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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융합 성과전서 나노신소재·현대차 수상…첨단산업 기반 재조명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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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기술이 반도체와 배터리, 모빌리티 등 국가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떠받치는 핵심 기반 기술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차전지 성능을 끌어올리는 탄소나노튜브 소재부터 비침습 폐암 진단에 도전하는 나노바이오 센서까지, 연구실 단계에 머물던 기술이 실제 산업과 의료 현장으로 스며들면서 나노융합 생태계도 재편되는 분위기다. 업계와 정부는 이번 나노융합성과전을 나노산업이 상용화 장벽을 넘어 첨단산업 게임 체인저로 도약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26일 2025년 나노융합성과전을 열고 한 해 동안 축적된 나노융합 연구개발 성과를 공유했다. 14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는 산학연 연구자와 기업이 한자리에 모여 나노기술의 산업 적용 사례와 향후 전략을 논의하는 교류의 장으로 마련됐다.  

정부는 나노기술의 상용화와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인물들을 선정해 정부 포상을 수여했다. 이차전지 양극 도전재용 탄소나노튜브 슬러리를 제품화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송세호 나노신소재 상무이사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탄소나노튜브 슬러리는 전기적 전도성이 높은 탄소나노튜브를 균일하게 분산시킨 소재로, 배터리 양극 활물질과 혼합해 전자 이동 통로를 촘촘히 만들어준다. 송 상무는 이 기술을 통해 고용량 양극에서도 전도성 저하를 줄이고 출력 특성을 개선해, 차세대 배터리용 고성능 소재 시장 진입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탄소나노튜브섬유 소재기술을 개발하고 특허화해 적용 연구를 주도한 윤덕우 현대자동차 책임연구원이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탄소나노튜브섬유는 나노 수준의 튜브 구조를 섬유 형태로 집적한 소재로, 구리 수준의 전기전도성과 탄소섬유급 기계적 강도를 동시에 노릴 수 있는 차세대 경량 소재다. 윤 책임연구원은 이 소재를 전기차 하네스, 고전류 전력선, 차체 경량화 부품 등 모빌리티 시스템 전반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를 이끌며 에너지 효율 향상과 주행거리 증대에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연구 현장과 산업계의 지속적인 기여를 인정하는 장관 표창도 이어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표창 4점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 4점이 나노기술 혁신과 나노융합 산업 발전에 공로가 큰 연구자와 산업계 관계자에게 돌아갔다. 차세대 나노소자와 바이오센서, 고기능성 나노소재 등 다양한 분야의 수상 사례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차세대 인재와 초기 연구성과를 겨냥한 시상도 있었다. 나노 관련 아이디어 경진대회인 나노영챌린지 2025 대상팀과, 신개념 나노구조 소자를 겨루는 나노소자콘테스트 최우수 수상자에게 과기정통부 장관상이 수여됐다. 정부는 이들 수상 팀과 수상자를 차세대 연구 리더로 육성하기 위한 후속 지원과 연계할 계획으로 보인다.  

 

