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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관협착증 수술후 통증 예측 뇌척수액 바이오마커 확인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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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관협착증 수술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만성 신경병증성 통증 위험을 수술 전에 예측할 수 있는 단서가 제시됐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김영훈 교수 연구팀이 뇌척수액 속 염증·재생 관련 단백질 농도를 분석해, 수술 뒤에도 통증이 지속될 환자를 미리 가려낼 수 있는 바이오마커 후보를 확인했다. 약물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환자를 수술 전에 선별해 조기에 수술적 개입을 검토할 수 있어, 척추 질환 분야 정밀의료 도입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결과로 평가된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척추 수술 후 만성 통증 관리 패러다임이 바뀌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구팀은 척추관협착증 수술 후에도 약 30퍼센트 환자에서 신경병증성 통증이 남는 점에 주목했다. 척추관협착증은 척추관이 좁아져 신경이 압박되는 질환으로, 감각 이상과 하지 통증을 동반한다. 수술로 좁아진 공간을 넓혀 신경 압박을 해소해도 일부 환자에서는 칼로 베이는 듯한 타는 통증이 만성적으로 지속된다. 지금까지는 어떤 환자가 이 같은 만성 신경병증성 통증으로 진행할지 예측할 수 있는 생물학적 지표가 없어, 수술 시기와 방법을 정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는 2022년 7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서울성모병원에서 척추관협착증 수술을 받은 환자 22명을 대상으로 전향적으로 진행됐다. 환자들은 수술 전, 수술 후 1개월, 3개월, 1년 시점에 표준화된 도구로 신경병증성 통증 평가를 받았다. 연구팀은 수술 전 신경병증성 통증이 없는 그룹 6명, 수술 전에는 통증이 있었지만 수술 후 해소된 그룹 8명, 수술 후에도 통증이 지속된 그룹 8명으로 분류했다. 이후 수술 전 채취한 뇌척수액에서 통증과 신경 재생에 관여하는 단백질 농도를 정량 분석해 세 그룹을 비교했다.

 

핵심은 신경 손상 초기에 분비되는 세 가지 바이오마커였다. 인터루킨6 IL6은 신경 손상 시 면역세포에서 분비돼 염증 반응을 조절하고 통증 신호 전달에 관여하는 사이토카인이다. 표피성장인자수용체1 Her1은 세포막 수용체 단백질로, 신경세포 생존과 재생을 촉진하는 신호를 매개한다. 단핵구화학유인단백질1 MCP1은 손상 부위로 단핵구 등 면역세포를 끌어들여 염증과 회복 반응을 조절하는 케모카인이다. 연구팀은 이들 세 단백질 농도가 신경 압박 후 회복 과정과 통증 만성화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주목했다.

 

분석 결과, 수술 후에도 신경병증성 통증이 지속된 환자군에서는 세 가지 바이오마커 농도가 모두 다른 두 그룹보다 유의미하게 낮았다. 특히 IL6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신경병증성 통증이 없는 그룹의 IL6 평균 농도는 밀리리터당 6점18피코그램, 수술 뒤 통증이 해소된 그룹은 4점81피코그램인 반면, 통증이 지속된 그룹은 1점58피코그램에 그쳤다. 통증이 지속된 그룹이 나머지 두 그룹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정도로 낮은 수치를 보인 것이다. Her1과 MCP1 역시 비슷한 경향을 보여, 전체적으로 저농도 프로파일을 가진 환자에서 만성 통증이 잘 발생하는 양상이 관찰됐다.

 

연구팀은 또 신경병증성 통증이 지속된 기간과 바이오마커 농도 간 상관관계를 평가했다. 통증 지속 기간이 길수록 IL6과 Her1 농도가 더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확인됐다. 이는 신경 압박이 장기간 이어질수록 회복에 관여하는 분자 신호가 점차 감소하고, 그 결과 회복 가능성이 떨어지면서 만성 신경병증성 통증으로 이행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통증이 오래 지속된 뒤 뒤늦게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예후가 나빠지는 임상 경험을 분자 수준에서 뒷받침하는 셈이다.

