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 장애로 10시간 멈췄다”…미국 CME, 글로벌 파생시장 가격 혼란과 구조적 리스크 부각
현지시각 기준 27일, 미국(USA) 시카고에 기반을 둔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전산 장애가 발생해 글로벌 파생상품 거래가 10시간 넘게 멈춰 섰다. 이번 사태는 세계 최대 파생상품 거래소의 시스템이 중단되면서 국제 금융시장의 선물·옵션 가격과 연계된 현물·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까지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뉴욕증시가 추수감사절로 휴장한 가운데 파생상품 거래까지 동시에 멈추는 이례적 상황이 겹치며, 글로벌 자산가격 형성 구조의 취약성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CME에 따르면 한국시간 28일 오전 11시 40분께부터 선물과 옵션, 원자재 관련 상품의 전산 거래가 중단됐다. CME는 거래량의 약 90%가 집중된 전자거래 플랫폼 글로벡스(Globex)를 포함해 주요 상품 거래가 일제히 멈췄다고 밝혔다. 이후 같은 날 한국시간 오후 10시께부터 상품별로 순차적인 거래 재개에 착수했고, 한국시간 오후 10시 30분부터 글로벡스 선물·옵션 시장의 거래가 정상적으로 재가동됐다고 설명했다.

CME는 주식, 채권, 통화, 원자재 등 다양한 자산군을 기초로 한 선물과 옵션을 상장하는 세계 최대 규모 파생상품 거래소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나스닥100 지수 선물 등 글로벌 벤치마크 상품이 집중돼 있고, 원유·농산물·금리 선물도 대량으로 거래된다. CME는 자사 시장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핵심적인 가격 기준을 제공해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번 거래 중단이 현물 시장 가격 형성과 유동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주요 투자자들에게 제시되는 벤치마크 가격 정보의 공백을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장애는 미국 시간으로 뉴욕증시가 추수감사절(27일) 휴장 중이던 야간에 발생해 파급력이 더욱 부각됐다. 미국(USA) 현물 주식시장이 멈춰 있는 상황에서 파생상품 거래까지 동시 중단되면서, 통상 주식시장 휴장 시에도 열려 있던 선물·옵션 시장이 가격 신호를 제공하지 못한 것이다. 시장 참가자들은 위험 관리와 가격 탐색 기능이 동시에 마비되는 초유의 상황을 겪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도 여파가 미쳤다.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해외 주가지수, 원유, 채권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다수 ETF는 통상 CME 산출 가격을 기준으로 거래된다. CME는 이와 관련해 거래 중단 시 벤치마크 정보 부재로 ETF 가격이 내재가치에서 괴리될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 증시 개장 시간대에 S&P500과 나스닥100 지수 정보를 CME에 의존하는 국내 개인투자자 비중이 커, 전산 장애가 발생할 경우 호가 및 체결 가격 왜곡 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내외 금융회사들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글로벌 은행과 증권사, 자산운용사들은 CME 선물·옵션 상품을 활용해 보유 자산의 가격 변동 위험을 헤지해 왔다. CME는 선물 거래가 중단되면서 시장 참가자들이 헤지 포지션을 새로 구축하거나 조정하기 어려워졌고, 이로 인해 시장조성자로서의 기능 수행에도 장애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유동성 공급자들이 의무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호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위험 회피 수단이 사라지면서, 스프레드 확대와 유동성 축소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데이터센터 냉각 시스템 장애로 드러났다. CME는 전산 마비가 데이터센터 냉각 설비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밝히고, 거래 재개와 함께 시스템 점검 및 복구 조치를 병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데이터센터 운영사 시러스원(CyrusOne)을 인용해 미국 시카고(Chicago) 지역의 한 데이터센터에서 냉각 설비에 장애가 발생한 것이 CME 전산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보도했다. 핵심 인프라로 여겨지는 금융 데이터센터의 물리적 설비 문제가 글로벌 파생상품 가격 형성에 파급력을 미친 사례다.
CME는 과거에도 기술적 결함으로 거래 차질을 겪었다. 2014년에는 농산물 관련 파생상품 거래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해 일부 상품 거래가 중단됐고, 2019년 2월에도 전산 시스템 문제로 약 3시간 동안 전반적인 파생상품 거래가 멈춘 전례가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반복적인 기술 장애 이력이 향후 감독당국의 점검 강화와 규제 논의를 촉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핵심 금융 인프라로 지정된 대형 거래소의 운영 안정성 문제가 거듭 드러나면서, 백업 시스템과 데이터센터 다변화 요구도 커지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글로벌 파생상품 시장 구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제기된다. 금융서비스회사 마렉스(Marex)의 토머스 텍시어 청산부문 그룹장은 이번 사태가 “선물 거래시장이 얼마나 특정 거래소에 집중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주요 파생상품의 경우에도 대체해 거래할 수 있는 거래소가 많지 않다고 지적하며, 특정 인프라 장애가 전 세계 파생상품 가격과 유동성에 미치는 구조적 위험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이번 장애에 대한 각국 감독당국의 공식 반응은 아직 제한적이지만, 주요국 규제 기관과 중앙은행들이 시스템 리스크 관점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선물과 옵션 가격은 주식·채권·통화·원자재 등 기초자산 전반의 기대 수익률과 변동성을 반영하는 지표로 활용되기 때문에, 대형 거래소의 기술 리스크는 곧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제 매체들은 CME가 제공하는 가격 정보 공백이 파생상품 시장뿐 아니라 자산배분 전략, 알고리즘 거래, 리스크 관리 모델 전반에 연쇄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 여론과 주요 외신은 글로벌 파생상품 시장의 높은 집중도와 인프라 취약성을 지적하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데이터센터 냉각 설비와 같은 물리적 인프라 장애가 글로벌 금융거래를 멈출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진단했고, 월스트리트저널과 같은 미국 경제지들은 CME 장애가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신뢰를 시험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유럽(Europe) 금융권에서는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유럽 거래소와의 역할 분담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디지털 전환이 고도화된 금융시장에서 기술 인프라 안정성이 새로운 핵심 규범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고 본다. 자산운용사와 헤지펀드, 연기금 등 대형 투자자들이 특정 거래소에 의존하지 않는 다중 거래 경로와 백업 벤치마크 확보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파생상품 시장의 네트워크 효과와 유동성 집중 특성상, 단기간에 구조가 분산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CME는 시스템 복구와 재발 방지 대책을 병행하겠다고 밝혔으며, 데이터센터 운영사와 함께 냉각 설비 문제의 원인 규명과 보강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CME의 후속 조치와 감독당국의 평가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계 최대 파생상품 거래소의 전산 장애가 드러낸 구조적 취약성이 향후 국제 금융 인프라 규제와 시장 구조 개편 논의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