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원본도 AI 학습에…정부, 규제특례 확대해 안전투자 속도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확보 경쟁이 국가 단위로 확산하는 가운데 정부가 지자체 폐쇄회로TV 원본영상을 민간 기업의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공공·의료·통신·식품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데이터 활용 규제를 완화해보는 실증 무대가 넓어지면서, 국민 안전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려는 실험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다만 민감정보 처리와 공공 감시 강화에 대한 우려도 존재해, 데이터 보호 기준과 감시 장치의 정교함이 향후 제도화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3일 제43차 ICT 규제샌드박스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를 열고 데이터안심구역 기반 지자체 CCTV 원본 데이터 활용 등 6건을 규제 특례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심의에서 특히 AI 학습용 데이터 관련 과제 2건이 포함되며, 공공 데이터와 민간 AI 기술의 접점이 한층 넓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 과제는 지자체 CCTV 원본 영상을 활용해 AI 기반 관제 시스템 성능을 높이려는 프로젝트다. 심의위원회는 대구광역시와 달서구가 보유한 CCTV 원본 영상을 대구시, 달서구, 엠제이비전테크, 진명아이엔씨, 경북대학교 첨단정보통신융합산업기술원 등 3개 기관·기업 컨소시엄이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도록 실증특례를 부여했다. 그동안 유사 과제는 특정 지자체가 CCTV 원본을 개별 기업에 한정 제공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에는 데이터안심구역을 매개로 복수의 기관·기업이 동일 데이터를 활용하는 구조로 확장됐다.
데이터안심구역은 개인정보가 포함된 민감 데이터를 물리적으로 격리된 공간에서 지정된 보안 기준에 따라 처리하도록 한 인프라를 뜻한다. 이번 특례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제시한 영상데이터 원본 활용 시 안전조치 기준을 충족하는 조건으로, CCTV 원본이 데이터안심구역에 반입돼 AI 학습에 쓰이고, 학습을 마친 AI 모델과 결과물만 외부로 반출되는 구조를 택했다. 원본 영상 자체는 외부 공유를 차단해 데이터 유출 위험을 낮추는 한편, 관제 시스템 고도화라는 효익은 취하겠다는 설계다.
이 같은 방식은 재난·범죄·교통사고 등 상황 인지와 대응 속도를 높이려는 공공 관제 분야에서 실효성이 클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대규모 실환경 영상을 학습한 AI는 사람의 눈으로는 놓치기 쉬운 이상 상황을 신속하게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야간 골목길의 이상행동, 화재 전조, 교통 체증 급증 등 패턴을 조기에 감지해 관제센터에 경보를 주는 식이다. 대구시와 달서구는 실증 결과를 토대로 AI 기반 스마트시티 관제 고도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공공 CCTV 원본을 민간 AI 학습에 쓰는 것에 대한 사회적 논쟁도 불가피해 보인다. 얼굴, 행동, 이동 경로 등 고위험 개인정보가 담긴 영상이기 때문에, 데이터안심구역 보안 수준과 가명·익명 처리 강도, 알고리즘 편향 최소화 방안에 대한 점검이 향후 제도 설계의 핵심 변수로 부상할 수 있다. 영상 데이터가 특정 집단을 과도하게 표적화하거나 감시 강화 수단으로 전용될 위험을 제어할 수 있는지 여부도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의료 분야 데이터 개방과 활용을 확대하려는 시도도 함께 논의됐다. 서울대병원에는 메이요클리닉플랫폼과 연계하는 글로벌 의료데이터 공동연구 서비스에 대해 실증특례가 부여됐다. 메이요클리닉플랫폼은 해외 주요 병원들이 참여하는 의료데이터 기반 공동연구 플랫폼으로, 서울대병원은 자사가 보유한 가명처리된 의료데이터를 이 플랫폼에 연계해 국제 공동연구에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국내 연구자들은 국내 환자 정보뿐 아니라 해외 의료기관이 축적한 대규모·고품질 데이터를 바탕으로 질환 예측과 치료법 탐색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희귀질환, 암, 만성질환 등에서 국가 간 환자 코호트를 확보하기 어려웠던 제약이 완화되면서, AI 기반 진단 보조, 바이오마커 탐색, 신약후보 타깃 발굴 등 정밀의료 연구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이러한 글로벌 플랫폼 참여 경험이 한국형 의료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생태계 활성화에 참고 모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난 대응 통신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한 무선 통신 분야 특례도 포함됐다. 이노넷이 추진하는 TVWS 무선자가통신망 기반 긴급 소방 이동기지국 및 로봇개 서비스에는 이동형 기기의 안테나 송출 출력을 현행 규정보다 높게 설정할 수 있는 실증특례가 허용됐다. TVWS는 사용되지 않는 지상파 TV 주파수 대역을 뜻하며, 건물 내부나 지하 공간에서도 전파 도달률이 높은 특성이 있다.
