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디지털 바이오뱅킹 구축…중앙대병원 온코크로스와 속도전
인공지능 기반 디지털 바이오뱅킹이 병원 현장의 데이터 활용 방식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가속되고 있다. 중앙대학교병원이 AI 신약개발 기업 온코크로스와 손잡고 암 환자 조직과 병리 이미지, 다중오믹스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디지털 바이오뱅킹 체계를 구축하기로 하면서다. 양측은 이 플랫폼을 통해 정밀의료와 신약개발을 동시에 겨냥한 데이터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병원 중심 디지털 바이오뱅킹이 AI 제약·바이오 융합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앙대병원과 온코크로스는 12월 1일 중앙대병원에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AI 디지털 바이오뱅킹 구축과 오믹스 기반 정밀의료 기술 개발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협약의 골자는 암 환자의 조직 샘플, 병리 전장슬라이드이미지와 임상 데이터를 연계해 연구용과 산업용으로 활용 가능한 고품질 DB를 만들고, 여기에 다중오믹스와 AI 분석 기술을 접목해 신약 후보 발굴과 예후 예측 모델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디지털 바이오뱅킹은 기존 냉동 보관 중심 바이오뱅크에 데이터 표준화와 AI 분석 기능을 더한 개념으로, 향후 임상시험 설계와 약물 반응 예측에도 연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온코크로스가 보유한 핵심 기술은 전사체라 불리는 유전자 발현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특정 질환과 약물을 정량적으로 연결하는 알고리즘이다. 수천에서 수만 개 유전자의 발현 패턴을 행렬 형태로 받아들인 딥러닝 모델이 질병 특이적 신호를 추출하고, 동일한 패턴을 역전시키거나 보정할 수 있는 약물 후보를 찾는 구조다. 기존 통계 기반 분석 대비 후보 물질 매칭 정확도를 높이고, 적응증 확장 가능성이 큰 약물을 빠르게 필터링할 수 있다는 점이 차별점으로 꼽힌다. 회사는 이 플랫폼을 활용해 난치성 암과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기허가 약물의 새로운 적응증 탐색 등 약물평가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이번 협력에서 중요한 지점은 병원 측이 가진 실세계임상데이터와 암 조직·병리 이미지가 온코크로스의 AI 플랫폼과 직접 연결된다는 점이다. 실제 환자 진료 과정에서 축적된 종양의 조직학적 특성, 영상·병리 소견, 치료 반응 정보가 유전자 발현 데이터와 동시에 분석되면, 단순한 분자 데이터 기반 예측을 넘어 환자군 세분화와 반응 예측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WSI로 불리는 전장슬라이드이미지는 병리 슬라이드를 고해상도 디지털 이미지로 전환한 데이터로, 병리과 전문의의 판독 패턴을 모사하는 딥러닝 모델과 결합할 경우 조직 형태학과 분자 정보가 결합된 복합 바이오마커 발굴 가능성을 넓힌다.
시장 측면에서 디지털 바이오뱅킹은 제약사, AI 기업, 병원이 동시에 필요로 하는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다. 제약사는 후보물질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실제 임상 현장 데이터를 요구하고, 병원은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 성과와 기술이전을 통해 추가 수익과 연구 역량 강화를 노린다. 여기에 AI 기업은 다양한 질환과 약물 데이터를 확보해 플랫폼의 예측력을 검증하고, 서비스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중앙대병원은 이번 협약을 통해 임상 데이터 관리와 활용 체계를 고도화하고, 병원 디지털 전환을 실질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구글 딥마인드, 미국 스타트업 리커전과 인실리코 메디슨 등 AI 제약 기업들이 대형 병원·제약사와의 데이터 제휴를 통해 비슷한 모델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유전체·전사체뿐 아니라 약물 스크리닝 데이터, 조직 이미지, 전자의무기록까지 통합한 대규모 멀티모달 AI를 구축하며 신약개발 기간을 줄이겠다고 공언해 왔다. 국내에서도 대형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AI 병리, 유전체 해석, 디지털 바이오뱅킹 프로젝트가 잇따르고 있어, 중앙대병원과 온코크로스의 협력이 국내 AI 제약·정밀의료 경쟁 구도에서 어떤 차별화를 만들지 주목된다.
규제와 제도 측면에서는 환자 개인정보와 의료정보의 2차 활용 문제가 핵심 변수로 남아 있다. 디지털 바이오뱅킹이 본격 작동하려면 데이터 비식별화, 가명처리, 연구윤리 심의 절차를 체계화하고, 향후 제약사와의 공동연구·기술이전 과정에서 데이터의 소유와 이익 공유 구조를 명확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당국이 추진 중인 인공지능 의료기기 인허가 가이드라인, 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도 디지털 바이오뱅킹에서 파생되는 진단·예후 알고리즘의 상용화 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권정택 중앙대병원장은 연구중심병원 도약 과정에서 AI 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인 교차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바이오뱅킹과 정밀의료 기술이 결합해 병원 연구 역량과 산업적 파급력이 동시에 확대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이랑 온코크로스 대표이사는 중앙대병원의 임상 데이터를 더 높은 부가가치를 지닌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이 회사의 중요한 목표라며, 양측이 디지털 헬스 역량을 확장해 상호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산업계는 이번 협력이 실제로 규제 장벽과 데이터 품질 이슈를 넘어 상용 플랫폼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