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두 명의 케빈을 두고 고민 중”…트럼프, 차기 연준 의장 해싯·워시 경합에 시장 촉각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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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12일, 미국(USA) 워싱턴DC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차기 의장 인선을 둘러싼 중대한 발언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를 동시에 거론하며 “두 명의 케빈”을 유력 후보로 지목한 것이다. 이번 인선 과정은 내년 5월 임기 만료를 앞둔 제롬 파월 현 의장 이후 글로벌 통화정책의 향배를 가를 변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지시각 기준 1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케빈과 케빈이 있다. 나는 두 명의 케빈 모두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해싯 위원장과 워시 전 이사를 연이어 언급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 최측근으로 분류돼 온 해싯 위원장이 선두주자로 관측되던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워시 전 이사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두 사람 간 2파전 구도가 굳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기 연준 의장 후보 ‘두 명의 케빈’ 부상…해싯·워시 2파전 구도
차기 연준 의장 후보 ‘두 명의 케빈’ 부상…해싯·워시 2파전 구도

트럼프 대통령은 10일에는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워시 전 이사를 직접 면접했다. 그는 첫 집권기였던 2017년에도 연준 의장 인선 과정에서 워시 전 이사를 면담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제롬 파월 현 의장을 임명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차기 연준 의장 지명과 관련해 “몇 주 안에 결과를 발표할 수 있다”고 언급해, 공식 발표 시점과 인선 방향에 금융시장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연준 의장은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글로벌 통화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파월 의장의 임기는 내년 5월 종료 예정으로, 연준 수장 교체 여부에 따라 향후 기준금리 경로와 자산매입, 대차대조표 축소와 같은 주요 정책 기조가 재조정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 같은 조치는 주변국 통화정책과 자본 흐름에도 연쇄적인 파장을 미치고 있다.

 

월가의 반응도 인선 구도에 미묘한 온도차를 더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3일 소식통을 인용해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가 뉴욕(New York)에서 열린 자산운용사 CEO 대상 비공개 콘퍼런스에서 워시 전 이사가 작성한 연준 관련 글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인으로 꼽히는 다이먼 CEO가 사실상 워시 전 이사에게 보다 우호적 신호를 보냈다는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같은 자리에서 다이먼 CEO는 해싯 위원장이 연준 의장에 지명될 경우 단기적으로 금리 인하 가능성이 지금보다 높아질 수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 7월에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미국 언론을 통해 연준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다이먼의 최근 발언을 두고, 연준의 정치적 중립성을 중시하면서도 통화정책에 대한 일정 수준의 매파적 견해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해싯 위원장은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규제완화 등 경제 정책 구상을 일관되게 지지해 온 인물로 평가돼 왔다. FT는 최근 보도에서 해싯 위원장이 차기 연준 의장 유력 후보로 급부상하면서, 채권 투자자를 포함한 월가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정치적 독립성 약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긴밀한 친분이 연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정치적 압력을 강화하는 통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이후 공개 석상에서 연준에 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고, 파월 의장을 노골적으로 비판해 왔다. 그는 12일에도 자신을 “똑똑한 목소리”라고 표현하며 시장과 정책 당국이 자신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태도는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재점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해싯 위원장은 연준 통화정책에 대한 대통령 발언의 위상과 관련해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14일 미국 방송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목소리는 단지 그의 의견일 뿐”이라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의 표결 구조와 대통령 발언은 분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발언이 통화정책 결정권을 가진 FOMC 위원들의 표와 동등한 비중을 갖느냐’는 질문에도 같은 취지로 답하며, 연준의 공식 의사결정 체계와 백악관의 정치적 요구 사이에 선을 긋는 설명을 내놨다.

 

다만 해싯 위원장은 대통령의 견해가 “데이터에 근거한 좋은 의견이라면 그것은 중요하다”고 전제하면서, 그런 경우 “위원회에 가서 ‘대통령이 이런 주장을 했고, 나는 그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FOMC 동료들이 이러한 의견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각자의 경제 분석과 판단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표를 던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준 내부 토론 과정에서 대통령의 시각이 하나의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FT는 해싯 위원장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밀접한 관계를 부담스러워하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반면 워시 전 이사에 대해서는 연준을 떠난 이후 연준의 저금리 정책과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반복적으로 비판해 온 탓에, 연준 내부에서 인기가 높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월가 일각에서는 워시 전 이사가 통화정책에서 비교적 매파적 색채를 보여 온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해 온 강한 완화 기조와 거리감이 있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은 차기 연준 의장 인선이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유동성, 달러 강세 약세 흐름, 신흥국 자본 유출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 변수로 보고 있다. 유럽(EU)과 일본(Japan)의 중앙은행이 완화적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미국 연준의 수장 교체가 긴축 또는 재완화 전환의 신호로 받아들여질 경우 각국 통화정책의 조정 폭과 시점도 다시 조율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뉴욕타임스(NYT), CNN, BBC 등 주요 매체들은 파월 의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과 통화정책 일관성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평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두 명의 케빈이 경쟁하는 현 상황을 “연준의 향후 4년을 좌우할 선택”이라고 진단했고, FT는 “월가의 신뢰를 누가 더 확보하느냐가 사실상 시장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에 따라 연준이 한층 정치화됐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동시에 해싯 위원장이든 워시 전 이사든, 새 의장이 취임할 경우 인플레이션 통제와 성장 둔화, 금융안정 과제를 동시에 떠안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차기 연준 의장이 누구로 낙점될지, 그리고 그 인선이 미국과 세계 경제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 국제사회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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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케빈해싯#케빈워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