 

김영훈 교수는 급성기 신경병증성 통증과 만성 신경병증성 통증이 서로 다른 기전으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급성기에는 신경 손상과 염증 반응이 전면에 나타나는 반면, 만성 단계로 넘어가면 중추신경계 내 통증 회로가 재배선되거나, 통증을 억제하는 내재 시스템이 무너지는 변성 과정이 강조된다. 김 교수는 이번 바이오마커 연구가 두 단계를 구별하는 객관적 근거를 제공해, 환자별로 다른 치료 전략을 세우는 정밀의료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약물로 조절이 어려운 통증이 악화되는 환자에게는 늦기 전에 수술적 치료를 고려하는 것이 만성 신경병증성 통증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결과는 척추 수술 분야에서 환자 선별과 수술 시기 결정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척추관협착증 수술 여부는 영상 검사와 통증 정도, 보행 장애 등 임상 증상에 주로 의존해 결정됐다. 바이오마커가 실제 진료에 적용되면, 뇌척수액 분석을 통해 향후 만성 통증 위험이 높은 환자를 미리 확인해, 보다 공격적인 감압 수술이나 신경보존 전략을 선택하는 등 맞춤형 수술 계획 수립이 가능해진다. 향후 혈액이나 소변 등 덜 침습적인 검사로 연계된다면, 수술 전 통상 검사에 포함되는 정밀 위험도 평가 도구로 확장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정밀의료 시장에서는 이미 종양학과 류마티스 질환 분야를 중심으로 바이오마커 기반 치료 전략이 보편화되는 추세다. 척추 수술 후 만성 통증을 예측하는 바이오마커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로, 미국과 유럽에서도 후향적 소규모 분석이 일부 보고된 수준이다. 서울성모병원 연구처럼 수술 전부터 일정 기간에 걸쳐 통증 경과와 뇌척수액 지표를 동시에 추적한 전향적 연구는 드문 편이어서, 국내 연구가 국제 학계에서 참고 모델로 활용될 여지도 있다. 유럽과 북미 병원들은 MRI, 신경전도검사, 통증 설문을 결합한 예측 모델을 개발 중인데, 여기에 생체지표가 추가되면 예측 정확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이번 연구는 22명이라는 소규모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단일 기관 연구라는 한계가 있다. 뇌척수액 채취 과정의 침습성도 정기적 모니터링에 제약이 된다. 실제 임상 도입을 위해서는 다기관, 대규모 코호트에서 동일한 경향이 재현되는지 확인해야 하며, 동시에 혈액 기반 대체 바이오마커 발굴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식품의약품안전처나 해외 규제 기관의 의료기기·체외진단 규제 기준에 맞춰 분석법의 정확도와 재현성을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통증처럼 주관적 요소가 큰 증상을 객관화하는 과정에서, 설문 도구와 바이오마커 사이 상관도가 어느 수준인지 정량적 기준을 세우는 작업도 요구된다.

 

그럼에도 업계와 전문가들은 척추관협착증에서 만성 신경병증성 통증을 조기에 걸러낼 수 있는 생물학적 지표가 제시됐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 만성 통증은 재활 비용 증가, 노동 손실, 우울증 등 사회경제적 부담이 크지만, 기존에는 수술 뒤 결과를 지켜보는 수동적 관리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바이오마커 기반 예측 모델이 정교해질수록 수술 시기 앞당김, 수술 범위 조정, 수술 후 집중 관리군 선정 등 능동적인 전략 수립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 통증의학과 전문의는 척추 수술 후 만성 통증 발생률을 줄이는 데 있어 조기 진단과 수술 전략 차별화가 핵심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정형외과 및 척추외과 분야 국제학술지 유럽척추학회지에 게재돼 학문적 타당성을 인정받았다. 향후 후속 연구에서 다양한 인구 집단과 다른 척추 질환으로 대상이 확장될 경우, 허리디스크, 척추골절 등 다른 척추 수술 영역으로도 응용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계에서는 바이오마커 기반 체외진단 키트, 통증 예측 소프트웨어 등으로의 사업화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의료계와 산업계는 이번 기술이 실제 임상 현장과 시장에 안착해 척추 수술 분야 정밀의료를 현실화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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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병원#김영훈#척추관협착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