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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G로 AI고속도로 연다…정부, 2030 상용화로 네트워크 재도약 노린다

이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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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G 이동통신과 초지능형 네트워크가 인공지능 산업 경쟁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로 부상하면서 정부가 2030년 세계 첫 6G 상용화를 정조준했다. 2028년 대형 국제 스포츠 이벤트와 연계한 시범서비스로 글로벌 주도권을 노리고, 6G 기반 표준특허를 30퍼센트까지 확보해 차세대 통신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전략이 5G 이후 정체된 국내 통신 장비 산업의 재도약 여부를 가를 분기점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제2회 과학기술장관회의에서 AI 시대 대한민국 네트워크 인프라를 고도화하고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하이퍼 AI 네트워크 전략을 발표했다. 네트워크를 대규모 컴퓨팅 자원과 데이터를 잇는 고속도로로 규정하고, 초거대 AI 확산에 대응하는 국가 인프라 재설계에 착수한 셈이다. 과기정통부는 전략 이행을 위해 관련 예산으로 2025년 29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으며, 이는 올해보다 18퍼센트, 금액 기준 약 450억 원이 증가한 규모다.

정부가 주목하는 변화는 AI 에이전트와 피지컬 AI의 확산이다. 사용자의 지시를 스스로 이해하고 복합 업무를 처리하는 AI 에이전트와, 로봇·드론·제조설비 등 실제 사물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피지컬 AI가 본격 도입되면, 초고해상도 데이터와 실시간 제어를 동시에 요구하는 트래픽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영역에서는 밀리초 단위의 지연시간 증가가 곧 안전성과 효율 저하로 직결되기 때문에, 기존 5G 수준을 뛰어넘는 초저지연·초정밀 네트워크가 필수로 꼽힌다.

 

이에 맞춰 정부는 2030년까지 6G 이동통신 상용화를 추진하고, 네트워크 지능화를 상징하는 지능형 기지국 AI-RAN을 전국에 구축하는 청사진을 내놨다. 현재 국내 5G는 LTE와 5G 코어를 함께 사용하는 비단독모드 NSA 방식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내년까지 5G 코어만 사용하는 단독모드 SA 체제로 전면 전환해, 기지국에서 코어망까지 전 구간에서 5G 본연의 속도·지연 성능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6G 상용화를 위한 로드맵도 구체화됐다. 단말과 기지국, 안테나, 주파수 대역 등 핵심 기술을 미리 체감할 수 있는 프리 6G 비전 페스트 시연 행사를 내년에 열고, 2028년에는 해외 대형 스포츠 이벤트와 연계한 시범서비스를 진행해 글로벌 사업자와 이용자에게 6G 사용 경험을 제공한다. 이어 2030년 정식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목표 아래, 표준화 일정과 장비·단말 생태계 조성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지능형 기지국 구축은 6G 네트워크의 차별화 포인트로 제시됐다. AI-RAN은 기지국에 AI 기반 제어 기능을 심어 트래픽 패턴을 스스로 학습하고, 시간대·지역별 혼잡도에 따라 주파수·전력을 자동 최적화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과기정통부는 내년부터 기술개발과 실증에 착수해 2030년까지 6G 기반 AI-RAN 기지국 500개 이상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러한 지능형 기지국은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엣지 컴퓨팅 노드 사이를 유연하게 연결하면서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 원격로봇수술 등 초저지연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선망 측면에서도 AI 시대 트래픽 급증을 견딜 수 있는 인프라 확충이 병행된다. 국가 백본망 용량을 2030년까지 최소 4배 이상 확대해, 전국 주요 데이터센터와 통신거점을 잇는 구간에서 병목 현상을 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AI 클라우드 기업들과의 직접 접속을 뒷받침할 해저케이블 용량도 2배 이상 키워, 초거대 AI 모델 학습과 글로벌 데이터 교환을 원활하게 지원할 수 있는 국제망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시장 측면에서 정부는 국내 네트워크 장비와 통신서비스 산업의 체질 개선을 목표로 삼았다. 2030년까지 글로벌 네트워크 장비·AI 네트워크 시장에서 20퍼센트 수준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매출액 5000억 원 이상 규모의 글로벌 도약 기업 5개를 육성하는 것이 핵심 지표다. 이는 통신사 중심의 서비스 산업을 넘어, 기지국·스위치·라우터·소프트웨어 정의 네트워크 등 장비·소프트웨어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기술 경쟁력의 정점으로 꼽히는 표준특허 전략도 공격적이다. 초저지연 통신과 AI 융합을 양 축으로 하는 차세대 6G 이동통신 기술 분야에서 세계 1위 수준인 30퍼센트의 주요 표준특허 비중을 선점하는 것이 목표다. 표준특허는 글로벌 통신규격에 포함되는 핵심 특허로, 통신장비와 단말기가 시장에 출시될 때마다 로열티 수익이 발생해 ‘기술 수출’ 효과를 낸다. 정부는 표준특허 비중을 높여, 3세대부터 CDMA까지 이어진 과거 이동통신 강국 위상을 6G 시대에 재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네트워크 전 영역의 완전자율화와 지능화 기술을 강화한다. 전송망, 액세스망, 코어망, 데이터센터에 이르는 전 구간에 AI를 도입해, 장애를 사전 예측하고,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며, 보안 위협을 실시간 탐지·대응하는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낸다. 소프트웨어 정의 네트워크와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반으로, 서비스 별로 맞춤형 품질을 제공하는 구조도 고도화한다는 방침이다.

