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연구비 자율성 넓히고 제재 강화한다…정부, RND 제도 전면 개편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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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비 집행 구조가 IT와 바이오를 포함한 국내 연구현장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되는 가운데, 정부가 연구 자율성은 대폭 넓히되 연구비 부정사용을 겨냥한 제재는 한층 엄격히 적용하는 방향으로 제도 전환에 나선다. 연구자 행정부담을 줄여 RND 효율을 끌어올리면서도, 대형 부정사건으로 흔들린 연구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도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오는 2026년 역대 최대 수준으로 편성되는 국가RND 예산의 실효성을 가를 제도 개편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2월 19일 서울 코리아나 호텔에서 19개 대학 산학협력단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향후 연구제도 혁신을 위한 세부 개선안을 논의했다. 특히 학생연구자의 안정적인 연구 환경 조성과 연구비 집행 자율성 확대, 연구비 부정행위 제재 강화 등이 핵심 의제였다.

우선 학생연구자 지원과 관련해, 각 대학의 학생인건비 계정에 과도하게 적립돼 있는 잔액을 실제 학생연구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구체적 방안을 집중 검토했다. 그동안 일부 과제에서는 학생연구자 인건비가 제때 지급되지 않거나 최소 기준만 맞추고 잔액이 계정에 쌓이는 구조가 문제로 지적돼 왔다. 과기정통부는 연구책임자가 학생연구자에게 적정 수준의 인건비를 적시에 지급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과다 적립분을 기관의 학생인건비 계정으로 이체하도록 관련 규정을 이미 개정한 바 있다.

 

올해 말 첫 제도 시행을 앞두고 과기정통부는 실제 집행 절차와 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 초안을 마련해 이번 간담회에서 대학 측 의견을 수렴했다. 연구현장에서는 학생연구자 인건비가 안정적으로 지급될 경우 석박사 인력의 이탈을 줄이고, IT와 바이오 등 인력 의존도가 높은 분야의 연구 몰입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연구비 사용 규정도 대폭 유연해질 전망이다. 과기정통부는 직접비와 간접비를 불가 항목만 명확히 제한하고 나머지는 자율 사용을 허용하는 규정 개정안을 제시했다. 특히 회의비처럼 연구 과정에서 필수적이지만 금액 규모가 크지 않은 항목에 대해,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요구되던 과도한 증빙을 줄이고 최소한의 자료만으로 집행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소액 회의비나 단순 운영비에도 세부 영수증, 상세 참석자 명단 등 과도한 서류를 요구받으면서 행정업무에 상당한 시간을 투입해 왔다. IT와 바이오 같이 과제 구조가 복잡한 분야의 경우 연구자가 직접 관리해야 하는 증빙서류가 누적되면서, 실제 연구에 투입해야 할 시간이 줄어드는 역효과가 있었다. 관리 편의 위주의 규정을 손질하면 연구 행정비용을 줄이고, 데이터 분석이나 실험 설계 등 핵심 연구 활동에 더 많은 인력을 배치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자율성을 키우는 대신, 연구비 부정사용에 대한 제재는 한층 강화된다. 과기정통부는 연구비 부정사용과 같은 부정행위가 적발될 경우 제재 조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령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연구현장에서 프로젝트 설계와 예산 편성의 재량을 확대하는 만큼, 고의적 부정행위에는 참여제한, 환수, 형사 고발 등 제재 수위가 더 엄격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강화된 처벌 체계를 통해 사전 경고 효과를 높이고, 대형 부정 사례의 재발을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술료 활용 기준도 손질된다. 그간 대학과 연구소 등 비영리기관에서 발생하는 기술료는 단일 기준에 따라 사용 범위가 비교적 경직적으로 관리돼 왔다. 과기정통부는 이번 간담회에서 기관별 특성을 반영해 기술료를 보다 유연하게 운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기술료 수입 중 15퍼센트 이상은 별도 계정으로 분리해 사업화 경비로 사용하도록 관리하고, 나머지 최대 85퍼센트는 연구자와 성과 기여자에 대한 보상 등 기관 자율 용도로 배분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는 IT와 바이오 분야에서 기술 사업화 인프라를 확충하고, 성공적인 연구 성과에 대한 보상 체계를 강화해 우수 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미국과 유럽 주요 대학들이 기술이전 수익을 교원과 연구자에게 적극 배분해 창업과 특허 출원을 장려하는 것과 유사한 방향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기술료 사용에 대한 회계·감사 기준이 상대적으로 경직돼 있어, 실제 현장 적용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지침 정비가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이번 제도 개편은 2026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될 국가RND 예산 집행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동시에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담겼다. 최근 글로벌 IT와 바이오 분야에서는 인공지능 기반 신약 개발, 차세대 반도체·양자기술, 정밀의료 등 대형 프로젝트가 국가 전략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런 대형 과제는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예산 집행과 복잡한 다기관 협력이 수반되기 때문에, 과도한 규제와 느슨한 관리가 동시에 존재할 경우 성과 도출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각국 정부가 연구 자율성과 책임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설계하는 흐름도 뚜렷하다. 미국과 유럽은 연구비 집행과 관련해 일정 수준의 재량을 인정하되, 연구윤리 위반 시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구조를 정착시키는 중이다. 한국도 연구비 사용에서의 세부 간섭을 줄이고 성과와 책임 중심 관리로 전환하는 데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박인규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연구자가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연구자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해 제도에 반영하겠다고 밝히며, 제도 개편이 현장에 실제로 안착될 때까지 후속 보완 작업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산업계와 학계는 이번 개편 방향이 IT와 바이오 등 첨단 분야의 연구 생태계를 얼마나 유연하고 투명하게 바꿀지 주시하고 있다.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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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연구제도개선#학생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