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혈관장벽 넘어라”…로슈·노바티스, 신경계 치료제 기술 확보전
퇴행성뇌질환 치료 패러다임이 뇌혈관장벽(BBB) 투과 기술을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인공지능(AI) 기반 뇌 셔틀 개발에 잇따라 나서며, 약물의 효과적 뇌 전달이 신약시장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올랐다. 로슈, 노바티스, GSK 등은 첨단 플랫폼·바이오기업과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며 경쟁적으로 신기술 확보와 대형 기술이전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는 이번 협력들을 ‘신경계 치료제 시장의 판도를 가르는 분기점’으로 평가한다.
최근 로슈는 미국 바이오기업 매니폴드바이오와 협력, AI 기술로 차세대 BBB 셔틀 개발에 돌입했다. 매니폴드의 플랫폼(mDesign)은 다양한 신경계 질환 표적을 위해 복합 모델링을 적용, 뇌혈관장벽을 통과할 수 있는 후보물질을 선별한다. 로슈는 협약에 따라 선급금 5500만 달러를 포함, 최대 20억 달러까지 지급 가능해 글로벌 시장의 기술 가치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처럼 AI 유도 셔틀 기술은 기존 약물이 BBB를 넘지 못해 치료 효율이 낮았던 한계를 극복하는 방식이다.

BBB, 즉 Blood-Brain Barrier는 뇌와 혈관 사이에서 이물질 유입을 막는 생체 방벽이다. 강력한 보호막인 만큼, 신경질환 치료제의 표적 전달에선 가장 큰 난관으로 지적돼 왔다. 이에 치료 물질이 BBB를 안전하게 관통하도록 돕는 ‘셔틀’ 역할 기술이 핵심으로 떠올랐다. 기존 방식보다 약효 전달력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기술 확보전은 더 확산되고 있다. 올해 7월에는 중국 시로낙스와 노바티스가 선택적 옵션계약을 체결했다. 시로낙스의 BDM(Brain Delivery Module) 플랫폼은 맞춤형 수송단백을 활용, BBB 투과력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노바티스는 독점적 인수권을 확보한 반면, 시로낙스는 선정된 치료 자산 개발을 계속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한다. 계약 규모도 최대 1억7500만 달러에 달한다.
국내 기업의 기술 개발과 대형 기술이전 사례도 뒤처지지 않는다. 올해 4월 에이비엘바이오는 ‘그랩바디-B’ BBB 셔틀 플랫폼을 기반으로, GSK와 20억6300만 파운드(약 3조9623억원) 대규모 이전 계약을 맺었다. 이중항체 구조를 채택한 그랩바디-B는 인슐린 유사 성장 인자1 수용체(IGF1R) 결합으로 뇌 전달 효율을 높였다. 실제 에이비엘바이오는 계약금과 단기 마일스톤으로만 약 1480억원을 확보해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다.
특히 이번 글로벌 협력들은 기존 뇌질환 신약 후보들이 치료 효능 검증에 한계를 보였던 상황에서, BBB 셔틀 기술의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 및 신약 개발 기간 단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major 기업들은 다중 표적·AI 기반 뇌 치료제의 임상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높이고자, 파트너십과 기술 M&A를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한편 이 같은 첨단 플랫폼 도입에는 임상 설계, 약효 검증 절차 등 규제 환경 변화도 요구된다. FDA와 EMA 등 선진국 규제기관은 BBB 투과 데이터의 과학적 검증방식, 안전성 평가 방안을 강화하는 규정 마련에 나선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퇴행성뇌질환 조기진단과 맞춤치료 시대에서, BBB 셔틀플랫폼의 상용화가 신경계 치료제 시장의 혁신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산업계는 신기술이 실질적으로 환자 치료 효과와 시장 안착에 연결될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