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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증원안은 코트 패킹 우려"…법조계, 사법부 정치화 경고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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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더불어민주당과 법조계의 시각 차이가 뚜렷해지고 있다. 여당이 추진하는 대법관 증원안을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 행정부의 사법부 장악 수단인 코트 패킹에 해당할 수 있다며 강하게 우려를 제기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입법학회는 20일 오후 서울 역삼동 변협 세미나실에서 사법제도 개편 관련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법원조직법 개정안과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 개편, 법관 평가 제도 등을 두고 법원과 헌법재판소, 학계, 언론계의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로 마련됐다.

토론자로 나선 이진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더불어민주당의 대법관 증원 법안에 대해 강한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행정부가 대법관 12명을 추가 임명해 다수의견을 확보하는 구조로 코트 패킹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코트 패킹을 "현행 법률이 예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현존하는 법원의 구성을 변경해 법정의견의 변경을 초래하는 행위"라고 정의하며, 1937년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대법관 증원 시도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행정부가 사법부를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할 경우 국가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결과의 내재적 위험성으로 인해 조직변경의 동기와 취지를 불문하고 비판의 여지가 있다"며 "사법부 장악 위험을 방지하면서 필요한 조직개혁을 이행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직 법관들도 대법관 증원안에 대해 유사한 우려를 표했다. 박병민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부장판사는 "구체적 권리구제 확대를 주된 취지로 하는 대법관 증원안에 경청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대법관 수의 급격한 증가는 대법원의 법률심 또는 정책법원의 기능을 약화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박 부장판사는 특히 정치적 파장에 주목했다. 그는 "무엇보다 단기간에 걸친 대법관 수의 증가는 대법원에 대한 코트 패킹, 즉 정치성 논란에 대한 오해를 피하기 어렵고, 제한된 인적·물적 자원하에서 재판 제도의 중심이 돼야 할 하급심 재판의 약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재판제도분과위원회 소속인 그는 내부 논의를 언급하며 "이런 정치적 논란과 하급심 약화가 대법관 증원안에 대해 일선 법관들이 가장 우려하는 문제였다"고 전했다.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 개편안에 대해서는 조건부 찬성이 나왔다. 박 부장판사는 "대법관 제청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과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어 입법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헌법에 대법원장의 독자적 권한으로 대법관 제청권이 규정된 만큼 추천위가 그 고유의 제청 권한을 과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규범적 한계는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학계에서도 대법원의 독립성 훼손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박종현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의 업무 과부하를 해소하고 부실한 업무성과를 보여주는 법관에 대한 자극이자 독려로 대법관 정원 확대나 법관 평가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개편 방안"이라면서도 "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법원의 독립성 침해에 대한 사회적 우려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대법관 수 급증이 정치적 해석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 교수는 "대법관 수를 급작스럽게 늘리는 식의 코트 패킹은 사법의 효율성·신속성 제고 등 외견적 목적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독해될 수밖에 없다"며 "당파적 목적을 위해 기존의 헌법 구조에 중대한 변화를 수반하는 것으로 충돌하는 정당들 간의 장기적인 앙갚음식 싸움의 망령으로 비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발제를 맡은 대한변호사협회 측 인사들은 대법관 증원과 후보추천위원회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주현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제2정책이사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파기환송 판결이 대법관 증원론의 계기가 됐다는 정치권 일각의 해석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사법개혁의 원인에 대한 몰이해를 야기하고 국민의 사법 불신에 대한 인식을 저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이 판결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 기각 제도를 핵심 쟁점으로 제시했다. 그는 "재판에서의 법원의 이유 기재 의무는 헌법상 재판청구권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위헌적 심리불속행 제도를 폐지하고, 이와 연계해 대법관 수 증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관 증원이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이라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 개편과 관련해 김 변호사는 "증원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다양성 확보를 위한 시도로서 유의미하다"며 그간의 비밀주의적 후보 추천 관행을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했다. 추천 절차의 투명성을 강화해 대법원 구성의 대표성과 신뢰를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법관 평가 제도 도입을 둘러싼 논의도 이어졌다. 김기영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제2기획이사는 법관 근무평정에 변협의 법관평가 결과를 반영하는 방안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약 10년간 축적된 법관평가 결과로 보면 우수 법관은 거의 모든 변호사가 최고점으로, 하위 법관은 거의 모든 변호사가 최하점으로 주는 등 일관성이 발견된다"며 "이는 변호사의 법관평가가 객관적이며 신뢰성이 있다는 점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다만 법관 평정 과정에 변협 평가를 활용하는 문제를 두고는 신중한 접근 필요성이 제기됐다. 박병민 부장판사는 "사법 수요자이자 전문가로서 변협의 평가 결과가 갖는 긍정적 측면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법관을 평가하는 변호사가 사건의 승패나 절차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갖게 되는 만족이나 불만에서 자유롭기는 어렵고, 대부분의 변호사가 무난한 평가를 하는 사정에 비춰 특별히 좋거나 나쁜 평가가 평가 결과 전체를 좌우할 위험이 존재한다"고 짚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은 대법원의 업무 과부하 해소와 국민의 권리구제 확대라는 목표에 공감하면서도, 대법관 수 급증이 가져올 사법부 정치화와 하급심 약화, 헌법상 권한 구조 변동에 대한 경계로 모아졌다. 정치권이 향후 법원조직법 개정안과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 개편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법조계가 제시한 코트 패킹 논란과 사법부 독립성 침해 우려를 어떻게 반영할지 주목된다. 국회는 후속 논의 과정에서 하급심 강화와 재판제도 전반 개편을 함께 검토할 계획이다.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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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대한변호사협회#대법관증원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