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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개 설계로 한달 내 항체 후보"…갤럭스, AI로 신약개발 속도전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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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반 단백질 설계 기술이 항체 신약개발의 속도와 방식을 바꾸고 있다. AI가 타깃 단백질의 결합 부위를 정밀 예측해 항체 구조를 직접 설계하면서, 과거 동물 실험에 의존하던 발굴 과정이 설계 중심 공정으로 재편되는 흐름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성과가 신약 후보 도출 단계의 효율성 경쟁에서 의미 있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신약개발 기업 갤럭스는 자체 플랫폼인 갤럭스디자인을 활용해 타깃당 50개 수준의 설계만으로 약물 후보로 개발 가능한 수준의 결합력을 지닌 항체 후보를 확보했다고 26일 밝혔다. 전통적 항체 발굴이 수천 개 이상의 후보 스크리닝과 1년 이상 실험에 기반했던 것과 비교하면, 설계 개수와 기간을 동시에 줄였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항체 치료제 후보는 주로 동물에 항원을 투여해 면역 반응을 유도하고, 체내에서 우연히 생성되는 항체를 선별하는 방식으로 발굴돼 왔다. 이 과정에서는 원하는 결합 특성을 가진 항체가 실제로 나올지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고, 실험과 선별에만 수개월에서 1년 이상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았다.

 

갤럭스는 이런 한계를 줄이기 위해 AI 기반 항체 설계 기술을 전면에 내세웠다. 갤럭스디자인은 단백질 구조 예측 알고리즘과 결합 친화도 예측 모델을 결합해, 특정 치료 타깃에 강하게 결합하도록 항체 서열과 입체 구조를 동시에 설계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회사에 따르면 플랫폼이 예측한 항체 구조는 극저온 전자현미경 실험으로 확인한 실제 구조와 정밀하게 일치하는 수준을 보여, 구조 예측 정확도와 활용 범위를 함께 입증했다.

 

회사 측은 이번 연구에서 광범위한 무작위 탐색 대신 각 타깃당 50개로 압축한 설계만 실험했음에도, 30퍼센트 이상이 치료 타깃에 정확히 결합하는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과거 실험 중심 접근법과 기존 AI 설계 방식이 대량 후보 생성에도 불구하고 낮은 실질 히트 비율을 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수천 배 수준으로 효율을 끌어올린 성과라는 주장이다.

 

특히 이번 사례는 드노보, 즉 완전히 새로운 서열의 항체를 설계한 사례 중에서도 글로벌 상위권 성공률에 해당한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보고된 다섯 개 주요 드노보 항체 설계 그룹의 성과와 비교했을 때도 타깃 결합 비율과 구조 정합도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고 덧붙였다.

 

후보 물질의 기능적 성능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가 확인됐다. 갤럭스에 따르면 설계된 항체 중 상당수는 별도의 추가 최적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한 달 이내에 약물 후보로 전환 가능한 수준의 결합력을 보였다. 개발 초기 단계에서 구조 설계와 결합 친화도 확보가 동시에 이뤄진 만큼, 이후 공정에서는 안정성 개선과 생산성 평가에 집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성과는 항체 신약 개발 현장에서의 활용 가능성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특정 질환 타깃에 대해 약물 재창출이나 후발 주자 전략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결합 방식을 갖는 차별화된 항체를 설계해 특허성과 임상적 차별성을 동시에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희귀질환이나 기존 항체로 공략이 어려웠던 타깃에서도 후보 도출 속도를 앞당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딥마인드와 인실리코메디슨 등 주요 AI 신약 개발 기업들이 단백질 구조 예측과 분자 설계 기술을 활용해 후보 발굴 효율을 높이는 경쟁이 진행 중이다. 다만 항체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단백질을 드노보 방식으로 설계해 실험 구조와 맞춰 검증한 사례는 아직 많지 않아, 구조 정확도와 히트 비율을 동시에 입증하는 것이 기술 경쟁의 핵심 지표로 꼽힌다.

 

정책과 규제 측면에서 AI 설계 항체는 기존 바이오의약품과 동일하게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야 한다. 국내외 규제기관은 후보 물질이 AI로 설계됐는지 여부보다는, 비임상 독성 시험과 임상시험 설계의 적정성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AI 설계 과정에서 활용된 데이터의 출처와 알고리즘 설명 가능성에 대한 요구는 점차 강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석차옥 갤럭스 대표는 이번 연구가 항체 개발 방식 전환의 신호라고 강조했다. 그는 항체를 발견하는 시대에서 필요한 항체를 처음부터 설계하는 시대로 넘어가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기존 방식으로는 확보하기 어려웠던 차별화된 항체 치료제 개발에 본격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는 AI 설계 항체가 실제 임상과 시장 단계에서 어느 수준의 성과를 보여줄지, 그리고 기술 효율성이 신약개발 전체 기간 단축으로 이어질지에 주목하고 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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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스#갤럭스디자인#ai신약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