행사에서는 수상에 그치지 않고 모빌리티와 소재, 바이오 헬스 등 주요 산업 분야에 적용 중인 나노기술의 수요와 방향성도 집중 조명됐다. 윤덕우 현대자동차 책임연구원은 모빌리티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한 나노테크놀로지를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섰다. 강연에서는 전기차 전력 손실을 줄이는 고전도성 나노소재, 배터리 내부 저항을 낮추는 전극 나노구조 설계, 경량 차체를 위한 나노복합소재 등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 수요와 실제 시험 적용 사례가 소개됐다. 특히 전비 향상과 주행거리 연장을 위해 전동화 파워트레인과 배터리 팩, 열관리 시스템 전반에 나노 소재와 코팅 기술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가 강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과공유 포럼에서는 나노융합 기술의 상용화 사례와 기술적 차별점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박은수 이엠엘 대표는 세계 수준의 고특성 비정질 연자성 분말 소재 국산화 성과를 발표했다. 비정질 연자성 분말은 주파수 손실이 적고 자속 밀도가 높은 특성을 지닌 소재로, 전기차 구동 모터, 고효율 전력변환장치, 통신용 인덕터 등에서 코어 손실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핵심 소재로 꼽힌다. 박 대표는 해외 의존도가 높던 이 소재를 국내 기술로 개발해 자구 구조 제어와 조성 최적화를 통해 손실 특성을 글로벌 상위권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이를 활용한 부품의 양산 적용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나노기술과 바이오를 결합한 진단 분야 성과도 주목받았다. 이대식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나노바이오 가스센서 기반 비침습 폐암 진단 시스템 기술을 발표했다. 이 기술은 호흡 내 극미량 휘발성유기화합물 패턴을 나노구조 센서 어레이가 감지하고, 이를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과 결합해 폐암 여부를 판별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조직검사나 방사선 촬영과 달리 환자에게 물리적 부담이 적고, 조기검진 단계에서 반복 측정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연구진은 나노센서 표면 기능화와 잡음 신호 제거 알고리즘 고도화를 통해 기존 가스센서 기반 진단보다 민감도와 특이도를 크게 높였다고 설명하며, 향후 임상 검증 및 의료기기 인허가 절차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으로 보인다.  

 

나노융합 활성화 포럼에서는 나노융합 산업이 맞이한 재평가의 시간을 주제로 심층 토론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20여 년간 이어져 온 나노기술 투자와 연구개발 성과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어느 수준까지 사업화됐는지를 점검했다. 동시에 제조 공정 통합 난이도, 규모의 경제 확보, 보수적인 수요 산업 구조 등 상용화 과정에서 부딪힌 장벽을 구체적으로 공유했다. 일부 참석자는 첨단소재와 나노소자를 도입하더라도 기존 공급망을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만 채택되는 경향이 남아 있다며, 규제 샌드박스 확대와 시범사업 중심의 조달 전략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나노기술 투자가 반도체와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에서 이미 국가 경쟁력의 핵심 기반이 됐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양자, 바이오, 인공지능 등 신흥 분야와의 융합을 새로운 과제로 제시했다. 이강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원천기술과장은 우리나라가 지난 25년간 나노기술에 꾸준히 투자해온 덕분에 반도체와 배터리 등에서 선도국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양자컴퓨팅용 초전도 나노소자, 인공지능 반도체용 첨단 나노구조, 바이오 응용 나노소재 등 미래 전략 분야에서 나노융합 연구개발을 적극 발굴해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상용화 중심의 지원 기조를 분명히 했다. 조성경 산업부 섬유탄소나노과장은 첨단소재 개발 기업들이 자금과 시장 불확실성, 인증 절차 등 삼중의 부담 속에서 도전하고 있다며 현장의 어려움을 언급했다. 이어 상용화 장벽을 넘어설 핵심기술 개발과 기업 성장을 촉진하는 맞춤형 패키지 지원을 통해 나노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돕겠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양산 검증을 위한 실증 인프라 구축, 해외 인증 획득 지원, 주요 수요처와의 연계 프로그램 등이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외에서는 이미 나노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반도체 집적도, 배터리 에너지 밀도, 의료 진단 정밀도 등 구체적인 성능 지표로 옮겨가는 추세다. 미국과 유럽은 국가 차원의 나노소재 표준화와 안전성 평가 체계를 정비하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도 전고체 배터리용 나노전해질, 첨단 포토레지스트, 마이크로니들 기반 약물전달 시스템 등 전략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재 개발을 넘어, 공정 통합과 양산, 글로벌 규제 대응을 아우르는 패키지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나노융합성과전이 단순한 전시·시상 행사에 그치지 않고, 기술 성과를 산업 구조 전환으로 연결하는 매개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장비 도입과 설비 전환, 임상 적용 단계로 이어지려면 위험을 분담할 제도적 장치와 초기 수요 창출 메커니즘이 필수라는 설명이다. 산업계는 이번에 소개된 나노소재와 나노바이오 진단 기술이 양산과 임상이라는 관문을 넘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정부가 제시한 나노융합 정책이 첨단산업 경쟁 구도를 어떻게 바꿀지에 주목하고 있다.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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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신소재#현대자동차#나노융합성과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