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외압 정점은 윤석열"…해병특검, 33명 기소하며 150일 수사 마무리
수사외압과 책임 공방이 맞붙었다. 채상병 순직 사건을 둘러싼 군 지휘부와 대통령실, 수사기관의 행위가 형사사법 절차 위로 올라오면서 정국이 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까지 정점으로 지목되면서 향후 재판 과정에서의 정치적 파장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은 28일 서울 사무실에서 최종 브리핑을 열고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호주 도피 의혹 등을 수사한 결과,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해 총 33명을 재판에 넘기고 150일간의 수사를 종료했다고 밝혔다. 내란·김건희 특검과 함께 출범한 세 특검 가운데 해병특검이 가장 먼저 수사를 마무리한 셈이다.

이명현 특별검사는 "우리 특검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해병의 죽음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한 수사에 권력 윗선의 압력이 어떻게 가해졌는지 밝히기 위해 출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구성원 모두 한 치의 의혹도 남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수사에 임했고 주요 수사 대상 사건 대부분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했다"고 강조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과 국가안보실 등 핵심 기관을 포함해 총 185차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또 피의자와 참고인 등 약 300명을 조사했고, 휴대전화와 PC 등 디지털 증거 포렌식은 430건 이상 실시했다고 밝혔다. 강도 높은 강제수사와 대규모 참고인 조사로 윗선 개입 여부를 추적했다는 설명이다.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해서는 총 13명이 기소됐다. 특검은 지난 21일 윤 전 대통령을 비롯해 12명을 먼저 재판에 넘겼고, 27일에는 채상병이 복무했던 해병대 1사단의 전 사령관 김 모 씨를 추가 기소했다. 아울러 허위 사실을 토대로 구속영장을 작성해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을 감금한 혐의를 받는 군검사 2명도 함께 기소했다.
해병특검의 1호 기소 대상은 채상병이 속해 있던 해병대 1사단의 최고 지휘관이었던 임 전 1사단장과 경북 예천군 수해 현장을 지휘한 해병대 관계자 4명이었다. 특검은 지난 11일 임 전 사단장의 구속 기한 만료를 앞두고 이들 5명을 먼저 기소했으며, 임 전 사단장은 특검이 유일하게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긴 피의자다.
특검은 임 전 사단장의 지휘 책임을 이번 사고의 핵심 원인으로 규정했다. 이 특검은 "사망 피해자가 있는 사건을 무거운 책임감으로 수사했고 임 전 사단장의 무리한 작전 통제·지휘가 사고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며 "사건 발생 직후 수사했던 해병대 수사단의 결론과 같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은 두 개의 사건에서 정점으로 지목됐다. 특검은 지난 21일 채상병 순직 관련 수사외압 사건의 최고 책임자로 윤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어 27일에는 피의자 신분이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로 도피시킨 혐의로 윤 전 대통령과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6명을 추가로 재판에 넘겼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시와 역할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이 특검은 "이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부임시키기 위해 대통령실, 외교부, 법무부가 조직적으로 역할 분담해 대통령 지시를 이행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 과정에서 법령에 명시된 절차와 요건은 모두 무시됐다"고 밝혔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가 진전될 경우 자신에게 수사 칼날이 향할 것을 우려해 대사 임명을 추진했다는 판단도 내렸다.
윤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채상병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등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 11명도 무더기 기소 대상에 포함됐다. 박정훈 대령의 군사법원 재판에서 허위 증언을 한 전 해병대 사령관 비서실장 김 모 씨도 최근 추가로 재판에 넘겨졌다.
특검은 외압 의혹 폭로 이후 박 대령에게 보복성 구속영장을 청구해 감금시킨 군검사 2명의 행위도 심각한 인권 침해로 규정했다. 이 특검은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침해하는 수사외압 행위는 중대한 권력형 범죄"라며 "이 사건에 대해서는 법원의 엄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수처를 둘러싼 수사 방해 의혹도 특검의 타깃이 됐다. 특검은 채상병 수사외압 사건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간부들의 직무유기와 수사방해 정황을 확인했다며 전·현직 간부 5명을 기소했다. 공수처 지휘부를 장악해 채상병 사건 수사를 막은 당사자로는 김선규 전 부장검사와 송창진 전 부장검사가 지목됐다.
또 오동운 공수처장과 이재승 차장, 박석일 전 부장검사는 송 전 부장검사의 위증 혐의 고발 사실을 인지하고도 다른 수사기관에 통보하거나 이첩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특검은 고위 수사기관의 내부 견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고 형사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군 외부 인사에 대한 수사도 이뤄졌다. 특검은 임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을 수사하면서 김건희 여사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의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포착해 약식기소했다. 이 전 대표의 지시를 받고 한강공원에서 휴대전화를 파손한 지인도 함께 약식기소했다. 특검은 이 전 대표의 변호사법 위반과 사기, 특수공갈 혐의에 대해서는 보다 광범위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국가수사본부 이첩 방침을 밝혔다.
국회 차원의 책임 문제도 제기됐다. 특검은 임 전 사단장과 멋쟁해병 단체대화방 구성원 2명이 국회에서 허위로 증언한 사실을 확인해 위증 혐의로 기소했다. 국회 청문 과정에서 이뤄진 진술이 형사재판의 심리 대상이 되면서, 향후 국정조사와 청문회 문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혐의는 경찰 국가수사본부로 넘겨 후속 수사를 요청하기로 했다. 대표적으로 경북경찰청 관계자들의 직무유기와 수사정보 누설 사건이 있다. 특검에 따르면 경북경찰청은 채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하면서 임 전 사단장의 메시지 삭제 사실을 확인하고도 강제수사에 착수하지 않았고, 관련 수사 정보를 임 전 사단장과 해병대 관계자들에게 흘린 정황이 포착됐다. 특검은 "국수본에서 계속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에 대한 수사도 국수본 이첩 대상에 포함됐다. 특검은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의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혐의를 새로 인지했다며, 정당한 이유 없이 상임위를 퇴장하거나 출석하지 않은 혐의와 직원에게 부당한 각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한 혐의를 경찰에 넘길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김 위원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 박 대령에 대한 긴급구제와 진정을 기각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향후 재판 과정이 또 다른 정치적 격돌 무대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과 대통령실 관계자들, 전직 장관과 공수처 지휘부 등 핵심 권력 라인이 법정에서 책임 공방을 벌이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내란·김건희 특검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인 만큼, 3대 특검 재판과 수사 진행 상황이 향후 총선과 대선 국면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명현 특별검사는 "수사 기간은 끝났지만 윤 전 대통령을 비롯한 피고인들이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와 정부는 특검 수사 결과를 두고 책임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며,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향후 군 사법제도와 수사기관 견제 장치 개편 논의도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