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문해력 키운다”…카카오, 비개발자 경진대회로 저변 확대
인공지능 활용 능력이 소수 개발자의 전유물에서 일상 필수 역량으로 옮겨가고 있다. 카카오가 AI를 도구로 삼아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대중에게 확산하면서, 기술 자체보다 ‘AI를 어떻게 쓰게 할 것인가’에 방점을 찍은 전략을 본격화한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시도가 생성형 AI 대중화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카카오임팩트와 브라이언임팩트가 공동 개최한 경진대회 AI 톱 100은 이런 전략을 상징하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열린 본선 문제 가운데 하나는 가상의 국가 아틀란티스 입국 심사를 소재로, 7종 입국 서류와 25개 세부 규정을 교차 검증해 위조 서류와 규정 위반자를 찾아내는 과제를 제시했다. 참가자는 AI를 활용해 누락·위조·유효기간 경과 등 다양한 조건을 동시에 점검하는 절차를 설계해야 한다.

주최 측은 참가 자격을 만 14세 이상 내국인 또는 국내 거주인으로 넓혔고, AI 도구 활용에도 별도 제약을 두지 않았다. 특정 프로그래밍 언어 구현 능력보다, 주어진 문제를 분석하고 AI에게 논리적인 프롬프트를 설계해 신속하게 답을 도출하는 역량을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다시 말해 ‘코딩 실력’보다 ‘AI에게 일을 잘 시키는 능력’을 겨룬 셈이다.
접수 결과는 비개발자 중심의 AI 활용 수요를 그대로 드러냈다. 15세에서 67세까지 약 3000명이 예선에 지원했고, 모집 하루 만에 조기 마감됐다. 본선에 오른 100명 가운데 52퍼센트는 AI 개발과 직접 연관이 없는 비개발자였다. 연령과 직군을 가리지 않고 AI를 실무·생활 도구로 삼아보려는 참여층이 두텁게 형성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비개발자 참가자 A씨는 이번 대회를 통해 AI 활용의 실질적인 난제를 체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AI 툴을 단순히 실행만 하면 해결책을 돌려주는 도구로 봤지만, 실제 문제 해결 과정에서 각 AI 서비스가 처리 가능한 영역과 한계를 파악하고, 여러 도구를 역할에 맞게 배치하는 ‘설계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단순 사용 경험을 넘어, AI를 업무 프로세스 안에 통합하는 ‘업무 설계자’ 역할이 부각된 셈이다.
카카오는 AI 톱 100과 같은 개방형 프로그램을 카카오톡 기반 AI 서비스와 결합해, 이용자가 별도 학습 없이 자연스럽게 AI를 접하도록 설계하고 있다. 대표 서비스가 챗GPT 포 카카오와 카나나 인 카카오톡이다. 챗GPT 포 카카오는 카카오톡 채팅창 안에서 바로 생성형 AI 챗봇을 호출해 질문하고 답변을 공유할 수 있게 한 서비스다. 기존 웹·앱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도 카카오톡 인터페이스 안에서 동일한 AI 기능을 경험할 수 있다.
카나나 인 카카오톡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대화 맥락을 읽고, 사용자의 상황을 추론해 먼저 메시지를 제안하는 형태다. 예를 들어 일정·위치·대화 내용을 토대로 정보 검색이나 장소 추천, 상품 추천을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용자가 ‘AI를 켜는 행위’를 하지 않아도, 카카오톡 대화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AI를 마주치게 만들어 학습 부담을 줄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서비스 모두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은 카카오톡 UI 안에 녹아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새로운 앱 설치나 별도의 사용법 학습 없이도 AI 기능을 접하게 하면서, 심리적·기술적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전략이다. 카카오는 이러한 경로를 통해 “AI는 어렵다”는 인식을 깨고, 일상 업무와 생활 전반에서 AI 사용 빈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시장 조사는 아직 격차를 드러낸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지능정보사회 이용자 패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생성형 AI 이용 경험 비율은 24퍼센트로 전년 대비 2배 증가했다. 하지만 미사용자 중 65.2퍼센트는 높은 지식 수준이 요구돼 이용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기술 보급 속도에 비해 AI 문해력, 즉 AI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의미다.
