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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고래 수익성 검토도 안 했다냐"…이재명, 석유공사 업무보고서 대규모 투자 질타

문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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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결정의 책임을 둘러싸고 대통령과 공기업이 정면으로 마주섰다. 이재명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 당시 추진됐던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 이른바 대왕고래 사업을 겨냥해 한국석유공사의 수익성 검토 부실을 강하게 지적했다.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공기업이 생산 원가조차 명확히 산정하지 않은 채 수천억 원 투입을 추진한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다.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한국석유공사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동해 유전개발 사업의 수익성 검토 과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최문규 한국석유공사 사장 직무대행을 향해 대왕고래 사업과 관련해 "얘기하기 불편한 주제일 수 있지만, 동해 유전개발 사업의 경우 생산 원가가 높다면 채산성이 별로 없을 것"이라며 "석유공사에서 생산 원가를 계산 해봤느냐"고 따져 물었다.

최문규 직무대행이 별도의 생산 원가 계산을 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답하자 이 대통령의 질문은 한층 더 구체적으로 이어졌다. 그는 "당연히 사업성을 따져봤을 것 같은데 계산을 안 해봤다는 것이냐"고 재차 추궁했다. 투자 타당성 검토의 기초인 생산 원가 산정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답변을 그대로 넘기지 않은 셈이다.

 

최 직무대행이 "변수가 많기 때문에 계산해 보지 않았다"고 설명하자 이 대통령은 사업 추진 논리 자체를 겨냥했다. 그는 "그러면 사업 자체를 안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변수가 많아 개발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사업에 수천억 원을 투입할 생각이었느냐"고 반문했다.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유로 수익성 분석을 피할 수는 없고,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정교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질타로 해석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석유공사의 재무 구조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그는 석유공사가 자산 20조 원, 부채 21조 원 규모로 자본잠식 상태에 놓여 있다는 보고를 들은 뒤 "이를 벗어나기 위한 실현 가능한 방안이 뭐가 있느냐"고 물었다. 공사의 현 재무 상태에서 신규 대규모 사업 추진이 타당한지부터 짚어본 셈이다.

 

이에 대해 석유공사 측이 "부실자산을 매각하는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자산 매각 중심 대책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불량자산을 판다고 자산 상태가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어차피 현재 자산 평가에도 불량자산이라는 점이 반영돼 있지 않겠나"라고 꼬집었다. 이미 손실이 반영된 자산을 처분하는 것만으로 자본잠식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긴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날 질의응답은 윤석열 정부 시기 추진된 에너지·자원개발 사업 전반에 대한 재점검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특히 대왕고래로 불린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은 막대한 개발비와 기술적 난이도가 지적돼 온 만큼, 이재명 정부가 사업성 재평가 과정에서 책임 소재와 정책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지가 향후 논란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정치권에선 공기업의 방만한 해외자원개발 논란이 반복돼 온 만큼, 석유공사를 대상으로 한 대통령의 질타가 에너지 공기업 전반의 구조조정과 투자 기준 재정립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뒤따른다. 반면 야권 일각에서는 전 정부 사업을 겨냥한 과도한 책임 추궁으로 비화할 경우 정치 공방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한국석유공사를 포함한 주요 에너지 공기업의 재무 구조와 투자 계획을 점검해 중장기 재편 방안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국회도 관련 상임위를 중심으로 대왕고래 사업 추진 경위와 경제성 검토 과정에 대한 자료 요구와 질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여, 에너지 정책과 공기업 거버넌스를 둘러싼 논의가 다음 정기국회에서 본격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문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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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대통령#한국석유공사#대왕고래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