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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 재할당 너무 비싸다”…韓, LTE 가치 반영이 관건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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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이동통신 주파수 재할당 대가가 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 국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5세대 이동통신 보급이 빨라지면서 롱텀에볼루션 LTE 대역의 경제적 가치는 떨어지고 있는데, 제도와 관행에 기반한 고비용 구조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통신사의 설비투자 여력을 제약해 5G 품질 경쟁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조만간 370메가헤르츠 폭의 주파수 재할당 방침을 확정할 예정인 가운데, 이번 연구 결과가 가격 산정 방식에 반영될지 주목된다.

 

한국통신학회에 따르면 여인갑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박사는 최근 열린 학회 추계종합학술발표회에서 모바일 주파수의 재할당 가격수준 비교분석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경제협력개발기구 및 주요 17개국의 재할당 면허 가격 자료를 수집한 뒤, 국가별 경제 규모와 인구 구조 차이를 반영하기 위해 할당 대가를 일시금과 기간부과액을 합한 총액으로 정리했다. 여기에 할당량 메가헤르츠, 인구 수, 면허기간 연수, 구매력지수로 나눈 표준 가격 지표를 산출해 국별 상대 수준을 비교했다.

표준 가격 지표는 구매력지수 기준 달러 단위로 메가헤르츠, 인구, 연수를 곱한 값으로 나눈 PPP 달러 퍼 메가헤르츠 퍼 인구 퍼 연도 형태다. 이 방식은 경매나 행정 할당 등 제도가 서로 다른 국가 사이에서도 주파수 1메가헤르츠를 1인에게 1년간 쓸 수 있게 허용하는 데 드는 실질 비용을 비교하기 위한 것이다. 단순 총액 대신 주파수 폭, 면허기간, 경제력 차이를 동시에 감안할 수 있어 정책 연구에서 통용되는 분석 방식으로 꼽힌다.

 

분석 결과 한국의 주파수 재할당 표준 가격은 고가 구간에 집중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평균 표준 가격은 0.0538로 집계됐다. 연구 대상 국가들의 평균 표준 가격이 0.0025에서 0.033 범위에 자리 잡은 것과 비교하면 한국은 최저치 대비로도 최소 63퍼센트 이상 높은 구간에 속한다. 여 박사는 동일한 가격대의 고가 재할당 사례가 여러 차례 반복된 점에 주목하면서, 단발성 요인이 아니라 제도 설계와 구조적 정책 선택이 누적된 결과로 해석했다.

 

연구팀은 또 기존 최초 할당 가격과 재할당 가격을 기준으로 국가들을 네 집단으로 나눴다. 기존과 재할당 모두 가격이 높은 집단, 양쪽이 모두 낮은 집단, 최초 할당만 높고 재할당은 낮게 조정한 집단, 반대로 최초는 낮고 재할당에서 가격을 크게 올린 집단이다. 한국은 기존 가격과 재할당 가격이 모두 높은 고비용 지속 국가 집단에 포함됐다. 이 집단에서 기존 주파수 할당 가격 대비 재할당 가격 비율은 평균 약 68퍼센트 수준으로 나타났다.

 