플랫폼 관점에서 보면 AI 문해력 확산은 곧 서비스 이용률과 직결된다. 카카오는 카카오톡,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페이 등 이미 높은 트래픽과 잠재 데이터를 보유한 플랫폼을 갖고 있다. 일상에서 AI를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이들 서비스에 AI 기능을 접목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여지가 커진다. 맞춤추천, 자동화 업무 도우미, 금융·모빌리티 최적화 등 각 도메인에서 AI 기반 수익 모델을 확장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부 정책 방향과의 정합성도 카카오 전략에 힘을 실어주는 요소다. 정부는 지난 8월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하면서 AI 한글화 전략을 통해 국민 누구나 AI를 활용하게 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여기에는 다양한 수준과 연령대에 맞춘 맞춤형 AI 교육, 공공·민간 서비스에 AI 접점 확대 등이 포함돼 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AI 톱 100 시상식에 참석해, 다양한 세대 참가자들이 보여준 역량과 도전정신이 대한민국 AI 기본사회 구현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가 지향하는 ‘기본사회’ 구상이, 카카오가 추진하는 AI 리터러시 확산 프로그램과 맞물리며 민관 협력 모델로 작동할 여지도 생긴 셈이다.
카카오는 경진대회와 메신저 기반 서비스 외에도, 특정 계층 대상 교육과 전문가 포럼을 병행하며 AI 생태계 기반을 넓히고 있다. 카카오 그룹은 지난 9월 국내 4대 과학기술원과 손잡고 국가 균형 성장을 위한 지역 AI 생태계 육성을 목표로 총 5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 기금은 AI 스타트업 투자, AI 인재 양성, 지역 특화 산업의 AI 전환 연구, AI 리터러시 증진 등 네 가지 축으로 집행될 예정이다. AI 기술을 수도권 대기업 중심에서 지역·중소기업·교육 현장까지 확산하려는 시도다.
소상공인 대상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카카오는 지난 8월 카카오테크 AI 스쿨 사장님 클래스를 신설해 자영업자 대상 AI 활용 교육을 진행했다. 커피숍·식당·소규모 쇼핑몰 운영자 등이 텍스트와 이미지 생성, 소셜미디어 홍보 콘텐츠 제작, 반복 업무 자동화 등을 직접 실습하며 사업에 즉시 적용할 수 있는 과정을 제공했고, 약 1350명이 참여했다. AI를 비용 절감과 매출 증대 도구로 인식하게 하는 동시에, 비IT 업종의 디지털 전환 속도를 높이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정책·기술 논의를 위한 전문가 협의체도 가동 중이다. 카카오는 지난달 국내 AI 업계와 학계 전문가 13명이 참여하는 카카오 일상 AI 포럼을 발족했다. 이 포럼은 최신 AI 기술·서비스 동향을 공유하고, 데이터 활용, 알고리즘 투명성, 인력·교육, 규제 이슈 등 각 영역 현안을 논의하는 장이다. 정기 발표와 토론을 바탕으로 카카오 서비스에 반영 가능한 실행 방안을 모색하면서, 동시에 업계 전반의 정책 제언 창구 역할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카카오 내부에서는 연구 성과의 서비스 적용을 넘어,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 책임 있는 AI 확산을 강조하고 있다. 김병학 카카오 성과리더는 카카오가 AI 연구 결과를 서비스에 구현하는 것을 넘어, 기술 투명성과 접근성을 확보해 사회적 가치와 책임을 다하는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특정 기업의 이익에만 귀속되지 않고 사회 전체와 AI 혜택을 공유하며, 다수의 참여를 기반으로 한 혁신을 통해 국내 AI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카카오의 전략이 단기적인 수익 모델보다는 장기적인 이용자 기반과 AI 문해력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본다. 메신저와 생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쉬운 접점 제공, 경진대회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실전형 활용 능력 확산, 대학과 지역·소상공인 생태계까지 아우르는 투자와 파트너십이 맞물리면, 카카오는 ‘AI가 일상에 녹아든 플랫폼’ 이미지를 선점할 수 있다. 동시에 정부가 추진하는 AI 기본사회와 AI 한글화 전략과 보조를 맞추며 정책 수혜를 받을 가능성도 커진다.
다만 AI 활용을 둘러싼 개인정보 보호, 알고리즘 편향, 교육 격차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법이 병행되지 않으면, AI 대중화 전략이 오히려 신뢰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카카오를 포함한 플랫폼 기업의 AI 전략은 기술 확산 속도와 함께, 데이터 보호·윤리 기준·교육 인프라를 어떻게 균형 있게 구축하느냐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계는 카카오의 시도가 실제 이용자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내며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향후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