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공급망 단일 장애 지점 많다"…미국, 팍스 실리카 앞두고 한국과 원자력 논의
인공지능 공급망 재편을 둘러싸고 미국 국무부와 한국 정부가 에너지 협력을 매개로 다시 맞붙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공지능 공급망 연대체 팍스 실리카 서밋을 계기로 양국이 원자력 에너지까지 포괄한 양자 경제 대화에 나서면서, 반도체와 에너지 안보를 축으로 한 전략 공조가 한층 부각되는 모습이다.
미국 국무부는 17일 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지난 12일 워싱턴에서 열린 팍스 실리카 서밋 전날 한국 측과 별도의 양자 대화를 진행했으며, 이 자리에서 원자력 에너지 문제를 포함한 에너지 현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팍스 실리카 첫 회의에는 한국 대표로 김진아 외교부 제2차관이 참석했다.

제이콥 헬버그 국무부 경제성장 에너지 환경 담당 차관은 외신기자 대상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팍스 실리카 서밋과는 독립된 채널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별도로 우리는 양자 대화, 양자 경제 대화를 진행했다며 서밋 하루 전날 한국 측 카운터 파트와 여러 차례 접촉했고, 에너지 문제는 양자 대화 중 언급됐다고 설명했다.
구체적 의제에 대해서는 한미 간 신뢰를 이유로 말을 아꼈다. 헬버그 차관은 양자 간 논의는 기밀로 유지된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미국은 한국의 에너지 수요를 지원하는 데 전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에너지의 여러 다양한 분야에서 추진 노선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며 원자력뿐 아니라 천연가스를 포함한 비원자력 에너지 및 기타 형태의 에너지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한미가 원자력뿐 아니라 가스와 기타 에너지 자원 전반에서 공조를 넓히겠다는 뜻을 시사한 대목이다.
팍스 실리카는 미국이 인공지능 공급망 생태계를 재구축하기 위해 구성한 다자 이니셔티브다.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네덜란드, 영국,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 호주가 참여했으며, 지난 12일 열린 첫 회의에서는 아랍에미리트와 네덜란드를 제외한 7개국이 합의 사항을 반영한 팍스 실리카 선언에 공동 서명했다.
미국은 이 구상을 통해 인공지능 시대 반도체 공급망을 동맹 중심으로 재편하며,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헬버그 차관은 팍스 실리카 참여국의 정보 공유 계획을 묻는 질문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주제라면서도 첫 서밋이 지난주 개최됐고, 우리는 아직 어떤 추진 노선들을 중심으로 신속하게 진전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구상하는 과정에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그는 개별 프로젝트와 관련된 정보 공유뿐 아니라 공급망 전체를 보다 투명하고 접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잠재적인 추진 노선들도 포함된다고 언급해, 향후 회원국 간 정보 공유와 공동 프로젝트 추진 가능성을 열어뒀다. 공급망 위기 때마다 드러난 정보 비대칭과 불투명성을 줄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헬버그 차관은 팍스 실리카 출범 배경을 설명하며 현재 단일 장애 지점이 너무 많고, 공급망 전체에 신뢰할 수 없는 공급업체들이 너무 많아 문제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단일 장애 지점은 특정 공정이나 업체가 멈출 경우 전체 공급망에 치명적 차질이 발생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그는 팍스 실리카가 반도체 공급 확보를 목표로 하며 이는 최첨단 기술의 생명선으로 자동차에서 스마트폰,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적용된다며 이를 통해 다수의 중요한 공급망 안보 이니셔티브를 실행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언급은 희토류 수출 통제 등 자원·소재 무기화를 통해 미국과 동맹국을 압박해 온 중국을 겨냥한 메시지로도 읽힌다. 미국은 반도체와 핵심 소재, 장비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수출 통제와 동맹국과의 공동 투자를 병행해 왔다. 팍스 실리카는 이러한 전략을 인공지능 공급망 전반으로 확장하는 도구라는 분석도 뒤따랐다.
한편 헬버그 차관은 일본이 미국과 맺은 무역합의에 따라 추진할 5천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가 팍스 실리카와 연계되는지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궁극적으로 5천500억 달러는 별도의 트랙이라며 현재로선 서로 다른 추진 노선들이 하나로 수렴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와 인공지능 공급망 협력은 각각 독립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팍스 실리카를 매개로 한 한미 협력이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포함한 에너지 안보 논의로까지 확장되면서 향후 외교·통상 일정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관련 후속 협의 채널을 통해 구체 협력안을 조율할 것으로 보이며, 미국 역시 동맹국과의 공급망·에너지 공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시대 전략 환경 재편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