 정교하게 추천하는 도구로 올라서고 있다. 간세포암 환자에게 간이식과 간절제술 중 어떤 수술이 더 유리한지 3년 생존률을 예측해 제시하는 모델이 국내 의료진에 의해 개발됐다. 수술 방법 선택은 그동안 환자 상태와 공여자 여건, 국제 지침을 토대로 이뤄져 왔지만 경계선 환자에서는 의사 결정이 쉽지 않았다. 새 인공지능 모델은 이런 회색지대 환자의 위험도와 예후를 수치로 제시해 의료진 판단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업계에서는 한정된 장기 이식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면서 환자 맞춤 치료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성모병원 연구팀이 구축한 인공지능 모델은 간세포암 환자에게 간이식과 간절제술 중 어느 수술이 더 효과적인지를 예측하는 의사결정 지원 도구다. 연구는 한지원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와 가톨릭의대 의학과 김현욱 학생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연구팀은 한국중앙암등록본부와 서울성모병원 데이터를 활용해 총 4529명의 간세포암 환자 데이터를 후향적으로 분석했다. 이 가운데 3915명 데이터를 모델 개발에 활용하고, 614명을 별도 외부 코호트로 검증에 사용해 재현성과 신뢰도를 확보했다.

간세포암은 원발성 간암 가운데 약 80~90퍼센트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형태다. 간세포에서 직접 발생하는 암으로, 만성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 알코올성 간질환,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 등이 주요 위험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간세포암에서 근치적 치료를 목표로 하는 대표적 수술법은 간이식과 간절제술 두 가지다. 간이식은 암으로 손상된 간 전체를 제거하고 새로운 간을 이식해 종양과 기저 간질환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 재발률이 낮은 장점이 있다. 반면 공여자 부족과 면역억제제 장기 복용에 따른 합병증, 다른 장기 암 발생 위험 증가 같은 문제가 뒤따른다. 간절제술은 암이 위치한 간의 일부만 절제하는 수술로, 공여자가 필요 없고 수술 후 관리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다만 기저 간 기능이 나쁘거나 종양이 다발성일 경우 적응증이 제한된다.

 

임상 현장에서는 환자 상태와 종양 특성, 공여자 여부 등을 토대로 국제 가이드라인에 맞춰 수술법을 정해 왔다. 그러나 간 기능이 비교적 좋고 종양 크기나 개수, 위치가 애매하게 경계선에 걸린 회색지대 환자의 경우 어떤 수술을 선택해야 생존률이 더 높을지 판단이 쉽지 않다. 연구팀은 이런 임상적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인구통계학적 요인, 간 기능과 같은 임상 변수, 종양 크기와 개수, 위치 등 종양 관련 변수까지 총 30개 항목을 모아 인공지능 학습에 투입했다. 각 환자에 대해 간이식 또는 간절제술을 받았을 때의 3년 생존 확률을 시뮬레이션하는 방식으로 모델 성능을 평가했다.

 

알고리즘별 성능 비교 결과, 간이식 예측에는 지지벡터머신 모델이 가장 뛰어난 정확도를 보였다. 지지벡터머신은 데이터 사이의 최적 경계를 찾아 분류하는 기계학습 기법으로, 이번 연구에서 곡선하면적 지표 기준 정확도가 82퍼센트를 기록했다. 간절제술 예측에는 여러 결정 트리를 결합해 이전 예측 오류를 단계적으로 줄여 나가는 캣부스트 모델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캣부스트 기반 간절제술 예측 모델의 곡선하면적 정확도는 79퍼센트를 기록했다. 두 모델 모두 의료 데이터처럼 변수가 많고 복잡한 환경에서 예후 차이를 분류하는 데 필요한 수준의 성능을 확보한 셈이다.

