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이트 60여개 차단 해제 검토”…통일부, 5·24 조치 해제 선언도 논의
남북관계 관리 방향을 둘러싸고 통일부와 정치권의 시선이 다시 교차하고 있다. 정부가 북한 웹사이트 접속 차단 해제와 5·24 조치 해제 선언 검토, ‘북향민’ 용어 도입 등 대북·대내 정책 변화를 한꺼번에 띄우면서 남남갈등과 외교 변수 논쟁이 동시에 부각되는 모습이다.
통일부는 30일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년 업무계획의 후속 조치를 설명하며 북한 웹사이트 60여 개에 대한 접속 차단 해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상에는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주요 선전매체도 포함됐다.

통일부는 북한 사이트 차단 근거가 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위해 국회와 협의하겠다고 했다. 현행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내용의 정보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차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남중 통일부 차관은 이날 취재진에게 "국가기관이 북한 정보를 독점하면서 그 중 일부를 선별해 제공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권자인 국민들이 북한 정보를 자유롭게 접하고, 성숙한 의식 수준을 바탕으로 북한의 실상을 스스로 비교, 평가, 판단할 수 있도록 북한 정보에 대한 개방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남북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시민의 직접 판단에 더 큰 비중을 두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한 셈이다.
정보 개방 기조에 맞춰 노동신문의 자료 등급도 완화됐다. 통일부에 따르면 노동신문은 이날부터 특수자료에서 일반자료로 전환됐다. 이에 따라 통일부 북한자료센터를 비롯해 전국 20여 개 취급 기관을 찾으면 누구나 일반 자료처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게 됐다.
정부는 지난 26일 특수자료 감독부처 협의체 회의를 열고 노동신문을 특수자료에서 일반자료로 전환하기로 결정했고, 25개 특수자료 감독부처에 재분류 조치를 통보했다. 지금까지 노동신문은 북한자료 반입 규제에 따라 특수자료 취급기관만 구매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도서관 등도 구매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역사회 도서관도 노동신문을 구매해 비치할 수 있게 제도 개선을 관계기관과 협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관련 법령 정비와 예산 확보가 병행될 경우, 지방 공공도서관을 통한 북한 자료 접근성이 눈에 띄게 높아질 수 있다.
용어 정책 변화도 예고됐다.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을 지칭하는 일상 용어 ‘탈북민’의 부정적 어감과 인식을 고려해 ‘북향민’으로 점진적 대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법률상 용어인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의 ‘북한이탈주민’ 표기는 당장 손대지 않고, 사회적 통용어부터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는 구조다.
다만 일부 탈북민 단체는 명칭 변경에 반대하고 있어 논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통일부가 북한이탈주민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명칭 변경 반대가 53.4%로 과반을 차지했다. 의미와 역사성을 중시하는 입장과 낙인 효과 완화를 중시하는 시각이 부딪치는 양상이다.
통일부는 이 조사 결과 활용에 선을 그었다.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 조사 과정에서 공개된 링크로 조사에 참여하는 오픈링크 방식을 추가한 결과 조사의 객관성·대표성 측면에 일부 문제가 발생해 결과는 내부 참고용으로만 활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공식 정책 결정의 근거보다는 참고 자료로 남겨두겠다는 의미다.
법률 용어 변경 문제는 더 긴 호흡으로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이라는 법률용어를 바꿀지는 사회적 합의와 정책 방향을 확보한 뒤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논의, 당사자 단체 의견 수렴, 관련 학계 진단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남북관계의 또 다른 상징인 5·24 조치도 재조명되고 있다. 통일부 고위 관계자는 업무보고 당시 비공개 토론에서 논의된 5·24 조치 해제 문제에 대해 "별도로 해제 선언을 할지를 두고 앞선 정부들에서도 논의가 있었기에 종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5·24 조치는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응해 같은 해 5월 이명박 정부가 단행한 대북 독자제재다. 남북교역 전면 중단, 대북 신규투자 불허,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대북지원 사업 보류,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및 입항 불허 등이 핵심 내용이다.
통일부는 이미 2020년 5·24 조치가 "실효성을 상실했으며 더는 남북교류협력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평가한 바 있다. 다만 당시 별도의 해제 선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통일부는 현재도 5·24 조치 해제가 새로운 사업을 즉각적으로 열어주는 실질적 효과는 크지 않지만, 정부가 남북 신뢰 회복 의지를 대내외에 드러내는 상징적 제스처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한미 공조와 국제 제재 체제와의 정합성 논쟁도 불가피하다. 통일부는 외교 라인과의 조율 계획도 밝혔다. 외교부와 차관급 월례협의 및 주한미국대사관과 실장급 협의 개시 시점에 관해 통일부 관계자는 "내년 초로 적당한 시기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와 대북 제재 문제가 한미 간 전략 조율의 주요 의제로 다시 올라갈 여지가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남북 접경지역 관리 정책도 손질이 예고돼 있다. 통일부는 작년 4월 안보 상황을 이유로 중단된 DMZ 평화의 길의 DMZ 내 구간 재개방을 위해 국방부와 유엔군사령부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보 리스크 관리와 평화 관광 재개를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따라 접경 지역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응이 갈릴 수 있는 대목이다.
대북 정책 연구 체계 개편도 논의 대상에 올랐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업무보고에서 건의한 통일연구원의 통일부 이관과 관련해, 통일부는 이를 위한 법률 제정 등을 국무조정실과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책 연구기관 지위와 독립성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날 통일부가 내놓은 대북 정보 개방, 상징 제재 정리, 용어 재정비 구상은 남북관계의 방향 전환 신호로 읽히면서도, 국내 정치권과 당사자 집단 간 찬반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국회는 정보통신망법 개정과 용어·제도 관련 법률 정비 필요성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며, 정부는 외교·안보 라인과의 협의를 거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단계적으로 확정해 나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