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 주택 매입 땐 자금출처 밝히라"…국토부, 시행령 손봤다
외국인의 주택 매입을 둘러싼 규제 강화 조치와 국토교통부가 맞붙었다. 외국인 자금이 투기성으로 유입돼 집값을 자극했다는 논란을 두고, 정부가 거래 단계에서 자금 출처를 촘촘히 들여다보는 제도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9일 외국인이 국내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허가를 받아 주택을 취득할 경우 부동산 거래신고 시 자금조달계획서와 입증 서류 제출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개정 부동산거래신고법 시행령을 공포했다고 밝혔다. 개정 시행령은 내년 2월 10일부터 적용된다.

국토교통부는 그동안 외국인이 국내 대출 규제를 받지 않고 자국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을 들여와 실거주 없이 고가 주택을 사들이며 투기성 거래를 벌였다는 지적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지난 8월에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대부분 지역을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 규제 강도를 높였다.
현재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은 서울 전역과 경기도 31개 시군 가운데 양주시, 이천시, 의정부시, 동두천시, 양평군, 여주시, 가평군, 연천군을 제외한 23개 시군이다. 인천에서는 동구, 강화군, 옹진군을 뺀 7개 자치구가 대상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지난 8월 26일부터는 해당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서 아파트를 포함한 주거용 주택을 매입하려는 외국인에게 2년 실거주 의무가 부과됐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허가 단계뿐 아니라 거래신고 단계에서도 투기 여부를 보다 정밀하게 점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개정 시행령은 매수인이 외국인인 경우 거래 신고 항목에 체류 자격과 국내 주소, 183일 이상 거소 여부를 포함하도록 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적법한 체류 자격 없이 사실상 임대업을 하는 행위나 탈세 등 부동산 관련 불법 거래를 사전에 걸러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의 주택 거래로 볼 수 있는 위탁관리인 신고의 타당성도 신고 단계에서부터 점검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서 외국인이 주택을 사고팔 경우 자금조달계획서 제출이 의무화된다. 외국인은 자금조달계획서에 해외 차입금과 해외 예금 조달액, 해외 금융기관 명칭 등 해외 자금 조달 내역을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한다. 아울러 보증금 승계 여부, 사업 목적 대출 등 국내 자금 조달 내역도 함께 기재하도록 했다.
국토교통부는 신고 항목과 증빙을 강화함에 따라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거래신고 조사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세무당국과의 공조를 통해 공평과세를 위한 세금 추징도 한층 명확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박준형 국토교통부 토지정책관은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외국인의 부동산 투기 방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이를 기초로 외국인의 투기 행위를 선제적으로 방지하고, 실수요 중심의 거래 질서를 확립해 집값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이후 통계에서도 변화가 포착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후 최근 3개월인 9월부터 11월까지 수도권 지역 외국인 주택 거래는 108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40% 감소한 수치다.
지역별 거래 비중은 서울 16.6%, 경기도 66.1%, 인천 17.3%로 나타났다.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한 감소 폭은 서울이 49%로 가장 컸다. 서울의 외국인 주택 거래는 353건에서 179건으로 줄었다. 이미 이전부터 아파트 대상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던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구와 용산구에서도 외국인 주택 거래가 작년 동기 대비 48% 감소했다.
국적별로는 최근 3개월 수도권 외국인 주택 거래에서 중국 국적이 7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미국 14%, 캐나다 3% 등이 뒤를 이었다.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한 감소 폭은 중국 39%, 미국 41%로 나타났다. 외국인 투자의 중심이 중국과 미국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두 나라 국적의 거래 감소는 시장 수요 구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위탁관리인 신고도 급감했다. 최근 3개월 동안 수도권 외국인 주택 거래 중 위탁관리인 지정 건수는 경기도에서 발생한 1건에 그쳤다. 작년 같은 기간 56건과 비교하면 98% 줄었다. 국토교통부는 위탁관리인 신고 감소가 외국인 비거주자의 임대 목적 거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정부는 외국인의 부동산 거래를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를 잇따라 손질하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에 더해 거래신고 단계에서 체류 자격과 자금 출처까지 점검하는 구조를 마련함에 따라, 외국인 부동산 정책은 점차 실거주 중심 관리 체계로 전환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향후 국토교통부는 거래신고 자료를 토대로 외국인 부동산 거래 실태 분석을 강화하고, 필요할 경우 추가 규제나 제도 보완도 검토할 계획이다. 정치권 역시 외국인 부동산 투기 규제 강화를 둘러싼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여, 다음 정기국회에서 관련 입법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