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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바이오 국가전략 확정…신약·역노화 혁신 가속 전망

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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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바이오 융합이 제약과 의료, 농식품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국면에서 정부가 국가 차원의 로드맵을 내놨다. 신약 개발부터 뇌·역노화, 의료기기, 바이오 제조, 그린바이오에 이르는 5대 분야를 AI 바이오 전략 축으로 삼고, 데이터·컴퓨팅·연구거점을 연계한 대형 인프라 투자에 나선다. 업계에서는 이번 전략을 글로벌 AI 바이오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이 선제적으로 산업 구조를 재편하려는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8일 제2차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관계부처가 공동 마련한 AI 바이오 국가전략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바이오 산업은 분자에서 개체 수준에 이르는 복잡한 생명 시스템을 다루면서 연구 기간이 길고 비용은 크지만, 성공 여부를 사전에 가늠하기 어려운 고위험 구조를 갖고 있다. 정부는 대규모 바이오·의료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학습하면 복잡한 생명 현상 이해와 지식 탐색의 효율성이 높아져 연구 생산성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에는 방대한 바이오 데이터를 학습해 두뇌 역할을 수행하는 바이오 파운데이션 모델과, 연구 계획 수립부터 실험 설계·분석까지 수행하는 에이전틱 AI가 결합한 지능형 자동화 연구가 현실화되는 추세다. 전통적 방식에서 신약 임상 1상 성공률이 약 52퍼센트 수준인 반면, AI 기반 설계와 선별을 적용할 경우 성공률이 80퍼센트 이상으로 높아졌다는 글로벌 분석도 공유되고 있다. 정부가 AI 바이오를 국가 전략 기술로 규정한 배경이다.  

 

정부는 AI 적용 가능성과 파급 효과, 단기 성과와 중장기 혁신, 국민 체감도를 기준으로 신약 개발, 뇌·역노화, 의료기기, 바이오 제조, 농식품 등 5대 핵심 분야를 선정했다. 신약 분야는 막대한 개발 비용과 긴 개발 기간을 줄일 수 있고, 뇌·역노화 분야는 고령화 심화에 따라 의료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는 점이 반영됐다. 의료기기와 바이오 제조는 디지털 전환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농식품은 식량 안보와 친환경 성장 측면의 효과가 강조됐다.  

 

전략의 중심축은 국가 AI 바이오 연구소 설립과 바이오 파운데이션 모델 구축이다. 정부는 가칭 국가 AI 바이오 연구소를 핵심 허브로 삼아 유전체·전사체·단백질·임상·이미징 등 서로 다른 종류의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학습하는 멀티모달, 세포·조직·개체 수준을 아우르는 멀티스케일 바이오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한다. 해당 모델은 제약·의료·농생명 기업과 연구기관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개방한다는 방침이다.  

 

신약 개발 분야에서는 AI가 후보물질을 스스로 설계하고 타깃 적합성, 독성, 약동학 등을 가상으로 검증하는 체계를 목표로 한다. 후보물질 탐색, 구조 최적화, 합성 가능성 예측, 비임상 설계 등 신약 개발 전주기에 AI를 투입하고, 새로운 작용 기전이나 전달체와 같은 신규 모달리티를 설계하는 기술을 중점 지원한다. 동시에 AI와 로봇을 결합한 자동화 실험 플랫폼을 확충해 합성, 시험, 검증, 소규모 제조를 빠르게 반복하는 구조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신약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개 분야는 각 산업 특성을 반영한 특화 AI 모델 개발이 핵심이다. 뇌·역노화의 경우 뇌 영상·인지 검사·유전체 정보를 함께 분석해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의 진행을 예측하고, 개인별 맞춤형 예방 전략을 제시하는 모델이 대상이다. 의료기기 분야는 센서 데이터와 임상 정보를 연계해 질환 조기 진단·모니터링 성능을 높이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이오 제조는 세포 배양 조건과 공정 변수를 학습해 생산 수율과 품질을 실시간 최적화하는 공정 제어 모델을 겨냥한다. 농식품 그린바이오는 작물 유전체, 토양·기상 데이터, 병해충 정보 등을 융합해 고수량·내재해 품종 개발과 정밀 농업을 지원하는 AI 모델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생태계 조성 전략도 병행된다. 정부는 대학·출연연·기업·병원 등 다양한 주체가 한데 모여 AI 개발자, 바이오 연구자, 데이터 과학자가 공동 연구를 수행하는 AI 바이오 혁신 연구거점을 구축한다. 내년 합성신약 분야 1개 시범 거점을 출발점으로 삼고, 2027년부터는 뇌·역노화나 바이오 제조 등 2개 이상 분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각 거점에는 대규모 모델 학습이 가능한 컴퓨팅 인프라와 AI·로봇 기반 고속 실험·검증 장비가 함께 지원된다.  

 

데이터 측면에서는 폐쇄망 클라우드를 도입하고,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데이터 활용 규제 특례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민감 정보 활용 장벽을 낮춘다. 인체유래물데이터 등 민감데이터를 외부망과 분리된 보안 환경에서 안전하게 분석할 수 있도록 하되, 거점에서 생산된 데이터는 국가바이오데이터통합플랫폼 K BDS에 표준화해 등록해 외부 연구자와 기업도 검색·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 구조가 정착될 경우, 국내 바이오 데이터가 특정 기관에 묶이지 않고 국가 차원에서 순환·재사용되는 데이터 생태계가 형성될 전망이다.  

 

고품질 바이오 빅데이터 확보도 국가전략의 핵심 축이다. 정부는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데이터 관리계획 DMP 적용을 확대해 공공 재원으로 생산된 바이오 데이터를 원칙적으로 K BDS와 연계한다. 여기에 한국인 100만 명 규모의 유전체와 임상 정보 등 대형 코호트 데이터를 구축하고, 기존 데이터에 대한 재생산과 통합을 병행해 2030년까지 700만 건 이상 바이오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다인종·다질환 데이터를 앞세운 미국, 대규모 코호트를 축적 중인 영국 등과의 데이터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포석이다.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확충도 포함됐다. 정부는 내년 하반기부터 가동되는 슈퍼컴퓨터 6호기를 AI 바이오 연구에 본격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민감데이터 전용 보안 연구 환경을 갖춘 바이오 특화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장기적으로는 양자컴퓨터와 슈퍼컴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활용해 거대 단백질 상호작용, 복합 질환 네트워크 해석, 신물질 탐색 등 기존 컴퓨팅으로는 처리가 어려운 난제 해결 연구를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AI를 연구·임상·제조 현장에 깊숙이 도입하는 만큼 규제와 윤리 논의도 불가피하다. 민감한 유전체·의료 데이터가 대규모로 수집·학습되는 만큼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주권을 어떻게 보장할지, AI가 설계한 후보물질과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제도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데이터 활용 규제 특례를 병행하면서도 보안·비식별화 기준과 활용 목적을 명확히 하고, 식약처와의 협업을 통해 AI 기반 신약·의료기기 개발에 대한 인허가 가이드라인도 정교화할 것으로 보인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AI 대전환 시대에 주요국이 과학기술 AI 전략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상황에서 한국이 바이오 분야에서 가장 먼저 AI 바이오 국가전략을 수립한 점을 강조했다. 배 장관은 우리나라가 세계적 AI 바이오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언급했다. 산업계와 연구계는 데이터와 인프라, 규제 설계가 실제 현장 수요와 얼마나 정합성을 맞출지가 향후 성패를 가를 변수라며, 이번 전략이 실질적 시장 성과로 이어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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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ai바이오#국가aibd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