 

정책·제도 측면에서 정부는 6G 기지국과 AI-RAN 등 핵심 네트워크 설비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연구개발 및 투자 세제 혜택을 확대한다. AI·6G 융합 장비에 대한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강화, 설비 투자 시 감가상각 특례 등 재정 인센티브가 거론된다. 동시에 6G 주파수 전략을 별도로 수립해, 초고주파 대역과 중저대역을 혼합 활용하는 주파수 할당 방안을 마련하고, 관련 국제협력에도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국제 표준화 경쟁에서도 선제적 대응에 나선다. 6G와 AI 네트워크 국제표준화 논의에 발맞춰, 표준협력 전문연구실을 운영해 국내 기업·연구기관·학계의 표준화 활동을 집중 지원한다. 국제 전기통신연합, 3GPP 등 주요 표준화 기구 내에서 6G 구조, 물리계층, 네트워크 아키텍처, 보안 규격 논의에 한국의 기술 제안을 반영하도록 지원하고, 국내 특허와 표준 문서가 연계되도록 관리하는 역할도 맡길 예정이다.

 

해외에서는 미국과 유럽, 일본을 중심으로 6G 연구와 샘플링 시험망 구축이 이미 진행 중이다. 미국은 위성통신과 지상망을 연동하는 우주 지상 통합망을 6G 핵심으로 설정했고, 유럽은 저전력·친환경 통신을 강조하는 등 각국이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중국 역시 자국 표준 중심의 6G 기술 개발을 서두르고 있어, 한국이 목표로 제시한 30퍼센트 수준의 표준특허와 2030년 상용화 일정이 실제로 달성될지 여부는 글로벌 경쟁 구도 속에서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배경훈 부총리는 AI 시대 대한민국 네트워크 인프라를 월등한 지능과 성능으로 고도화해 국민 모두가 고품질 AI 서비스를 최적의 환경에서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네트워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AI 중심 대전환 속에서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와 정부·산업계·학계·연구계의 역량 결집을 통해 네트워크 산업의 재도약을 이끌고 제2의 CDMA 신화를 다시 쓰겠다고 강조했다.

 

산업계에서는 6G와 하이퍼 AI 네트워크 전략이 실제 투자와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경우, 통신 장비·반도체·클라우드·AI 서비스까지 연계된 대규모 밸류체인 확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동시에 글로벌 표준 경쟁과 대규모 설비 투자 부담, 인력 확보 난제 등 변수도 적지 않아, 정책 추진 속도와 민간 참여 확대가 향후 성과를 가를 관건으로 거론된다. 네트워크 산업계는 이번 전략이 기술 개발을 넘어 실제 시장 안착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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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6g#ai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