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제미나이 견제 나선 오픈AI, 어도비·디즈니와 동맹 구축
생성형 AI 주도권을 둘러싼 플랫폼 전쟁이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생태계로 확전되고 있다. 오픈AI가 이미지·문서 편집 소프트웨어 강자 어도비에 이어 디즈니까지 연달아 끌어들이며, 구글 제미나이 중심으로 짜인 판도를 흔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체 검색·동영상 인프라가 약한 오픈AI가 글로벌 슈퍼 IP와 생산성 소프트웨어를 한 플랫폼 안에 묶어, AI 기술력에 더해 콘텐츠·툴 생태계까지 동시에 선점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이번 행보를 구글과의 생성형 AI 플랫폼 경쟁에서 향후 판도를 가늠할 분기점으로 지목하고 있다.
오픈AI는 11일 현지시간으로 디즈니와 3년짜리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으로 디즈니가 보유한 약 200개 캐릭터가 오픈AI의 영상 생성 모델 소라와 챗GPT 이미지 생성 기능에 공식 탑재된다. 디즈니와 픽사 애니메이션 캐릭터뿐 아니라 마블 히어로, 스타워즈 세계관 속 주요 캐릭터까지 포함되며, 외형뿐 아니라 의상, 소품, 상징적 배경 등 세계관 전반을 활용한 영상·이미지 제작이 가능해진다.

디즈니 IP가 정식 라이선스로 들어오면서 AI가 저작권 콘텐츠를 무단 학습·도용한다는 비판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오픈AI가 정면 돌파 전략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챗GPT의 이미지 생성 기능은 올해 초 이른바 지브리풍 이미지가 유행하면서 저작권 침해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디즈니와의 계약은 고품질 오리지널 데이터를 합법적으로 학습하고 활용하는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법적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콘텐츠의 질과 다양성을 높이는 효과를 노린 조치로 풀이된다. 특히 디즈니처럼 IP 관리가 엄격한 기업과의 계약은 이후 다른 글로벌 콘텐츠 기업과의 협상에서도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픈AI는 전날인 10일 어도비와의 전략적 제휴도 공식화했다. 협약에 따라 이용자는 챗GPT 인터페이스 안에서 포토샵, 익스프레스, 애크로뱃 등 어도비의 핵심 프로그램 기능을 직접 구동할 수 있다. 데스크톱, 웹, iOS 환경을 가리지 않고 챗GPT만 열면 별도 설치 없이 사진 편집, 디자인, PDF 편집을 쓸 수 있게 되는 구조다.
사용 방식도 대화형이다. 예를 들어 사진 배경을 흐리게 처리하고 싶다면 챗GPT 대화창에 어도비 포토샵, 사진 배경을 흐리게 해 줘라고 입력하는 식이다. 그러면 챗GPT가 포토샵 기능을 호출해 해당 편집 작업을 수행하고 결과물을 반환한다. 어도비 익스프레스와 애크로뱃도 마찬가지로 채팅창에서 바로 호출되며, 말로 설명만 해도 PDF 문서 내용을 수정하거나 주석을 다는 등 전문가용 기능을 일반 사용자가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형태다.
어도비 입장에서는 생성형 AI를 앞세운 구글 나노바나나에 대한 방어 수단이자 역공 카드다. 제미나이 3.0 기반으로 개발된 나노바나나는 출시 직후부터 포토샵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기존 크리에이티브 소프트웨어 시장을 위협했다. 어도비가 챗GPT와 연동해 자사 앱을 AI 프롬프트 기반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은, 독립형 SW 모델에서 생성형 AI 플랫폼 연계형으로 전략 축을 옮기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오픈AI도 이 제휴를 통해 취약하다고 지적받던 이미지·멀티모달 서비스 경쟁력을 메울 수 있게 됐다. 구글은 제미나이 3.0과 나노바나나를 앞세워 이미지 편집, 영상 생성, 문서 요약을 통합 제공하며 빠르게 사용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오픈AI는 GPT 모델 성능에 집중해온 만큼, 실제 작업 환경에서 쓰이는 전문 툴과의 연결이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어도비와의 연동은 챗GPT를 단순 정보 검색·대화 도구에서 사진·문서 작업의 허브 플랫폼으로 확장시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시장 관점에서 보면 오픈AI는 디즈니와 어도비를 양 축으로, 콘텐츠·툴 생태계를 동시에 끌어안는 구도를 만들고 있다. 디즈니 IP는 엔터테인먼트와 마케팅, 팬 아트, 크리에이터 경제 영역을 겨냥한 확장카드다. 반면 어도비 앱 연동은 사진·영상 편집, 그래픽 디자인, 문서 업무 등 생산성 영역에서 기존 툴 사용 경험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AI를 접목하는 효과를 제공한다. 두 축 모두 챗GPT 안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사용자는 검색·창작·편집·배포까지 한 플랫폼 안에서 처리하는 사용 흐름을 경험하게 된다.
반면 구글은 검색 엔진과 유튜브라는 글로벌 최대급 데이터·콘텐츠 인프라를 자체 보유하고 있어, 외부 파트너 없이도 AI 생태계 구축이 가능한 구조다. 제미나이가 검색 결과와 동영상 콘텐츠를 직접 끌어오고, 나노바나나가 이미지·영상 편집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수직 통합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오픈AI는 이런 인프라가 없는 대신, 디즈니 같은 슈퍼 IP 보유 기업과 어도비 같은 제작 도구 강자를 파트너로 묶어 수평적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반 구글 연합의 실질적 시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기술 경쟁 측면에서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오픈AI가 GPT 5.2 버전을 서둘러 내놓은 배경에는 제미나이 3.0 이후 흔들린 기술 리더십을 회복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모델의 추론 속도, 멀티모달 이해도, 코드 생성 성능 등에서 구글과의 격차가 논란이 되자, 파트너 생태계 확대와 모델 고도화를 동시에 밀어붙이는 양상이다.
향후 관건은 저작권과 데이터 사용 규제다. 디즈니와 같은 정식 라이선스 모델이 확산될 경우, 비인가 학습 데이터를 둘러싼 소송 리스크는 줄어들 수 있다. 반대로 고가 라이선스 비용이 AI 서비스 가격과 이용자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유럽연합과 미국에서 AI 학습 데이터 공개와 저작권자 보상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는 상황이라, 이번 오픈AI 디즈니 계약 구조가 규제 당국과 다른 콘텐츠 기업들의 참고 사례가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오픈AI와 구글 간 경쟁이 모델 성능 싸움에서 콘텐츠·툴·IP를 묶는 플랫폼 생태계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생성형 AI 플랫폼이 실제로 돈을 벌려면 사용자들이 하루 업무와 창작 활동을 그 안에서 끝낼 수 있어야 한다며 디즈니와 어도비를 끌어들인 오픈AI의 행보는 그런 완결형 생태계를 노린 포석이라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번 AI 동맹이 일회성 제휴에 그칠지, 실제 사용 패턴과 수익 구조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