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돌봄도 플랫폼으로”…당근 구인 논란이 던진 노동 기준
동네 기반 중고거래 앱으로 알려진 당근과 같은 생활 플랫폼이 아이 등하원까지 연결하는 창구로 쓰이면서, 가사·돌봄 노동의 가치와 플랫폼 노동의 안전 기준을 둘러싼 논쟁이 부각되고 있다. 4살 아이의 차량 등하원을 맡길 사람을 구하면서 ‘건당 3000원’이라는 보수를 제시한 구인 글이 온라인에 퍼지자, 이용자들은 “택시 기본요금보다 싼 육아 심부름”이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업계에서는 지역 기반 IT 서비스가 생활 전반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비공식적인 돌봄·운전 알바가 규제와 안전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24일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에는 ‘등하원 도와주실 분(지금부터 2월까지)’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글 작성자는 4살 남아의 등·하원을 차량으로 부탁한다며, 평일 오전 9시 30분 등원과 오후 4시 20분 하원을 맡길 사람을 찾는다고 적었다. 어린이집까지는 차로 약 5분 거리라고 소개했고, 다음 주부터 바로 일할 수 있으며 2026년 2월까지 장기간 맡을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조건을 제시했다. 운전 가능한 50대 이하 여성, 인근 거주자를 선호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논란의 핵심은 마지막에 적힌 보수였다. 게시글에는 ‘건당 3000원’이란 문구만 적혀 있어, 하루 왕복 기준인지, 등원과 하원을 나눠 건별 3000원씩 지급하겠다는 의미인지조차 불명확한 상태였다. 캡처 화면이 온라인 커뮤니티로 확산되면서, 운전을 전제로 한 아동 이동 지원임에도 심부름 수준보다 낮은 단가를 제시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IT 기반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는 비정형 노동이라는 점에서, 해당 사례는 단순한 개인의 구인 공고를 넘어 플랫폼 노동 구조의 민낯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앱이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매개로 하는 ‘알바 매칭’은 정식 계약서 없이 구두 합의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이동 거리·시간·위험도 등은 고려되지 않은 채 ‘건당’ 단가만 제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아동을 태운 차량 이동은 안전과 책임, 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 소재까지 얽혀 있어, 사실상 단시간 운전 알바를 넘어 돌봄 노동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네트워크 기술과 모바일 앱의 보급으로, 플랫폼은 중고거래에서 가사·돌봄·운전 심부름까지 생활 전반으로 기능을 넓히고 있다. 반면 시장 가격 형성은 여전히 자율에 맡겨져 있고, 최저임금·산재보험·보험 가입과 같은 제도적 장치는 대부분 이용자의 자율에 머무르고 있다. 일부 대형 플랫폼은 택배·대리운전 등 영역에서 보험과 표준계약서를 도입하고 있으나, 동네 커뮤니티 기반 앱에 올라오는 개인 간 가사·돌봄 매칭은 사실상 규제 밖에 있다.
이번 사례에서 누리꾼 반응은 단가에 집중됐다. 캡처를 공유한 이용자들은 “차량 운전을 요구하면서 3000원은 말이 안 된다”, “택시 기본요금보다 싸게 사람을 부르는 셈”, “기름값도 안 나오는 금액”이라며 낮은 보수를 문제 삼았다. “배달 한 건보다 적은 금액”, “아이 안전과 책임이 따르는데 수고비 수준도 안 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아동 돌봄과 운전을 포함한 노동을 ‘부당 심부름’ 수준으로 취급하는 인식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당근 게시글 작성자는 보수 조건을 수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보수가 ‘건당 3000원’에서 시급 1만 5000원으로 바뀐 새로운 구인 글이 올라온 캡처가 잇따라 공유됐다. 정보통신기술 기반 플랫폼이 공론장을 통해 사용자의 비판을 즉각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에서는, 시장 가격 조정 기능이 실시간으로 작동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 인식과 여론에 맡겨진 자율 규제만으로는 아동 안전과 노동권을 충분히 보장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해외에서는 이미 플랫폼을 매개로 한 육아·돌봄 매칭 서비스가 제도권 감독 아래 운영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미국과 유럽의 일부 보육 매칭 플랫폼은 신원 인증, 범죄 이력 조회, 돌봄자 교육 이수 여부 확인과 더불어, 최소 시급과 표준화된 수수료 체계를 마련해 운영 중이다. 반면 국내 지역 기반 중고거래·생활 커뮤니티 앱은 서비스 성격상 개인 간 거래에 가깝다는 이유로, 돌봄·운전 등 고위험 영역에 대한 별도 안전 장치는 거의 없는 상태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기반한 플랫폼 생태계 확장 속에서, 아동을 동반한 이동과 같은 민감한 서비스까지 앱을 통해 거래가 이뤄지는 상황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 사업자가 단순 중개자를 넘어 안전 검증, 보험 연계, 표준 요율 가이드라인 등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플랫폼이 지역 생활 인프라로 자리 잡은 만큼, 가사·돌봄·운전 등 일상의 IT 매개 노동에 대해 제도권 차원의 기준과 보호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산업계는 플랫폼을 통해 확산되는 생활형 노동이 어떤 방식으로 제도와 균형을 맞출지, 향후 논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