이번 특례로 지하철역, 터널, 대형 지하공간 등에서 재난으로 상용 이동통신망이 붕괴될 경우 배낭형 이동기지국과 로봇개가 TVWS 대역을 활용해 긴급 음성·데이터 통신을 제공할 수 있는지 시험한다. 기존에는 이동형 장비 송출 출력이 100밀리와트 수준으로 제한돼 통신 범위 확보에 한계가 있었으나, 실증 구간에서는 1와트 수준까지 상향해 고정형 장비와 유사한 커버리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소방대원의 위치 추적, 구조 현장 영상 전송, 음성 통화 유지 가능 범위가 얼마나 넓어지는지에 따라 향후 제도 개편 논의가 진행될 전망이다.
식품안전 분야에서는 AI 활용 도축 자동 검인 시스템이 적극해석 대상으로 분류됐다. 로보스가 제안한 시스템은 도축장 내 환경과 도체 상태를 비전AI로 학습한 로봇이 합격 도체에 자동 날인하는 구조다. 현재 도체 검인은 사람이 일일이 육안 검사와 날인을 병행하는 탓에 인력 부담과 피로도, 작업 환경 리스크가 크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AI 로봇이 합격 날인 업무를 대체하면 검사관은 이상육 판정과 고위험 도체 선별 등 전문 검사 행위에 집중할 수 있어 전체 검사 품질이 높아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통신·금융보안 분야에서는 실시간 통화 기반 보이스피싱 탐지 서비스에 대한 실증특례가 SK텔레콤에 부여됐다. 기존에 KT와 LG유플러스가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특례를 받은 데 이어, 주요 이동통신 3사가 모두 보이스피싱 방지 기술 검증에 나선 셈이다. 이번 특례는 실제 보이스피싱 통화 데이터를 활용해 의심 패턴을 AI로 학습하고, 통화 중 실시간 경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고도화해보는 내용이 핵심이다. 공격자가 스크립트를 수시로 바꾸며 탐지를 회피하는 상황에서, 실제 피해 통화 데이터를 반영한 지속 학습이 대응력 강화를 좌우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부동산 분야에서는 리모델링 주택조합 총회의 전자적 의결 시스템에 대한 실증특례도 지정됐다. 오엠알테크는 조합총회 의결 과정을 전자적으로 처리해, 대면 참석이 어려운 조합원의 의사 반영률을 높이고 의결 절차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부동산 개발과 리모델링 과정에서 조합 총회 의결은 필수 절차인 만큼, 이 분야의 전자화는 향후 도시 재생 사업 전반의 의사결정 방식을 바꿀 요인으로 꼽힌다.
이번에 지정된 규제샌드박스 과제들은 공통적으로 데이터 활용 범위를 넓히고 AI 등 신기술 도입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AI 강국 전략과 맞닿아 있다. 동시에 공공 CCTV, 의료기록, 통화내역, 도축 정보 등 민감성이 높은 데이터가 포함돼, 데이터 보호 체계가 허용 범위를 뒷받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속적 점검과 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 관련 법·제도는 현재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전기통신사업법, 식품위생법 등 개별법 체계 안에서 규제샌드박스 예외를 허용하는 구조로 운용되고 있어, 실증 결과에 따라 상위 법령 개정 논의도 뒤따를 수 있다.
류제명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대한민국이 글로벌 변화를 선도하는 AI 강국 100년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강조하며, ICT 규제샌드박스가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 혁신을 촉발하는 동시에 안전한 서비스로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번 특례들이 실제 서비스로 제도화돼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데이터 활용과 개인정보 보호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에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