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 뺑뺑이 막을 실질 대책 찾으라”…강훈식, 대통령실 회의서 지시
응급의료 붕괴 논란과 돌봄 부담 비극을 둘러싼 물음은 현 정국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통령실 핵심 참모진이 응급환자 전원 실패로 숨진 고등학생 사건을 놓고 대책 마련에 착수하면서 정치권 논쟁도 거세질 전망이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이른바 응급환자 뺑뺑이 사태를 막기 위한 실질적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최근 부산 도심에서 경련 증세를 보이던 고등학생이 적절한 응급실을 찾지 못한 채 구급차 안에서 사망한 사건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전은수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강 비서실장이 부산 고교생 사망 사례를 언급하며 응급환자 전원 과정 전반을 점검하라고 주문했다”고 전했다. 강 비서실장은 특히 진료 거부 양상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짚었다. 그는 “과거에는 응급실 도착 뒤 진료를 거절당하는 사례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전화로 진료를 거부당하면서 병원으로 이동조차 못 하는 도로 위 뺑뺑이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비서실장은 한국 의료 수준과 반복되는 참사 간 괴리를 거론하며 국가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체계를 갖춘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데,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살릴 방법이 무엇인지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방청과 보건복지부로 이원화돼 있는 응급의료 관리체계, 의료사고 책임 구조 등 제도 전반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것을 참모들에게 주문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은 응급환자 이송과 병원 수용 과정에서 관할 기관이 분절돼 있는 구조, 의료기관의 진료 거부 기준, 의료진 책임 범위 등을 함께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구급대 현장 판단과 병원 수용 여부를 연계하는 통합 컨트롤타워 구축 논의도 재점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뒤따랐다.
강 비서실장은 응급의료 문제와 함께 장기 간병 부담으로 인한 비극적 사건에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중증 환자와 중증장애인 가족이 감당하는 과도한 간병 부담을 언급하며 “이런 간병 살인을 방치해선 안 된다. 사회가 그 짐을 나눠서 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가족을 돌보다 극단적 선택에 이른 사례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돌봄 비용과 시간을 가족 개인에게만 떠넘기는 현재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강 비서실장은 보건복지부, 성평등가족부, 기획재정부, 저출산고령화위원회 등 관련 부처와 위원회에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장기요양보험과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 가족돌봄휴가 제도 등 기존 정책 전반에 대한 손질이 논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그는 제도 개편의 속도와 관련해 현실적 한계도 언급했다. 강 비서실장은 “전반적인 제도 개편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는 만큼 저소득층과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가구를 대상으로 우선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봐 달라”고 당부했다. 재정 여건과 행정 절차를 감안하되,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단계적 지원을 확대하라는 주문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에선 응급의료와 돌봄 정책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야권은 그동안 응급환자 이송 실패와 간병 비극 사례를 지적하며 정부 책임을 제기해 왔고, 여권은 재정 여건 내에서 제도 보완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병원 현장에선 의료진 인력난과 과밀한 수도권·대형병원 쏠림, 지역 의료 인프라 부족 등을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향후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응급의료 관리체계를 재정비하고, 돌봄 부담을 공적 영역으로 얼마나 끌어올릴지에 따라 정책 파급력이 달라질 전망이다. 대통령실이 응급환자 뺑뺑이와 간병 살인 문제를 동시에 꺼내 든 만큼, 국회는 예산과 관련 법 개정 논의를 통해 후속 입법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