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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에 AI 팩토리 500개”…산업부, 60조 성장펀드로 대전환 예고

권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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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현장에 인공지능을 심는 국가 전략이 속도를 높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5극 3특 권역별 성장엔진 산업을 지정하고 국민성장펀드 60조원 이상을 집중 투입해 지역을 첨단 제조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제조와 인공지능을 융합하는 M.AX 얼라이언스를 전면에 내세워 2030년까지 AI 팩토리 500개를 보급하고, 반도체와 배터리, 미래차 등 핵심 산업의 생산구조를 AI 기반으로 재편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획이 향후 10년 한국형 제조 AI 경쟁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부는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부처 합동 업무보고에서 지역 성장, 첨단제조 인공지능 대전환, 신통상전략을 3대 정책 방향으로 제시했다. 내년 2월까지 5극 3특 체계에 맞춰 권역별 성장엔진 산업을 확정하고, 규제와 인재, 재정, 금융, 혁신을 포괄하는 성장 5종 세트 지원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성장엔진 산업에는 국민성장펀드 150조원 중 40% 이상을 투입하고, 2조원 규모 전용 연구개발 프로그램도 신설 검토 중이다.

기술 구현 측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제조와 AI를 결합한 M.AX 전략이다. AI 팩토리는 공장 내 설비와 생산 라인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분석해 공정 최적화, 설비 고장 예측, 품질 이상 탐지 등을 수행하는 스마트 팩토리를 한 단계 고도화한 개념이다. 기존 자동화 시스템이 사전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설비를 제어했다면, AI 팩토리는 딥러닝과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해 공정 조건과 수율 데이터를 학습하고, 스스로 최적의 운전 조건을 찾아가는 것이 특징이다. 산업부는 올해까지 102개가 보급된 AI 팩토리를 내년에 100개 추가하고, 2030년까지 총 500개로 늘려 한국 제조업 전반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역량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M.AX 얼라이언스는 대기업, 중견·중소기업, 소프트웨어 기업, AI 솔루션 기업, 연구기관 등이 참여하는 개방형 협력 플랫폼이다. 대기업이 축적한 제조 데이터와 공정 노하우를 중소 협력사와 공유하고, 이를 학습한 AI 모델을 함께 활용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산업부는 대기업과 협력사가 공동 활용할 수 있는 AI 기술을 개발해 현장에 적용하는 대중소 협력 AI 선도모델 15개를 구축하고, 실제 산업단지를 시험 무대로 삼는 AX 실증 산업단지 13개를 조성해 기술 검증과 확산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기존 스마트공장이 단일 공장 단위 자동화에 머물렀다면, M.AX는 공급망 수준의 AI 최적화를 지향해 생산, 물류, 품질, 에너지 소비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지역별로는 반도체, 배터리, 미래차 등 AI 적용 파급력이 큰 분야를 중심으로 메가 권역 첨단산업 벨트를 짠다. 수도권 중심 반도체 공급망을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로 확장해 첨단 패키징을 광주, 전력반도체를 부산, 소재·부품을 구미에 특화시키는 방식이다. 첨단 패키징은 고성능 칩을 다층 구조로 적층·연결하는 기술로, 인공지능 반도체와 고대역폭 메모리 수요 확대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전력반도체는 전기차, 데이터센터, 재생에너지 인버터 등에 필수인 고효율 전력 제어 소자로, 실리콘카바이드와 갈륨나이트라이드 기반 소자 개발이 글로벌 경쟁 초점이다. 배터리 분야에서는 충청·호남·영남을 잇는 배터리 트라이앵글을 구상하고, 내년 하반기까지 배터리 기초원료 생산 전문 특화단지를 추가 지정해 양극재·음극재·전해질 등 핵심 소재의 공급망 안정과 국산화를 가속하겠다는 복안이다.

 