 

연구팀은 새 인공지능 모델이 실제 임상 의사결정에 적용될 경우 생존률 개선 폭도 정량적으로 제시했다. 모의 분석에서 기존 임상의 결정과 비교해 인공지능 모델이 권고한 수술법을 따랐을 때 환자 사망 위험이 54퍼센트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적 유의성도 높게 확인돼 단순한 이론 모델을 넘어, 실제 치료 전략 수립에 투입할 수 있는 수준에 접근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기존 가이드라인으로 판단이 어려웠던 경계선 환자에서 인공지능 권고가 더 큰 차이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모델이 자원 배분 측면에서 가져올 변화도 주목된다. 분석 결과 인공지능 모델은 기존 간이식 환자의 74점7퍼센트를 간절제술로 재분류했고, 반대로 간절제술을 받았던 환자 가운데 19점4퍼센트에게만 간이식을 권고했다. 의료진은 이를 두고 “간이식이 전반적으로는 우수한 치료법이지만 이식 후 장기적인 면역억제제 관리와 공여자 부담을 감안하면, 수술만으로도 비슷한 예후를 보일 수 있는 환자를 더 세밀하게 가려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여 장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불필요한 이식을 줄이고 꼭 필요한 환자에게 자원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이식 정책을 재구성할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A씨로 소개된 모의 사례에서도 인공지능 모델의 차별점이 드러났다. 만성 B형 간염을 앓던 50대 남성 A씨는 경동맥화학색전술 후 생체 간이식을 통해 간암을 치료했지만, 10년 뒤 위암이 발생해 위 절제술까지 받아야 했다. 연구팀이 이 환자를 인공지능 모델에 적용한 결과, 초기 치료에서 간이식 대신 간절제술을 우선 권고하는 대상으로 분류됐다. 의료진은 “면역억제제 장기 복용으로 인한 합병증과 다른 장기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진 것이 위암 발생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며 “당시 인공지능 모델 분석이 가능했다면 간이식팀과 논의 끝에 간절제술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 의료기관 빅데이터를 활용해 실제 임상에서 쓸 수 있는 예측 모델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간이식과 간절제술 중 선택은 환자 개인의 생존과 삶의 질은 물론, 국가 의료 재정과 이식 자원 운용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인공지능 모델은 다양한 환자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 생존 예측을 수치화함으로써 기존의 정성적 판단을 보완하는 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 특히 3년 생존률이라는 명확한 지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환자와 의료진이 치료법을 논의할 때 의사결정의 근거를 더 투명하게 제시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간암 수술 전략 최적화 시도는 이제 막 본격화되는 단계에 있다. 미국과 유럽 일부 연구진이 간 기능 점수, 영상 데이터, 종양 특성을 결합한 예측 모델을 선보이고 있지만, 실제로 대규모 국가 암 등록 자료와 단일 상급종합병원 데이터를 함께 활용해 검증한 사례는 많지 않다. 서울성모병원 연구는 한국 환자 특성에 맞춘 모델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국내 의료 현실에 더 적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향후 국제 데이터와 통합 검증이 이뤄질 경우, 아시아 환자에 특화된 글로벌 표준 모델로 확장될 여지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연구팀은 후향적 분석에 기반한 이번 모델이 실제 진료 현장에 바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전향적 검증이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수술 전 단계에서 인공지능 예측값을 제시하고, 그 권고를 반영해 수술법을 선택한 뒤 실제 예후를 수년간 추적하는 임상시험이 뒤따라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인공지능 결과는 어디까지나 보조 도구로 활용되고 최종 결정은 의료진과 환자가 함께 내려야 한다는 점도 강조된다. 의료 AI에 대한 규제와 가이드라인 정비, 알고리즘의 설명 가능성 확보도 필수 과제로 거론된다.

 

이번 연구가 미래 의료인력 양성 측면에서 갖는 의미도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간암 치료에 정통한 의사과학자 교수의 지도 아래 의과대학 재학생이 주도적으로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임상의와 데이터과학 역량을 겸비한 차세대 인재 양성 사례로 주목된다. 의료 현장에 특화된 AI 솔루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질환 특성을 이해하는 임상의와 알고리즘 개발자가 초기 기획 단계부터 협력하는 구조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로 풀이된다.

 

한지원 교수는 “이번 간암 환자 맞춤형 치료법 인공지능 모델은 간절제술과 간이식 각각에 대해 환자 개인별 예상 생존률을 제시함으로써 최적 수술 계획을 세우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며 “향후 전향적 검증과 추가 고도화를 거쳐 실제 진료 현장에서 환자 예후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산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이식 수술처럼 고난도·고비용 치료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실제 자원 배분과 치료 성과를 함께 끌어올릴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강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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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병원#간세포암#인공지능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