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 AI합성사진까지 동원”…박병규 광산구청장 온라인 홍보 논란

이도윤 기자
입력

정치권의 AI 활용 선거 홍보가 또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이재명 대통령을 나란히 내세운 인공지능 합성 사진이 단체 채팅방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퍼지면서 유권자 혼란 우려가 제기됐다. 차기 선거를 앞두고 딥페이크 규제 강화 흐름과 맞물려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30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광주광역시 광산구를 기반으로 수백명이 참여하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박병규 광주 광산구청장과 이재명 대통령이 밝은 표정으로 함께 서 있는 사진이 게시됐다. 사진은 박병규 청장의 행정력을 극찬하는 기사 일부처럼 구성돼 있었으나, 실제 기사와는 무관한 이미지가 임의로 첨부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가 된 사진은 금호타이어 화재 대피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대피 주민을 위로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구도였다. 이재명 대통령과 박병규 청장이 함께 주민을 만나는 순간을 포착한 듯한 모습이었지만, 취재 결과 인공지능 기술로 합성된 가짜 사진으로 파악됐다.

 

당시 두 사람이 금호타이어 화재 현장 인근 대피소를 방문해 주민을 만난 사실은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 사진에서는 이재명 대통령만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보이고, 박병규 청장의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지역 정가는 이 점을 들어 누군가가 박병규 청장을 보다 돋보이게 하기 위해 AI로 새로운 사진을 생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합성 사진을 직접 생성하고 배포한 인물은 특정되지 않았다. 다만 사진과 함께 올라온 게시물이 박병규 청장의 업무 성과를 강조하는 내용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박병규 청장 측에 우호적인 지지자나 지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선을 노리는 박병규 청장에게 현직 대통령과 나란히 선명하게 찍힌 사진은 지역 유권자에게 상당한 상징적 효과를 줄 수 있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그러나 유권자를 상대로 한 온라인 홍보에 AI 합성물을 끌어들인 방식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비판이 거세다. 당초 게시물은 기사 형식을 띠고 있어 사실상 언론 보도처럼 보였고, 합성 여부는 명시돼 있지 않았다.

 

해당 단톡방에 참여하고 있는 광산구 주민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언론 기사와 함께 게시된 사진이어서 합성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까지 끌어들여 합성 사진을 만들어야 했는지 오히려 반발심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사실상 유권자 일부가 실제 장면으로 인식했다가 뒤늦게 합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셈이다.

 

박병규 청장을 둘러싼 온라인 홍보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역 정치권에 따르면 박병규 청장의 측근들은 앞서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등에서 박병규 청장이 선호도 1위를 차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반복적으로 공유하며 우위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경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는 AI 합성 사진 논란 관련 입장을 듣기 위해 박병규 청장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다. 휴대전화 통화와 문자 메시지를 통해 해명을 요청했지만, 박병규 청장은 이날까지 별다른 응답을 내놓지 않았다. 광산구청 측 공식 입장도 확인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AI 합성 사진을 활용한 홍보가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또 향후 유사 사례를 어떻게 규율할지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대통령 이미지가 포함된 만큼, 사전 협의나 동의 여부가 쟁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AI 기술을 활용한 선거 홍보를 둘러싼 우려는 이미 지난해 총선 과정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당시 각 정당과 후보자 주변에서 정치인의 음성이나 얼굴을 AI로 재현한 합성물 제작 시도가 이어지자, 딥페이크가 허위 정보 유포와 명예 훼손, 여론 조작에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선거일 90일 전부터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딥페이크 영상의 제작과 유포를 금지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딥페이크 영상뿐 아니라 사진, 음성 등을 포함한 AI 합성물이 유권자 판단을 왜곡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단속을 강화해 왔다.

 

여기에 더해 내년 1월부터는 이른바 AI 기본법이 시행된다. 해당 법은 인공지능으로 생성된 콘텐츠에 워터마크 등 표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선거 국면에서 AI로 제작된 정치 홍보물에는 합성 여부를 알리는 표기가 필수 요건이 될 전망이다.

 

법 시행 이후에도 워터마크 표시 없이 AI 합성 사진이 유포될 경우, 유권자 기만과 허위 정보 유포 여부를 두고 추가적인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이 AI 규제 입법 방향을 두고 이견을 보이는 가운데, 현장에서는 이미 기술과 선거 전략이 결합한 사례가 속속 포착되는 셈이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지방선거와 총선, 대선 등 각종 선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AI를 활용한 선거 홍보 수위는 더 높아질 것"이라며 "광산구 사례와 같은 논란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후보자와 캠프, 지지자 모두가 법적·윤리적 기준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논란과 관련해 선거관리위원회가 추가 조사나 지도에 나설지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공직선거법과 AI 기본법 시행령 정비가 진행 중인 만큼, 국회와 정부는 향후 회기에서 AI 기반 정치 홍보 규제 방안을 두고 본격적인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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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규광산구청장#이재명대통령#ai합성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