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하늘 아래, 땅끝 산사에 머문다”…해남에서 만나는 자연과 역사의 여운
요즘 해남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한반도의 끝이라 여겨졌지만, 지금은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여행지의 일상이 됐다. 흐린 하늘 아래 22도의 쾌적한 기온, 부드러운 바람 속에서 문득 삶의 속도를 늦춰보고 싶어진다.
현지에서는 다양한 매력이 펼쳐진다. 우선, 삼산면의 대흥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찰이다. 울창한 숲길로 진입하는 순간, 맑은 계곡물과 산사의 적막이 일상의 번잡함을 잊게 한다. 대웅보전과 침계루, 곳곳의 보물과 국보, 수많은 스님을 배출한 역사의 자취가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자연 속에서 생각이 깊어지고 사색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런 변화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전국 사찰과 자연경관지 방문객이 꾸준히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밀집된 도심보다 한적한 자연으로 여행지를 택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는 해설도 있다.
전문가들은 해남 여행의 본질을 ‘회복과 힐링’에서 찾는다고 말한다. 여행 칼럼니스트 김미영은 “숲과 고찰, 고요한 풍경 속에 자기만의 시간을 누리는 경험이 요즘 세대의 여행 추억을 바꾼다”고 표현했다. 잊고 있던 나를 자연스럽게 꺼내는 일, 그게 해남이 주는 매력이라는 해석도 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공룡박물관은 아이들과 꼭 다시 가고 싶다”는 가족 단위 여행객부터, “해남 수목원에서 걷다가 찍은 사진을 보니 다시 떠나고 싶어진다”는 일상 속 여행자들이 많다. 어느새 자연과 가까워진 일상이 새롭지 않게 다가온다.
특히 우항리 공룡박물관에서는 약 8천만 년 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신비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또 현산면 포레스트수목원에서 계절을 따라 걷는 산책길, 은빛으로 출렁이는 가을 팜파스그라스 정원은 여유와 쉼표를 선물한다. 이렇게 세대와 취향을 막론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도 자연을 찾는 발걸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사소한 변화지만, 그 안엔 달라진 삶의 태도가 담겨 있다. 해남에서 마주한 자연과 시간은 단지 여행 그 이상, 우리 삶의 리듬을 바꾸는 기호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