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자살은 사회 구조 문제"…김민석 총리, 종교계와 생명존중 협약

권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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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문제를 둘러싼 국가 책임과 공동체 역할을 두고 정부와 종교계가 한자리에 모였다. 높은 자살률을 줄이기 위한 협약을 맺고, 향후 사회 현안을 정례적으로 논의하는 협의체도 가동하기로 하면서 정치권 안팎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 서울공관에서 종교계 지도자들과 제1차 정부 종교계 상생협력 원탁회의를 열고 생명존중 및 자살예방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정부와 주요 종단이 국무총리 주재 원탁회의 형식으로 공식 협약을 맺은 것은 첫 사례다.

이날 회의에는 개신교를 대표해 김종혁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천주교에서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원불교에서 나상호 원불교 교정원장, 불교계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부장 성웅 스님이 참석했다. 정부와 네 개 종단이 생명존중을 공통 의제로 묶은 셈이다.

 

김민석 총리는 모두발언에서 자살 문제를 사회 구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살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구조적인 문제"라며 "정부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노력이 꼭 필요한데 그런 점에서 종교계의 역할이 참으로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특히 종교계가 절망의 순간에 선 첫 접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절망의 순간을 겪는 분들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실 수 있는 것도 종교인들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언급한 뒤 "협약이 선언을 넘어 실질적인 생명 살림의 길로 이어져서 자살률을 낮추고 국민 한분 한분에게 희망의 손길을 전하게 되길 바란다"고 기대를 밝혔다.

 

또한 협약의 의미를 자살 예방 차원을 넘어 정부와 종교계 간 상시 협력 체계 구축으로 확장했다. 김 총리는 "이번 협약식은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해 정부와 종교계가 정례적이고 지속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뜻깊은 자리"라며 "정부에서 소통하고 논의해 지속 가능한 협의체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무총리실이 사회 통합 아젠다를 중심으로 종교계와 협력 폭을 넓혀가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종교계 지도자들은 각 종단의 전통을 바탕으로 정부의 문제의식에 호응하면서 자살 예방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김종혁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은 "생명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은 정부가 가장 힘써주셔야 할 핵심 주제"라고 강조한 뒤 "이런 과제에 대해 최선을 다해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은 한국 사회의 정신적 건강을 언급하며 협약의 파급력을 기대했다. 그는 "협약식을 통해 우리나라가 정신적, 도덕적, 윤리적으로 건강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며 "가톨릭도 적극 운동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종교적 가치로서의 생명존중을 사회적 운동으로 확장하겠다는 취지다.

 

나상호 원불교 교정원장은 종교 역할의 본질을 생명 수용과 포용으로 규정했다. 그는 "생명 존중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길"이라고 강조하고 "종교가 할 수 있는 영역은 무조건 품어주는 어머니의 역할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소외와 고립을 줄이는 데 종교공동체가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성웅 대한불교조계종 총무부장 스님도 책임 의식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우리 종단이 자살예방은 그야말로 책임을 지고 예방하는 데 노력하도록 하겠다"고 말하며 종단 차원의 구체적인 실천 계획 수립을 시사했다.

 

정부와 종교계는 이날 협약을 통해 세 가지 축에 방점을 찍었다. 첫째,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위해 각 종단이 예배, 미사, 법회 등 종교행사와 교육 과정을 활용해 생명존중 인식을 강화한다. 둘째, 자살 고위험군 발굴과 지원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과 종교계의 상담, 돌봄 네트워크를 연계한다. 셋째, 효과적인 자살예방 정책 수립을 위해 종교계 현장 경험과 의견을 국무총리실 정책 논의에 반영한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생명 존중 및 자살 예방을 첫 주제로 삼은 이번 원탁회의를 출발점으로, 향후 다양한 사회 현안에 대해 상생협력 원탁회의를 정례적으로 연다는 계획을 내놨다. 국무총리가 직접 주재하면서 종교계와 사회 양극화, 세대 갈등, 돌봄 문제 등 폭넓은 의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이어질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국무총리실이 종교계를 파트너로 포섭해 사회 통합 아젠다를 강화하는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정부 정책과 종교계 입장이 충돌할 수 있는 사안도 존재하는 만큼, 논의 과정의 투명성과 시민사회와의 균형 있는 소통이 과제로 지적된다.

 

국무총리실은 원탁회의 실무 논의를 바탕으로 후속 과제를 정리해 관계 부처와 연계하고, 생명존중 캠페인과 자살 예방 대책 보완에도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향후 회의에서 추가 의제를 발굴하며 종교계와의 협력 폭을 넓혀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권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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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총리#정부종교계원탁회의#자살예방협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