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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뽕도 모발로 추적한다”…식약처, 초고감도 분석기술 개발 시동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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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마약류로 알려진 물뽕 GHB 검출 기술이 정밀 분석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짧은 체내 잔존 시간 탓에 피해 사실 입증이 어려웠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초고감도 분석법 개발에 착수하면서다. 몸 밖으로 대부분 배출된 이후에도 모발과 소변에 남은 극미량까지 찾아내겠다는 목표로, 업계와 수사기관에서는 성범죄 입증률을 바꿀 수 있는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물뽕 불법 투약 여부를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검출법과 시약 개발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식약처 마약정책과는 의원실을 직접 찾아 GHB 관리 현황과 향후 기술 개발 계획을 설명했다.

GHB는 백색 분말 또는 액체 형태로 유통되며, 음료에 몇 방울만 섞어도 10~15분 안에 약효가 나타나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복용 후 12시간 정도가 지나면 대부분 체외로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체내 대사 속도가 빠르고 소변으로 배출되는 양도 2퍼센트 미만에 불과해 통상적인 검사로는 검출이 쉽지 않다.

 

또한 GHB 관련 대사체는 인체 내에서 자연적으로도 소량 생성된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 투약된 것인지, 생리적 대사 과정에서 발생한 것인지 구분하는 데 구조적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특성 탓에 최근 5년 동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GHB를 실제로 검출한 사례는 2021년 기준 2건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우선 택한 대응은 사전 예방이다. 현재 경찰청 주도로 술이나 음료에 불법 혼입된 GHB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휴대용 간이 키트가 개발돼 시판 중이다. 민간 업체들도 매니큐어처럼 손톱에 부착하는 스티커형 키트를 개발해 연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일반 술에는 색 변화가 없지만 GHB가 1그램가량 포함된 술에 닿을 경우 즉시 빨간색으로 변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같은 간이 키트는 법적 증거 능력이 제한적이다. 강백원 식약처 마약안전기획관은 간이 키트는 피해자가 의식을 갖춘 상태에서 1차적으로 위험을 인지하는 도구일 뿐, 모발이나 체액에 대한 정밀 분석 이전 단계에서 참고 자료로 사용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사후 입증을 위해서는 과학 수사에 활용 가능한 고정밀 분석법이 필수라는 판단이다.

 

식약처는 내년부터 GHB가 극소량일지라도 소변과 모발에서 검출할 수 있는 고감도 분석 기술 개발에 본격 착수한다. 완성 목표 시점은 2027년이다. 단순히 GHB 분자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분해 과정에서 생성되는 다양한 대사체까지 추적하는 것이 핵심이다. 외부 투약 여부를 가리려면 자연 생성 패턴과 다른 대사체 조합과 농도 분포를 정밀하게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식약처는 200여 종에 이르는 마약류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다중 분석법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기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공유 중이다. 여기에 GHB와 그 대사체를 추가해 민감도를 기존보다 100배 높이는 방향으로 고도화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다. 예를 들어 기존 장비로는 검출 한계 농도 이하로 떨어졌던 수준의 GHB도 새로운 방법을 통해 신호를 포착하는 식이다.

 

특히 모발 기반 미량 분석법이 개발의 관건이다. 소변에서는 GHB가 12시간 안팎이면 사실상 모두 배출되지만, 모발에는 3~6개월까지 흔적이 남을 수 있다. 다만 잔존량이 극히 미미하고, 샴푸나 염색, 자외선 노출 등 외부 요인의 영향을 구분해내야 해 분석 난도가 매우 높다. 현재까지도 이런 수준의 모발 분석법을 표준화해 제시한 국가는 없는 상황으로, 식약처는 세계 최초 시험법을 목표로 설정했다.

 

강 마약안전기획관은 모발 시료를 이용한 미량 분석법을 완성할 경우 유엔마약범죄사무소를 통해 국제 표준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한국이 시험법을 제시하고, 각국 수사기관과 연구소가 이를 채택하면 GHB 관련 범죄 수사에서 국가 간 분석 결과의 비교 가능성과 신뢰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식약처는 이미 유엔마약범죄사무소와 함께 마약류 의존성 평가를 위한 국제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마련한 국제 가이드라인은 내달 공식 공개될 예정으로, 향후 GHB 검출법 역시 같은 틀 안에서 국제 규범으로 편입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기술 개발을 성범죄 입증 구조 개선과 직결된 사안으로 해석한다. 서영교 의원은 피해자가 극단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는 강간 사각지대를 줄이려면, 물뽕 투약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 검출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산업계와 수사기관, 국제기구가 맞물린 이번 프로젝트가 실제 현장에서 어떤 수준의 증거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주목이 쏠리고 있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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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ghb#유엔마약범죄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