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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후 혼란 노렸다”…조은석 특검, 12월 3일 비상계엄 배경 규명

정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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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선포를 둘러싼 내란 혐의 수사를 진행 중인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과 윤석열 전 대통령 측 주장이 정면 충돌했다. 비상계엄 선포일을 12월 3일로 잡은 결정이 미국 대선 이후 권력 이양기의 혼란을 겨냥한 정치·외교 전략이었다는 특검의 분석이 나오면서, 사건의 외교적 파장까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은 15일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에서 최종 수사결과를 브리핑하고, 비상계엄 선포일이 2024년 12월 3일로 특정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박 모 특별검사보는 이날 “항간에 떠도는 무속 개입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며 “미국 대통령 선거 일정과 그 이후 정국을 고려한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에 따르면,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 당시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은 미국 중앙정보국 국장 내정자를 면담하기 위해 12월 4일 미국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박 특검보는 “10월 유신도 미국 대통령 선거 시기에 단행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미 대통령 선거 후 취임 전 혼란한 시기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국 대선 직후 정권 인수 과정에서 워싱턴의 대응이 늦어지는 시점을 한국 정국 장악에 활용하려 했다는 취지다.

 

무속 논란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박 특검보는 “수사 과정에서 무속인이나 관련 제보, 자료를 전방위로 확인했다”며 “비상계엄 날짜 결정 과정에 무속 개입이 있었다고 볼 만한 객관적 정황과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비상계엄 일정 결정의 동기가 정치·외교 계산에 있었다는 분석에 힘을 실은 셈이다.

 

수사의 또 다른 축이 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수첩에 대해서는 추가 수사 필요성을 언급했다. 해당 수첩에는 주요 정치인과 진보 인사들이 이른바 수거 대상으로 거론되며,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처리 방안이 기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이 수첩을 토대로 노 전 사령관을 내란목적살인 예비음모 혐의 피의자로 조사해 왔다.

 

그러나 노 전 사령관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첩 내용에 대한 진술을 전면 거부하면서, 특검은 수첩 관련 사건을 경찰 국가수사본부로 이첩했다. 박 특검보는 “핵심 관련자들이 진술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강제 수사와 보완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국수본이 관련 혐의에 대해 추가로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관여 의혹이 제기됐던 대법원에 대해서는 관여 정황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검팀은 조희대 대법원장과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등 당시 사법부 수뇌부와 관련 실무자를 조사하고 통신 내역을 분석했다. 그 결과 비상계엄 조치 사항을 사전에 준비하거나 논의하기 위한 별도의 간부회의가 열린 사실은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계엄사령부가 대법원 측에 연락관 파견을 요청했지만, 대법원이 당시 이를 거부한 사실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특검 관계자는 “사법부가 계엄사령부에 협조하거나 관련 조치에 동참했다는 객관적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와 국가정보원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출동해 전산 자료를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박 특검보는 “관련자들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 통신 내역 조회, 기지국 위치 확인 등 다각적인 방법으로 검증했다”며 “포렌식 수사관이 선관위로 출동하거나 출동을 대기한 사실, 관련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취소 결정과 관련해 대검찰청이 즉시항고를 포기했다는 의혹은 수사 공정성 문제를 고려해 국수본으로 넘겼다. 심우정 전 검찰총장을 비롯한 당시 검찰 지휘부를 조사한 뒤, 특검팀과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수사팀 인적 구성이 겹친다는 점을 이유로 이첩했다는 설명이다. 박 특검보는 “특검에 합류한 검사들 상당수가 당시 특별수사본부 소속이었던 만큼,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을 피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정국을 뒤흔들었던 삼청동 안가 회동에 대해서도 특검팀은 구체적인 성격을 규정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이 참석한 이 모임은 12월 4일 국무총리 관저에서 열린 당정대 회의의 후속 모임이라는 결론이다.

 

수사 결과 당시 박 전 장관은 비상계엄 정당화 논리를 담은 문건을 휴대전화로 보고받았고, 이 전 장관도 소속 공무원이 작성한 비상계엄 관련 파일을 들고 회동에 참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특검팀은 안가 회동의 성격을 비상계엄 관련 후속 논의 자리로 규정하면서도, 회동 자체를 별도 죄명으로 기소 대상에 포함하지는 않았다. 회동의 정치적 의미와 별개로 형사 책임을 묻기 위한 증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국회 계엄해제 의결 방해 의혹에 따라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이 고발된 사건은 무혐의로 결론났다. 박 특검보는 “비상계엄에 동조해 협력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증거를 밝혀내지 못했다”며 “계엄 해제 의결 과정에서의 체포 방해 행위도 혐의없음 처분했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결심지원실에서 2차 비상계엄 선포를 준비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전체 내란 행위에 포함해 재판에서 공소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검팀은 해당 논의가 비상계엄 해제 이후 시점에 이뤄졌고 실제 결행에는 나서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별도의 독립된 범죄로 분리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날 국회와 정치권은 특검 수사 결과를 놓고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여권은 무속 개입설과 사법·검찰의 조직적 관여 의혹 상당수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방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반면 야권은 미국 대선 이후 혼란기를 노린 계엄 선포 구상과 노상원 수첩 등 미진한 의혹을 근거로 추가 수사와 국정조사를 압박할 전망이다.

 

정치권과 사정기관을 향한 후속 수사가 국수본으로 넘어간 만큼, 향후 수사 성과와 법원의 판단에 따라 정국의 추가 진통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특검 결론과 별도로 계엄 관련 제도 정비와 통제 장치 강화를 둘러싼 입법 논의를 다음 회기에서 본격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정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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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석특검#윤전대통령#비상계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