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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정밀관측 위성기술”…우주항공청, 핵심탑재체 개발로 우주패권 노린다

윤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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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기상 관측과 광역 정찰 기술이 향후 우주 주권 경쟁의 분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주항공청이 2030년까지 이어지는 스페이스 파이오니어 사업 R&D의 신규 과제를 공고하며, 국내 독자 기술로 위성 탑재체 핵심 기술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해외 기술 의존도가 높던 고성능 관측 장비를 직접 개발해, 기상 예측과 재난 감시, 국가 안보 정찰까지 아우르는 차세대 저궤도 위성 체계를 구축하려는 행보다. 업계에서는 이번 과제가 한국형 위성산업 생태계 재편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주항공청은 24일부터 다음달 23일까지 스페이스 파이오니어 사업 R&D의 신규 과제 두 건에 대한 제안서를 접수한다. 스페이스 파이오니어 사업은 국가 우주기술 역량 강화를 목표로 2030년까지 16개 우주중점기술을 체계적으로 개발하는 중장기 프로그램이다. 이번에 공고된 과제는 한국 위성 체계에서 핵심 장비로 활용될 신규 위성탑재체 기술 개발에 초점이 맞춰졌다. 과제 내용은 마이크로파 라디오미터 탑재용 준광학 안테나 시스템 및 저잡음 수신기 개발, 다중입력다중출력 기반 광역 고해상도 SAR 탑재체용 디지털 빔포밍 기술 개발 등 두 가지다.  

첫 번째 과제는 저궤도 기상위성에 탑재할 수 있는 고해상도 탐측기용 준광학 안테나 시스템과 저잡음 수신기 개발이다. 마이크로파 라디오미터는 대기와 지표에서 자연적으로 방출되는 마이크로파 신호를 측정해 온도, 수증기량, 강수 형태 등을 파악하는 센서다. 이 장비의 성능은 안테나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신호를 모으고, 수신기가 얼마나 낮은 잡음으로 신호를 증폭하느냐에 좌우된다. 준광학 안테나 시스템은 전통적인 안테나와 렌즈, 반사경 구조를 결합한 형태로, 넓은 주파수 대역에서 고해상도 빔 형성이 가능하도록 설계된다. 저잡음 수신기는 전자 회로에서 발생하는 내부 잡음을 최대한 줄여 미세한 기상 신호도 탐지할 수 있게 해준다.  

 

우주항공청은 이를 통해 저궤도 기상위성에서 고해상도 대기 관측과 강수량 예측, 기후변화 감시까지 수행할 수 있는 센서 기술을 국산화한다는 목표다. 현재 국내 기상 관측용 위성 탑재체의 핵심 기술은 해외 업체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고성능 마이크로파 라디오미터와 관련 안테나, 수신기 기술은 특히 선진국 소수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어, 기술 이전과 부품 조달 과정에서 제약이 크다. 이번 과제가 성공할 경우, 독자적인 기상 관측 체계를 구축해 관측 주권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는 해외 기술 의존도를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두 번째 과제는 다중입력다중출력, 즉 MIMO 구조를 활용한 광역 고해상도 C밴드 영상 레이더 SAR 탑재체용 디지털 빔포밍 기술 개발이다. SAR는 위성이 이동하면서 전파를 지상에 쏘고 돌아오는 반사 신호를 합성해, 낮과 밤, 구름 유무와 관계없이 지표면을 고해상도로 촬영하는 레이더 영상 기술이다. 여기에 MIMO 구조를 적용하면 여러 개의 송신기와 수신기를 동시 운용해, 동일한 궤도에서 더 넓은 영역을 더 세밀하게 관측할 수 있다.  

 

디지털 빔포밍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안테나 방향을 물리적으로 바꾸는 대신, 수신된 신호를 디지털 신호처리로 합성해 원하는 방향으로 가상 빔을 만드는 기술이다. 이 방식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도 관측 모드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고, 빔 형성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어 지상 해상도 향상과 관측 범위 확대에 유리하다. 우주항공청은 MIMO 구조와 디지털 빔포밍을 결합해 고해상도와 광역 동시 관측을 구현하고, 같은 수준의 미션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위성 수를 줄이는 효과도 노린다. 비용 효율적인 다중 위성군 운용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이 기술이 확보되면 저궤도 정찰과 감시, 재난 대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해진다. 군사 및 안보 측면에서는 고해상도 영상으로 국경과 해상, 주요 시설을 상시 감시할 수 있어 정찰 자산의 자립도가 크게 높아질 수 있다. 재난 관리 측면에서는 산불, 홍수, 지진 피해 지역을 구름과 야간에 구애받지 않고 빠르게 파악해 구조와 복구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다. 또한 도시 확장, 농업 생산량 분석, 수자원 모니터링 등 민간 분야에서도 응용 범위가 넓어, 위성 데이터 기반 산업 전반에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을 보면, 미국과 유럽은 이미 고성능 SAR 위성과 기상 관측 위성 분야에서 상업 서비스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의 민간 위성업체들은 MIMO 개념을 적용한 고해상도 SAR 위성을 앞세워 국방 수요와 민간 데이터를 동시에 공략하고 있고, 유럽도 기후변화 감시를 위한 다중 위성군 프로젝트를 가속하는 중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발사체와 본체 기술에서는 일정 성과를 거뒀지만, 핵심 탑재체와 센서 분야에서는 아직 기술 격차가 남아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우주항공청이 이번 과제를 통해 MIMO SAR와 디지털 빔포밍, 준광학 안테나 같은 고난도 탑재체 기술을 직접 확보하겠다고 나선 배경이다.  

 

정책 측면에서 스페이스 파이오니어 사업은 국가 전략기술로 지정된 우주 분야의 중장기 투자 프레임에 포함된다. 우주항공청은 우주산업법과 관련 시행령 정비를 통해 민간 기업과 연구기관이 위성 탑재체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확장하는 중이다. 향후 개발된 탑재체가 실제 위성 개발 사업에 연계되려면, 발사 전 환경시험과 궤도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한 정찰·감시용 SAR 데이터의 경우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데이터 접근 권한과 활용 범위를 둘러싼 보안 규정도 세밀하게 설계될 필요가 있다.  

 

한창헌 우주항공청 우주항공산업국장은 이번 신규과제가 미래 국가 위성체계에 요구되는 정밀 관측과 정찰 기술을 국내 독자 기술로 확보하는 중요한 디딤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관이 함께 개발한 기술을 실제 위성체계에 적용하고, 글로벌 위성 산업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R&D를 통해 고성능 탑재체 기술 역량이 축적되면, 한국 위성산업이 단순 시스템 조립 중심에서 정밀 센서와 데이터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고부가가치 생태계로 전환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윤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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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항공청#스페이스파이오니어사업#저궤도정찰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