미래차와 로봇, 디스플레이 등 타 제조 분야에서도 AI 융합 기반을 넓힌다. 광주에는 AI 자율주행 실증도시를 조성해 차량 센서 데이터와 도로 인프라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고, 충남에는 디스플레이 첨단연구원을 통해 패널 공정 최적화와 결함 검출 AI를 고도화한다. 대구에서는 AI 기반 로봇 개발 거점을 키워 제조용·서비스용 로봇의 알고리즘과 제어 소프트웨어 사용화를 지원한다. 산업부는 9개 지역 거점 국립대를 통해 AI 엔지니어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공정·설계 전문가를 지역에 공급해 인력병목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에너지 측면에서는 RE100 산업단지 조성이 제조 AI 전략과 연계된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글로벌 이니셔티브로, 글로벌 ICT와 반도체, 배터리 기업의 참여가 확대되면서 공급망 전반의 요구사항이 되고 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자립도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해 재생에너지 발전과 전력 인프라, 전력거래 제도를 묶은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내년 중 RE100 시범단지 선정을 거쳐 착공에 들어간다. AI 팩토리가 공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에너지 사용량을 정밀 제어하면, 재생에너지 변동성에 대응하는 수요관리와 탄소배출 감축 효과도 동시에 노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전략에서도 제조와 AI의 결합이 핵심 축으로 등장했다. 산업부는 국내 첨단공장과 해외 양산기지를 병행하는 이른바 마더팩토리 전략을 제시했다. 한국에는 설계와 공정개발, 초기 양산을 담당할 고도화된 공장을 두고, 검증된 공정을 해외 생산거점으로 이전해 대량 생산을 수행하는 구조다. 이를 기반으로 자동차, 가전, 로봇 등 수요산업과 연계한 AI 반도체, 특히 신경망 연산에 특화된 NPU 개발을 추진한다. 국가 1호 상생파운드리를 구축해 중소 팹리스의 시제품 생산과 양산을 지원하고, 국내 팹리스 기업 수와 규모를 10배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파운드리와 팹리스 생태계를 동시에 키워야 AI 칩 설계·제조 전 주기에 걸친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연간 400만대 이상 첨단 생산능력을 유지하면서도 해외 생산거점을 확대하는 투트랙 전략을 택했다. 내년에는 AI 자율주행 알고리즘, 차량용 반도체,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기술을 미래차 3대 핵심축으로 설정하고 743억원을 투자한다. 자율주행 알고리즘은 센서와 지도 데이터를 융합해 주행 상황을 인지·판단하는 핵심 소프트웨어로, 도시복잡 환경에서의 인지 정확도와 안전성이 관건이다. 차량용 반도체는 전력제어와 인포테인먼트, 자율주행 제어에 필수이며, 최근 글로벌 수급난으로 공급망 리스크가 부각된 분야다.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은 차량을 하드웨어 제품이 아닌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서비스로 수익을 내는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개념으로, OTA 업데이트와 통합 제어 아키텍처가 핵심 기술로 꼽힌다.

 

이 같은 첨단 제조·AI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도와 규제 개편도 병행된다.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을 개정해 지방투자 인센티브를 넓히고, 공정거래위원회 사전심사와 승인을 조건으로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일반 지주회사 규제 특례를 적용한다. 구체적으로는 반도체 관련 증손회사 지분율 요건을 완화하고, 증손회사의 금융리스업 영위를 허용해 장비·인프라 투자 여력을 키우는 방향이다. 또한 권역별 규제 프리존을 확산해 미래차 도심주행 실증 등 규제특례를 제공하고, AI 제조혁신 기술이 실제 도로와 공장 환경에서 빠르게 검증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통상 전략에서도 첨단산업 중심 재편이 진행된다. 정부는 한미 관세협상 결과로 조성되는 대미 2000억 달러 투자펀드와 연계해 상업적 타당성이 확보되고 국내로 수익과 기술이 환류될 프로젝트를 발굴한다는 방침이다. 산업생태계 공백을 면밀히 분석해 핵심 유치 품목을 선정하고, 이를 생산할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맞춤형 외국인직접투자를 추진한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수출 700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미국과의 통상현안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대미 투자 기업의 애로 해소와 서비스 무역 신시장 개척을 위해 한중 서비스·투자 자유무역협정 타결도 추진한다.

 

유럽연합과 일본, 아세안 국가들과는 공급망, 디지털, 기후,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한다. 미국과 중국 간 기술·무역 갈등에 대응하기 위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도 검토하며, 경제안보 품목 국내 생산기반 유지를 위한 생산차액 보조금 예산은 올해 146억원에서 내년 291억원으로 늘린다. 미국의 AI 칩, 중국의 희토류 등 전략 품목에 대한 수출 통제 협력도 강화하고, 덤핑 피해에 대한 신속한 구제 절차를 통해 불공정 무역에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조직 개편도 예고됐다. 산업부는 산업자원안보실과 산업AI전담국, 한미통상협력과 신설을 통해 공급망과 AI, 통상 이슈를 전담하는 조직을 만든다. 또한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으로 양분된 원전 수출 체계를 재편해 해외 원전 프로젝트 수주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정부지원 방식에서도 제조·AI 융합 전략에 맞춘 대전환을 예고했다. 개별 기업에 분산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생태계를 주도할 수요 앵커기업이 프로젝트를 직접 설계하고, 이에 참여하는 협력기업들의 연구개발을 묶음 지원하는 구조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앵커기업이 제품 수요를 보장하고, 생태계 참여자들이 성과를 공유하는 이익 공유 메커니즘을 설계해 공급망 전체의 혁신 유인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정부지원체계 대전환을 시도해보지 않은 파격적인 일로 규정하면서도 변화된 글로벌 환경을 고려할 때 검토가 필요하다며, 관계 부처와 협력해 기업 성장과 해외투자 성과 창출을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AI 팩토리와 M.AX 얼라이언스를 축으로 한 이번 전략이 실제 현장에 얼마나 빠르게 녹아들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제조 데이터 표준화, 중소기업의 디지털 역량 격차, AI 인력 부족과 같은 구조적 과제가 남아 있어 제도와 인력, 교육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계는 새로 제시된 지원 체계와 규제 특례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한국 제조업이 새로운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권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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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m.ax얼라이언스#ai팩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