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가상서킷 점령한 완성차”…현대차·도요타, e스포츠 공략→젊은 층 잡기 승부수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레이싱게임과 e스포츠를 활용한 마케팅에 속도를 올리며 디지털 세대와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게임 속 가상 서킷을 새로운 전시 공간으로 삼아 신차를 선보이고, 대규모 온라인 토너먼트와 후원 활동을 연계해 브랜드 경험을 한층 입체적으로 설계하는 전략이다. 자동차 산업의 주요 고객층이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로 빠르게 이동하는 흐름과 맞물리며, 완성차업계의 마케팅 무대가 현실 도로에서 가상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는 레이싱 게임 아스팔트 레전드와 손잡고 진행한 글로벌 협업 캠페인으로 영국 마케팅 전문 매체 더 드럼이 주관한 더 드럼 어워즈에서 디지털 경험: 오토모티브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고 30일 밝혔다. 아스팔트 레전드는 전 세계에서 1억 이상의 다운로드 수와 월 900만 명 이상 이용자를 보유한 대표 레이싱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차는 이 게임 내에서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5 N과 콘셉트카 N 비전74를 구현하고, 이를 중심으로 글로벌 토너먼트를 개최했다. 이 토너먼트에는 총 188만 명의 유저가 참여했으며, 캠페인 기간 누적 노출 1억3천700만 회, 총 플레이 시간 1천538만 분이라는 수치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 드럼이 집계한 캠페인 성과에 따르면 현대차의 브랜드 호감도는 7%포인트 상승했고, 캠페인 참여자의 47%가 구매 의향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됐다. 레이싱게임 속 차량 체험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브랜드 인식과 구매 의사 형성 단계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게임 이용자가 반복 플레이를 통해 특정 차종의 주행 감각과 성능 이미지를 내면화하면서, 기존 TV와 옥외 광고 중심의 수동적 노출과는 다른 능동적 체험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광고·마케팅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대차는 게임쇼와 아케이드 게임을 활용한 접점 확장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세계 최대 규모 게임쇼로 꼽히는 게임스컴 2025에 단독 부스를 마련해 자체 개발한 레트로 아케이드 게임 인스터로이드 레트로 아케이드를 선보였다. 관람객들은 레트로풍 그래픽과 조작 방식을 통해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모빌리티 이미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동시에 국내 인기 모바일 레이싱게임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에는 아이오닉9, 아이오닉6, 인스터로이드 등을 신규 카트로 구현해, 일상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에게 현대차 전동화 라인업을 자연스럽게 노출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그란 투리스모 7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온라인 레이싱 대회 도요타 가주레이싱 GT컵을 6년째 이어가고 있다. 도요타의 GR 라인업 차량을 게임 내에서 선택해 전 세계 드라이버가 온라인으로 경쟁하는 방식으로, 단발성 이벤트를 넘어 장기적인 e스포츠 리그에 가까운 구조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자동차 제조사가 단지 게임 내 차량 스킨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서, 레이싱 문화를 함께 기획하고 운영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독일 BMW 역시 그란 투리스모 7의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며 레이싱 팬과의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그란 투리스모 월드 시리즈에서는 BMW M6 GT3 등 고성능 레이싱카가 주요 차량으로 등장했고, 실제 e스포츠 대회에는 BMW 소속 드라이버들이 참가해 가상과 현실을 잇는 스토리텔링을 시도했다. 가상 레이싱 무대에서 BMW 특유의 주행 감성과 브랜드 헤리티지를 반복적으로 각인시키는 전략으로, 고성능차에 대한 선호를 높이는 간접적인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기아는 게임 내 콘텐츠보다는 e스포츠 팀 후원을 통해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다. 2021년부터 e스포츠팀 디플러스 기아와 후원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팀 명칭에 브랜드를 직접 결합하는 방식으로 브랜드 노출을 극대화했다. 디플러스 기아는 리그 오브 레전드, 배틀그라운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레인보우 식스 시즈, 발로란트, FC온라인 등 6개 종목 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각 리그 중계와 콘텐츠를 통해 기아 브랜드는 전 세계 e스포츠 팬들에게 반복 노출되고 있다. 이는 특정 레이싱 장르로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게임 장르를 즐기는 폭넓은 디지털 세대를 포괄하는 접근 전략으로 해석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게임과 e스포츠 시청이 일상화된 세대가 자동차 산업의 차세대 핵심 수요층으로 부상한 점에 주목한다. 특히 이들은 최신 기술과 트렌드에 개방적일 뿐 아니라 전동화와 친환경 mobility에 대한 관심이 높아,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차 비중을 확대하려는 완성차업계의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젊은 세대는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선호하고 친환경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완성차업계가 추구하는 방향과 궤를 같이한다며, 게임과 e스포츠를 기반으로 한 마케팅이 향후 브랜드 충성도와 전동화 전환 속도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이 게임을 매개로 한 마케팅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장기 전략으로 구사하면서, 향후에는 차량 개발 단계에서부터 게임 엔진과의 연동, 가상 테스트베드 활용, 사용자 데이터 분석을 통한 상품 기획 등 보다 심화된 협업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실 도로에서 축적된 주행 데이터와 가상 환경에서 생성되는膨대한 플레이 데이터를 결합하면, 차량 성능과 사용자 경험 전반을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향한 완성차업계의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게임 속 가상 서킷은 더 이상 부수적 무대가 아니라 향후 브랜드 전략을 좌우할 중요한 전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