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민생탄압 vs 입법독재"…여야, 연말 필리버스터 정면 충돌

전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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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를 두고 정면으로 맞붙으며 연말 입법 대결 구도에 본격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연내 사법개혁 법안 처리 방침을 내세우자 국민의힘이 비쟁점 법안까지 포함한 전면 필리버스터로 맞서면서 국회가 다시 강대강 구도로 치닫고 있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국가보증동의안 3건과 법안 59건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상정된 59건 모두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고, 첫 안건인 가맹사업법 개정안이 상정되자 곧바로 무제한 토론이 시작됐다.

첫 발언자로 나선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 "입법 독재를 하는, 헌법을 파괴하고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삼권분립을 파괴하는 입법 내란 세력"이라고 공세를 펼쳤다. 그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 법안과 언론 관련 법안을 싸잡아 비판하며 다수 의석을 앞세운 폭거라고 주장했다.

 

발언이 가맹사업법 개정안 범위를 벗어나자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법 규정을 언급하며 안건 관련 발언만 하라고 제지했고, 연단의 마이크 차단을 지시했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성 고성을 쏟아내며 본회의장은 거센 충돌 분위기로 바뀌었다.

 

공방이 계속되자 우원식 의장은 저녁 시간대 본회의 정회를 선포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의원들은 곧바로 의장실을 항의 방문해 우 의장의 발언 제한 조치를 위법이라고 주장했고, 법적 대응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약 2시간 10분 정회 뒤 본회의는 재개됐지만 긴장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나경원 의원이 가맹사업법 개정안과 무관한 주제로 발언을 이어가면 우원식 의장이 거듭 제지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여야 고성이 맞부딪치는 가운데 자정이 되면서 이날 본회의는 약 8시간 만에 회기 종료로 자동 산회됐다.

 

국회법에 따르면 필리버스터가 진행 중 회기가 끝나면 필리버스터는 종결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에 따라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차기 본회의에서 표결 절차에 돌입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국민의힘은 전면적 필리버스터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사법 파괴 5대 악법과 국민 입틀막 3대 악법을 저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법 파괴 5대 악법에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왜곡죄 신설 등이, 국민 입틀막 악법에는 유튜버 등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이 포함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 뒤 기자들과 만나 가맹사업법 개정안 자체에는 당내 동의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8대 악법에 대해 국민에게 소상히 알리는 차원에서 쟁점이 많지 않은 법안도 전체 필리버스터를 실시키로 했다"고 설명하며 전략적 필리버스터 카드임을 분명히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민생법안까지 가로막고 있다고 맞받았다. 본회의 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규탄 행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민생법안 발목잡기, 필버 악용 중단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민생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하겠다는 해괴망측하고 기상천외한 국민의힘을 국민은 용서하지 마시라"며 "민생 발목 잡기를 넘어 민생 탄압이고 민생 쿠데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민의힘이 민생을 볼모로 사법개혁 등을 막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10일부터 12월 임시국회를 소집해 사법개혁 법안을 연내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당 지도부는 우원식 의장의 일정을 고려해 11∼14일, 21∼24일 전후로 본회의를 열어 중점 법안들을 순차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우선 11일 본회의에서는 9일 필리버스터가 종결된 것으로 간주된 가맹사업법 개정안 처리가 예상된다. 이와 함께 사법개혁 패키지 가운데 쟁점이 상대적으로 적은 형사소송법 개정안,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특례법안도 우선 처리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를 골자로 한다.

 

반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처럼 위헌 논란이 당내에서도 제기된 법안은 추가 논의를 거친 뒤 21일부터 예정된 본회의에서 표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민주당은 법적 논란과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처리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기류도 엿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이 임시국회에서도 전면 필리버스터 전략을 이어간다면 민주당은 이른바 살라미식 처리, 즉 회기 종료를 활용해 하루 한 건씩 법안을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9일 본회의에서 이미 이 방식이 한 차례 가동된 셈이다.

 

필리버스터 제도 자체를 손보려는 움직임은 한발 물러선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국회의원 60명 이상이 출석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킬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우선 처리하려 했다. 소수 야당의 저항 수단을 제한하는 조항으로, 거대 의석을 가진 다수당의 입법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소수 야당 저항수단 무력화법이라고 반발했고, 향후 협력이 필요한 조국혁신당까지 반대 입장을 내면서 민주당 지도부는 일정 조정에 나섰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혁신당의 입장을 고려해 국회법 개정안의 상정은 일단 당분간은 보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연말 정국은 사법개혁, 언론 관련 법안, 민생 법안이 뒤엉킨 채 여야가 강경 전략을 주고받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국회는 사법개혁 법안과 관련해 여야의 충돌이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 속에, 향후 임시국회 본회의마다 필리버스터와 살라미식 처리가 반복되는 소모전 양상으로 치닫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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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우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