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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강경진압 책임자 미화 안돼"…시민단체, 박진경 국가유공자 등록 철회 요구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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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의 가해 책임을 둘러싼 역사 인식 갈등과 윤석열 대통령실을 향한 시민단체의 공세가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제주 4·3 사건 당시 강경 진압을 지휘한 고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을 두고 시민사회가 강력 반발하면서, 정부의 보훈 정책과 과거사 청산 기조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와 제주4.3범국민위원회는 12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보훈지청이 박진경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등록한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에는 6·25 전쟁과 삼청교육대 피해자 단체 등이 참여하고 있다.

백경진 제주4.3범국민위원회 이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지정은 내란 청산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공무원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했음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당장 지정을 취소하고 사태의 경위를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를 문책하라"고 요구했다.

 

박진경 대령은 1948년 5월 제주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9연대장으로 부임해 도민에 대한 강경 진압 작전을 지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4·3 관련 단체들은 오랫동안 그를 양민 학살 책임자로 규정해 왔다. 그러나 서울보훈지청은 2024년 10월 박 대령이 받은 무공수훈을 근거로 유족이 낸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승인한 바 있다.

 

강경 진압 책임자가 국가유공자 예우 대상에 포함되자, 과거사 피해자 단체들은 도덕성과 역사 인식 모두에 어긋나는 결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제주4.3범국민위원회는 4·3특별법 제정과 명예 회복 조치가 수십 년에 걸쳐 진행돼 온 상황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정을 즉각 취소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경실련은 "제주 4·3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국가폭력 사건"이라며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은) 민주주의의 명백한 후퇴이며, 국가폭력의 진실을 밝혀 피해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국가의 책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은 박 대령의 공적이 일부 전투 무공에 근거했더라도, 4·3 강경 진압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 의혹이 중대하다는 점에서 보훈당국이 보다 엄격한 검증과 사회적 논의를 거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보훈당국은 아직 별도의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은 상태다.

 

정치권에서도 향후 논쟁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야권을 중심으로 4·3 진상 규명과 피해자 명예 회복을 추진해 온 만큼, 국가유공자 선정 기준을 둘러싼 국회 차원의 점검 요구가 제기될 전망이다. 여권 내부에서도 과거사 인식 논쟁이 재점화될지 주목된다.

 

시민사회는 대통령실과 국가보훈부에 대해 박진경 대령 국가유공자 등록 취소와 함께 신청·심사 과정 전반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책임 소재를 규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은 보훈 정책과 과거사 청산의 기준을 두고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며, 국회는 관련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보훈 행정 점검과 제도 개선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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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경#제주4.3범국민위원회#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