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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금품 지원은 뇌물 사안 가능성”…특검, 전재수·임종성·김규환 진술 검토 후 경찰 이첩

권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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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과 통일교를 둘러싼 금품 의혹을 두고 민중기 특별검사팀과 여야 인사들이 맞붙었다. 통일교 측 핵심 인사의 법정 진술이 알려지며 편파 수사 논란이 거세지고, 특검이 관련 사건을 경찰에 넘기면서 정치권 파장이 커지는 양상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10일 기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진술에서 비롯된 정치권 금품수수 의혹을 내사한 과정에서 이 사안을 뇌물 범죄 가능성이 있는 사안으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지난달 관련 내사 사건번호를 부여하면서 금품을 주고받은 당사자들에게 뇌물 혐의 적용을 검토할 수 있다고 보고 수사보고서에 그 취지를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본부장은 앞서 8월 말 특검 조사에서 통일교가 국민의힘 인사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특히 2018년부터 2020년 무렵 전재수 의원, 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명품 시계 2개와 수천만원을 제공했다는 내용을 진술하며,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현안 해결을 위한 청탁성 지원이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이러한 진술 내용을 검토한 끝에, 금품 제공이 단순 정치활동 지원 차원을 넘어 교단 현안과 직결된 청탁성 대가가 있었다면 정치자금법 위반보다는 뇌물 성격에 가깝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의 공소시효는 7년이지만 뇌물 혐의는 15년이어서, 금품 거래 시점이 2018년 전후라면 정치자금법 위반은 시효 만료 가능성이 있으나 뇌물은 수사 여지가 남는다는 판단이다.

 

윤 전 본부장은 전 장관 외에도 비슷한 시기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에게 수천만원이 전달된 것으로 기억한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인사 중에서는 임종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금품을 받은 상대로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특검 내부에서는 윤 전 본부장의 진술 신빙성에 대한 의문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그가 구체적인 액수나 전달 경위, 장소 등을 특정하지 못한 채 “그런 것 같다”, “그럴 수도 있다”는 식의 추정성 표현을 반복해 진술했다고 파악했다. 이에 따라 특검은 법리 검토 끝에 윤 전 본부장 진술에서 비롯된 의혹이 민중기 특검의 수사 범위를 정한 특검법상 직접 수사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리고, 약 4개월 동안 내사 수준에서 별도 수사에 나서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급변한 계기는 법정 진술이었다. 윤 전 본부장이 재판 과정에서 민주당 인사들에게도 금품을 제공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정치권 일각과 야권을 중심으로 특검의 편파 수사와 늦장 대응을 겨냥한 비판이 확산됐다. 여권 인사에 대해서만 집중 수사하고 야권 인사 관련 진술에 대해서는 방치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특검은 전날 관련 내사 사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로 이첩했다.

 

수사 대상자로 거론된 정치인들은 일제히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저를 향해 제기된 금품수수 의혹은 전부 허위이며 단 하나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저는 의정활동은 물론 개인적 영역 어디에서도 통일교를 포함한 어떤 금품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전 장관은 또 “근거 없는 진술을 사실처럼 꾸며 유포하는 행위는 명백한 허위 조작이며, 제 명예와 공직의 신뢰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향후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내비쳤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 역시 통화에서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통일교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당시 식사비도 주지 않아 사비를 썼다”며 통일교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윤 전 본부장이 교단 돈을 쓰다가 배달사고를 내놓고서 특검에 아무나 생각나는 사람으로 날 언급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윤 전 본부장 개인의 자금 사용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 자신 등이 거론됐다는 취지다.

 

임종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과 관련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주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구체적인 반박 내용과 추가 입장 표명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특검이 애초 내사 착수 단계에서 뇌물 가능성을 수사보고서에 명시하고도, 관련 의혹을 특검법상 수사대상에서 벗어난다며 장기간 사실상 방치한 점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야권에서는 통일교와 국민의힘 인사 간 유착 의혹 수사에 비해 민주당 인사 관련 진술 처리 과정에 온도차가 있었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여권 일각에서는 진술 자체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내세우며 신중 대응이 불가피했다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민중기 특검팀이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면서, 향후 수사 주도권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로 넘어가게 됐다. 국가수사본부는 우선 윤 전 본부장의 진술 경위를 다시 확인하고, 구체적 금품 전달 정황과 계좌 추적, 통일교 내부 자금 집행 내역 등을 함께 살필 것으로 관측된다. 수수자로 지목된 정치인들에 대한 소환 조사 시기와 방식도 수사 방향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정치권은 통일교 금품 의혹과 특검 수사 처리 과정을 둘러싸고 당분간 공방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관련 진술의 신빙성과 법리 적용 여부를 검토한 뒤 입건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며, 국회와 정당들은 수사 상황에 따라 추가 대응 전략을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권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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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기특별검사팀#전재수#윤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