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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머금은 산성길”…고양시에서 만나는 도시와 자연의 느린 숨결

최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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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가을비가 내리는 날, 고양시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예전엔 서울의 한 켠 뒤편에 자리한 도시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흙내음 가득한 산책과 자연 속에서의 휴식이 일상이 됐다. 사소한 변화지만, 그 안엔 달라진 삶의 태도가 담겨 있다.

 

고양시는 도심과 자연, 역사가 부드럽게 맞닿는 도시다. 시내를 한 바퀴 돌다 보면, 비 내리는 하늘 아래로 다양한 테마의 명소들이 서로 다른 색으로 다가온다. 일산서구 대화동의 ‘아쿠아플라넷 일산’에선 바다의 신비와 해양과학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해양 생물들이 유영하는 거대한 어항 앞에서 바쁘게 살아온 일상에 잠시 쉼표를 찍어본다는 이들도 많다. “아이랑 오면 밤바다 걷는 기분도 들고, 밖이 흐린 날에도 실내에서 여행하는 기분”이라고 말하는 방문자의 목소리처럼, 계절이나 날씨에 상관없이 자연을 만나는 공간으로 인기가 높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고양시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고양시

북한산은 고양시와 서울의 경계에서 웅장하게 솟아 있다. 세 봉우리가 각을 이루는 ‘삼각산’의 험준한 바위산은 산을 오르며 보는 하늘과 도시 풍경이 시시각각 변한다. 백운대 정상에 오르면 땅과 하늘의 끝이 맞닿는 기분이라는 등산객들의 감상이 이어진다. 실제로 기자가 만난 60대 주민은 “맑은 날엔 서해까지 보여, 가끔은 어릴 적 추억도 떠오른다”고 표현했다. 산이 주는 위안은 세대를 넘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행주내동의 행주산성은 천천히 걸어볼 만한 역사의 공간이다. 한강을 따라 조성된 산성 길을 오르면 부슬비가 내린 풍경과 고요한 심상이 맞닿는다. 산책로가 비교적 붐비지 않아, “혼자 걷기 좋고 사진도 한가롭게 찍을 수 있다”는 방문자의 공감이 많다. 이곳에선 과거의 숨결과 지금의 라디오 소리가 자연스럽게 겹친다.

 

이런 변화는 숫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붐비지 않는 산성길을 선호한다’는 커뮤니티 이야기 속엔 속도와 효율이 아닌, 여백과 쉼을 좇는 삶의 태도가 드러난다. 정신건강 전문가 유민지는 “일상에서 잠깐의 자연 감상, 고즈넉한 경로를 따라 걷는 일 자체가 자기 감정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관계가 복잡한 도시인에게도 잠깐의 바깥 바람, 흐린 날의 산책길이 충분한 위로가 된다는 해석이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비 맞으며 걷는 고양시 산책로에서 잠시 과거를 돌아봤다”, “북한산은 흐릴 때가 더 멋지다”는 글들이 이어진다. 일상에 지친 마음을 잠시 세워두고, 자연과 역사가 함께 흐르는 고양시 명소에서 각자의 숨을 고른다는 이들이 많아진 셈이다.

 

결국 고양시의 풍경은 단지 ‘관광지’가 아니라, 속도를 늦추고 나를 돌아보는 일상의 작은 기호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최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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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아쿠아플라넷일산#북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