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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특수도 없었다"…번호이동 냉각, 알뜰폰만 소폭 수혜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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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 시장에서 번호이동 수요가 빠르게 식고 있다. 신규 단말 출시와 대학수학능력시험 특수를 노린 마케팅에도 가입자 이동이 눈에 띄게 줄었다. 소비자들이 고가 단말과 경기 둔화를 이유로 통신사를 바꾸기보다 기존 회선을 유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알뜰폰은 미세한 순증세를 이어가며 저가 요금제 중심 시장 재편 흐름만 재확인했다. 업계는 단말 보조금 경쟁보다 요금제 구조 개편과 품질 경쟁이 향후 가입자 이동을 좌우할 변수로 보는 분위기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집계에 따르면 11월 이동전화 번호이동자수는 55만1223명으로 나타났다. 한 달 전 60만66명에서 8.1퍼센트 줄며 50만명대로 내려앉은 것이다. 올해 7월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고 영향을 타고 번호이동이 약 95만6800명까지 치솟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8월부터 60만명대 수준을 유지하다가 11월부터는 감소세가 가속하는 흐름이다.

기술 관점에서 보면 번호이동은 통신망과 가입자 정보 시스템을 연동해 기존 번호를 유지한 채 사업자만 바꾸는 절차다. 우리나라는 번호이동 기준 시간이 수 분 이내로 짧고, 전산 연동 표준이 성숙해 이용자 입장에서는 기술 장벽이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이동 규모가 줄었다는 것은 통신망 품질 격차가 좁혀지고, 요금제와 단말 보조금에서 사업자 간 차별성이 약해졌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이통3사는 11월 수능을 전후해 수험생을 대상으로 각종 요금 할인과 콘텐츠 제휴 프로모션을 내놨다. 다만 LG유플러스는 대대적인 수험생 유치전에 뛰어들지 않는 등 마케팅 강도를 조절했다.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성수기에도 번호이동 시장 활력이 살아나지 못하면서, 단기 프로모션이 가입자 구조를 크게 흔들기는 어려운 환경임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사업자별로 보면 KT가 유일하게 순감했다. KT는 무단 소액결제 피해 사고 이후 전체 고객을 대상으로 유심 무상 교체를 진행하며 보안 신뢰 회복에 나선 상태다. 다만 가입자 기반에서는 11월 4355명 순감으로 전월 6523명 순감 대비 감소 폭이 줄어든 수준이다. 사고 여파가 일부 완화되고 있지만, 브랜드 신뢰 회복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SK텔레콤은 11월 번호이동 기준 220명 순증에 그쳤다. 10월 4389명 순증과 비교하면 순증 규모가 크게 줄어든 셈이다. LG유플러스 역시 11월 2579명 순증으로 전월 4453명 순증 대비 둔화됐다. 세 회사 모두 공격적인 보조금이나 파격 요금제보다는 수익성 관리와 5세대 이동통신 투자 회수에 방점을 찍는 기조가 강해, 단기간에 가입자 수를 크게 늘리는 전략에는 소극적인 양상이다.

 

알뜰폰 시장도 방향성은 비슷하다. 번호이동 기준으로 11월 1556명 순증을 기록해 10월 2333명 순증에서 성장 폭이 줄었다. 다만 순증세를 이어가며 중장기적으로는 저가 요금제 중심 수요를 꾸준히 흡수하는 모양새다. 알뜰폰은 이통3사의 망을 임대해 사용하는 구조로, 5G보다는 4G 중심 저가 요금제와 데이터 위주의 상품 구성이 강점이다. 고가 단말과 프리미엄 요금제에 부담을 느끼는 이용자들이 번호이동 대신 유심 단독 요금제, 특히 알뜰폰으로 옮기는 경향이 서서히 누적되고 있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11월 기준 사업자별 번호이동 점유율은 SK텔레콤 18.9퍼센트, KT 17.3퍼센트, LG유플러스 17.8퍼센트, 알뜰폰 45.9퍼센트로 집계됐다. 번호이동 흐름만 놓고 보면 알뜰폰 비중이 절반에 근접해 있지만, 연합회는 사업자 간 점유율이 비교적 균일하다고 설명한다. 전체 회선 기준 가입자 수와 번호이동 흐름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만 신규·중저가 수요에서 알뜰폰 비중이 커지면서, 장기적으로는 이통3사와 알뜰폰 간 수익 구조와 투자 여력 격차가 정책 변수로 부상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신산업 구조 측면에서 번호이동 축소는 마케팅 비용 절감이라는 긍정적 효과와, 경쟁 완화에 따른 혁신 둔화 우려를 동시에 낳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단말 가격 상승과 경기 부담으로 인해 번호이동에 따른 혜택이 예전만큼 크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다. 실제로 단말 출고가와 지원금 수준, 약정 조건 등이 복잡해지면서 통신사 변경을 통한 실질 이득을 계산하기가 어려워졌고, 결과적으로 이동을 미루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 시장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이미 5G 보급률이 높은 편이고, 주요 이통사 간 커버리지와 속도 격차도 좁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5G 초기 상용화 시기에 보였던 대규모 번호이동 러시는 한 차례 지나간 상황이라는 의미다. 이제는 통신 품질보다 콘텐츠 번들, 구독 서비스, 금융·콘텐츠·클라우드와 연계된 융합 상품 경쟁이 가입자 이동의 핵심 변수가 되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번호이동이 신규 단말 출시와 경기, 보조금 정책, 마케팅 강도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고 짚으면서 최근에는 고가 단말과 부담스러운 경제 상황 탓에 이용자들이 통신사 변경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통신업계는 중장기적으로 요금제 단순화, 알뜰폰과의 역할 분담, 5G와 향후 6G 투자를 뒷받침할 새로운 수익 모델 발굴이 맞물려야만 시장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산업계는 번호이동 경쟁 약화 속에서도 이용자 편익과 혁신을 유지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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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이동#이통3사#알뜰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