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시트 신속 이행” 한미 외교차관 회담…부문별 협의채널 구축 합의
정상회담 합의 이행을 둘러싼 한미 간 이해득실이 맞붙었다.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조치를 놓고 양국 외교 차관이 직접 마주 앉으며 한미 동맹 현대화 전략이 다시 정국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1일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에서 외교차관 회담을 열고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조인트 팩트시트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이행 방향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회담에는 한국 측에서 박윤주 외교부 제1차관, 미국 측에서 크리스토퍼 랜도 국무부 부장관이 참석했다.

박윤주 차관은 회담 직후 취재진과 만나 “팩트시트와 관련해서 미측과 신속하고 적극적인 이행을 해 나가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기본적으로 협의채널을 잘 구축해서 여러 이슈를 심도 있게 진전시킬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적극적이고, 가능하면 신속하게 일을 추진하자고 했다”며 “여러 이슈를 병행해서 논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양측은 팩트시트 이행을 위해 부문별 협의체를 정비하기로 했다. 박 차관은 “담당하는 기관간에 서로 누가 누가 대화에 나설지를 매칭해서 꾸려가기로 했다”며 “미측에서 담당자를 지정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미측과 매칭해서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 외교부와 미국 국무부를 중심으로 원자력, 방산·조선, 비자·출입국 등 각 분야별로 실무 채널을 촘촘히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외교차관 회담은 10월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11월 14일 조인트 팩트시트 발표 이후 양국이 가진 첫 고위급 협의라는 점에서 주목됐다. 팩트시트에는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아울러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대한 미국 측 승인도 담겨 한미 원자력 협력과 군사 협력의 폭을 넓히는 내용이 핵심으로 꼽힌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랜도 부장관은 회담에서 한국의 대미 투자 확대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조선업과 같은 핵심 전략부문 전반에서 한국의 미국 제조업에 대한 전례 없는 투자 약속을 환영한다”고 밝히며, “한국의 투자가 미국의 재산업화 노력에 상당히 기여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국 조선·제조 기업들의 미국 내 설비 확대와 고용 창출이 바이든 행정부의 공급망 재편과 제조업 부흥 전략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부각한 셈이다.
국무부는 또 박 차관과 랜도 부장관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포함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0월 29~30일 국빈 방한이 남긴 의미를 공유했다고 전했다. 양측은 이번 방한이 한미 동맹의 전략적 범위를 인도·태평양 전역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나누며 성과를 상기했다.
이날 회담에서 두 나라는 팩트시트 이행 문제 전반을 조율했다. 국무부는 양측이 논의한 내용에 “한반도 및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70년 이상 평화·안보·번영의 핵심 고리 역할을 한 한미 동맹의 현대화”가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군사·안보 중심 협력에 더해 원자력, 최첨단 제조, 공급망, 출입국 제도 등으로 협력 영역을 넓히겠다는 구상이 동맹 현대화의 방향으로 제시된 셈이다.
양측은 경제·안보 의제와 함께 실무 현안도 점검했다. 국무부는 박 차관과 랜도 부장관이 조지아주 한국인 근로자 체포·구금 사태를 계기로 가동된 한미 간 기업 출장 및 비자 실무 그룹의 최근 성과도 언급했다고 밝혔다. 이 실무 그룹은 기업 인력의 원활한 이동, 비자 발급 절차 개선, 현지 사법 리스크 대응 등을 다뤄왔으며, 한미 경제 협력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원자력과 핵추진 잠수함 등 민감한 현안이 동맹 현대화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구체화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원자력 평화 이용 범위,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 우라늄 농축 수준 등은 미국 내 법적 요건과 국제 비확산 규범과 직결되는 만큼, 향후 세부 이행 협상이 길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는 한미 간 협의 채널이 본격 가동되면 분야별 후속협의와 국내 제도 정비 작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교부는 한미 원자력 협력, 방산·조선 산업 협력, 비자·출장 제도 개선 등에 관한 후속 일정을 미국 측과 조율한다는 방침이며, 국회는 관련 법·제도 논의를 다음 회기에서 본격화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