반면 프랑스처럼 재할당 시 비용을 크게 낮추는 절감형 국가 집단의 경우 같은 비율이 약 20퍼센트에 그쳤다. 같은 대역을 장기간 사용하는 기존 사업자에 대해 재할당 과정에서 가격을 조정해 네트워크 투자 확대를 유도하는 구조가 자리 잡은 셈이다. 여 박사는 한국의 경우 재할당 시점마다 고가 정책이 반복되면 기존 사업자의 투자 부담이 누적될 소지가 크다며, 재할당 대가를 설비투자와 연계해 감면하거나 재정 수입 목표와 가격 정책을 분리하는 형태로 투자와 품질 개선의 선순환을 설계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LTE 대역의 경제적 가치가 실제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도 고비용 구조 재검토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국내 LTE 가입자는 2021년 12월 4829만 명에서 2023년 9월 1928만 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LTE 트래픽 역시 29만 6000테라바이트에서 9만 8000테라바이트로 감소했다. 5G 가입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LTE 망의 수익과 이용량 모두 축소되는 추세를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국회예산정책처 장윤정 예산분석관은 이런 변화를 반영해 LTE 주파수 350메가헤르츠 폭의 적정 가치를 약 2조 4819억 원으로 추산했다. 2022년부터 5년간 LTE 가입자 감소와 가입자당 평균 매출 하락 전망을 모두 반영해 현금흐름할인 기법을 적용한 결과다. 추정 가치를 메가헤르츠당 연간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14억 1822만 원으로, 2021년 재할당 당시 메가헤르츠당 연간 가격 21억 8600만 원과 비교하면 35.1퍼센트 낮다. 시장 가치가 축소됐는데도 재할당 대가는 여전히 이전 수준을 기준으로 형성돼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도 2021년 재할당 때 5G 확산에 따라 LTE 주파수의 경제적 가치가 떨어진 점을 고려해 한 차례 가격 조정을 단행한 바 있다. 당시 5G 무선국 구축 실적에 따라 재할당 대가를 기준 가격 대비 최대 27.5퍼센트 인하하는 방식으로 통신사의 투자 유인을 반영했다. 다만 이번에는 LTE 가입자와 트래픽 감소 폭이 더 커진 만큼 가격 인하 폭과 방식이 더 근본적인 재설계 수준으로 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통신 업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주파수 재할당 가격은 통신사가 향후 몇 년간 감내해야 할 고정비 구조를 크게 좌우한다. 5G와 향후 6G 투자 계획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사업자 입장에서는 재할당 비용이 높을수록 설비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 데이터센터, 백홀 전송망, 기지국 밀도 확대 등 품질 향상을 위한 R앤디와 인프라 투자는 국민 체감 서비스 품질과 직결되는 만큼, 정부가 재할당 대가 책정에서 품질 개선과 경쟁 촉진을 얼마나 우선순위에 둘지가 쟁점으로 떠오른 상태다.

 

해외에서도 주파수 재할당 정책은 고가 일회성 수입을 택할지, 넓은 대역을 합리적 가격에 제공해 중장기 네트워크 투자를 촉진할지 사이에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 일부 국가는 4G에서 5G로 세대 전환이 가속화되자 LTE 대역의 재할당 대가를 낮추거나 기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사업자 부담을 조정했다. 반면 일부 국가는 재정 수입 확보 수단으로 경매 경쟁을 유도해 단기 세입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해 통신 인프라 경쟁력 장기 저하 우려를 자초했다는 평가도 함께 나온다.

 

국내의 경우 주파수 재할당이 전파법과 관련 시행령에 근거해 진행되는 만큼, 제도 설계 방향에 따라 가격 책정 구조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정부는 전파 이용 효율과 공정 경쟁, 이용자 보호를 모두 목표로 둬야 하는 입장이어서 재정 수입과 통신 품질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파수 사용 기간, 반납 조건, 투자 이행과 연계된 감면 폭 등 세부 설계에서도 산업계와 전문가 그룹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조만간 열릴 주파수 재할당 공청회 등 정책 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같은 2.6기가헤르츠 대역을 사용하는 이동통신사 가운데 SK텔레콤의 재할당 대가가 경쟁사 대비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구조적 불균형 문제도 함께 논의될 전망이다. 5G 확산에 따른 LTE 대역 가치 하락을 가격에 어떻게 반영할지, 관행적으로 유지돼 온 고비용 프리미엄 구조를 그대로 둘지 여부가 향후 몇 년간 통신 인프라 투자 방향을 가를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통신 업계에서는 합리적 재할당 대가 산정이 안정적 5G 품질과 차세대 통신 투자 확대를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일부에서는 주파수 요금 인하가 곧바로 소비자 요금 인하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투자와 요금, 재정 수입 간 상관관계를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책 결정권자들은 재정 수입 극대화보다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과 이용자 편익을 기준으로 재할당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재할당에서 한국이 고비용 지속 국가 구조를 벗어나 실질 가치와 투자 여건을 반영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통신망은 디지털 경제 전반의 기반인 만큼, 주파수 가격 정책과 설비투자, 서비스 경쟁을 조화시키는 정교한 조율 능력이 향후 통신 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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