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형자 선거권 박탈, 자유권규약 위반”…유엔 자유권위원회, 정부 배상·법 개정 권고
선거권을 제한하는 현행 병역거부 수형자 규정이 국제 기준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양심적 병역거부' 수형자의 선거권 박탈이 자유권규약에 어긋난다며, 한국 정부에 권리 구제와 같은 시정 조치를 촉구했다. 해당 문제는 병역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의 선거권이 2016년 4월 총선에서 제한되면서 불거졌다.
8일 법무부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 개인진정을 심리한 끝에 '자동 징역형 선고에 따른 선거권 박탈은 합리성·객관성·비례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최종 견해를 내놨다. 위원회는 "병역법에 따라 진정인들이 징역형을 선고받음으로써 자동으로 발생한 선거권 박탈 조치는 합리성·객관성·비례성이라는 필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자유권규약 25조에 따른 진정인들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위원회는 수형자에 대한 자동적 선거권 박탈 조치가 재범 억제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거권 제한 필요성에 대해서도 범죄 유형이나 형기만으로 일괄 결정하기보다는 명확한 법적 기준과 심사가 전제돼야 함을 강조했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강력범죄도 범죄의 양상이나 동기에 따라 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를 저해할 수 있다"면서 "선거권 제한 기준은 각국 입법기관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자유권위원회는 선거권 박탈이 형벌과는 별개로 추가 제재 성격임을 지적하면서, "범죄가 유권자 조작, 선거자금 범죄 등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한 선거권 제한은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위원회는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가 사상·신념·종교의 자유에 내재된 권리임을 강조했다. 따라서 선거권 박탈은 이 본질적 자유를 행사한 결과로서 국제규약 정신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자유권위원회는 "중대한 사유가 없는 한 수형자는 다른 시민과 동등하게 민주적 절차에 참여할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자유권위원회는 정부에 피해자 구제 조치와 배상을 권고하며, 유사 사례 방지 차원에서 수형자 선거권 제한 관련 법률·이행방식 전반의 점검을 요구했다. 아울러 최종 견해의 이행 결과를 180일 이내 위원회에 보고할 것을 촉구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은 유엔의 권고가 향후 병역거부 수형자는 물론, 전체 수형자 선거권 제한제도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이 문제에 대해 법률적·제도적 재검토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