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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에서 포토샵 쓴다"…어도비, 무료 개방으로 SW 판도 노린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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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가 전문 그래픽 소프트웨어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는 가운데 어도비가 오픈AI와 손을 잡고 핵심 프로그램들을 챗GPT에서 무료로 쓸 수 있게 열었다. 이용자는 포토샵과 익스프레스, 애크로뱃을 별도 설치 없이 음성이나 텍스트 지시로 호출해 사진 편집과 디자인, PDF 편집을 수행한다. 유료 구독 기반의 간판 소프트웨어를 부분 무료 개방한 조치는 AI 기반 이미지 편집 서비스와의 경쟁 국면에서 플랫폼 동맹을 통해 잠재 고객을 대량 흡수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생성형 AI와 전문 툴의 결합이 디자인·콘텐츠 제작 워크플로 자체를 재편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어도비는 11일 오픈AI와의 제휴를 통해 챗GPT 환경에서 포토샵과 어도비 익스프레스, 애크로뱃을 구동하는 기능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데스크톱과 웹, iOS에서 챗GPT를 사용하는 이용자는 별도 라이선스 없이 세 프로그램의 주요 기능을 자연어 명령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사용자는 PDF 파일을 업로드한 뒤 챗GPT 대화창에서 수정 지시나 주석 요청만 하면 애크로뱃이 뒷단에서 동작하며 편집을 수행한다. 템플릿 기반 디자인 제작, 애니메이션 적용, 텍스트·표 추출, PDF 변환·압축 등도 채팅 인터페이스 안에서 처리된다. 포토샵 역시 사진 편집을 중심으로 한 일부 기능이 개방돼 세밀한 노출·대비 조정부터 각종 필터 효과까지 요청할 수 있다.

기술 구현 방식은 AI 에이전트 구조에 가깝다. 이용자가 챗GPT에 작업 의도를 입력하면 언어 모델이 요청을 해석해 어떤 어도비 앱을 호출해야 할지 판단하고, 해당 앱의 기능 모듈을 API 형태로 연결해 결과물을 생성한다. 사용자는 복잡한 메뉴 구조나 레이어, 마스크 같은 전문 편집 개념을 알지 못해도 자연어로 “배경을 흐리게 해 달라” “이 초대장에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어 달라”고 말하면 된다. 특히 이번 통합은 LLM이 인터페이스 역할을 맡고, 실제 편집·렌더링은 상용 소프트웨어 엔진이 처리하는 형태라 기존 웹 기반 AI 편집 서비스보다 세밀한 품질 제어와 포맷 호환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예를 들어 “어도비 포토샵, 사진 배경을 흐리게 해 줘”라고 입력하면 챗GPT가 이미지에서 피사체와 배경을 분리하고, 피사체는 유지한 채 배경에 블러 효과를 적용하는 워크플로를 자동 실행한다. 촬영 환경이 제각각인 이미지 묶음의 밝기와 색감을 일괄 보정하거나, 소셜 미디어용 썸네일에 글리치·글로우 같은 시각 효과를 입히는 작업도 일일이 슬라이더를 조정할 필요 없이 지시만으로 가능해진다. 익스프레스의 템플릿과 애니메이션 기능은 “생일 초대장 만들어 줘” 수준의 요구에도 어울리는 색상 팔레트와 레이아웃을 자동 추천해 비전문가의 디자인 진입 장벽을 낮춘다. 애크로뱃과의 연동에서는 PDF 내 테이블을 추출해 재편집 가능한 형식으로 내보내거나, 원본 서식을 유지한 채 파일을 최적화해 공유용으로 압축하는 시나리오가 대표적이다.

 

특히 이번 통합은 기존 어도비 방식의 한계를 보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포토샵과 애크로뱃은 기능 스펙은 강력했지만 초심자에게는 인터페이스와 용어 체계가 난해해 학습 비용이 컸다. 챗GPT를 프론트엔드로 삼으면 이용자는 복잡한 패널과 메뉴를 직접 다루지 않고도 전문가에 가까운 결과물에 접근할 수 있고, 고급 기능이 필요할 때는 원본 어도비 앱으로 이동해 세밀하게 후속 편집을 이어갈 수 있다. 어도비도 “챗GPT에서의 직관적 작업으로 접근성을 넓히면서, 고급 사용자는 기존 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다”며 이중 경로 전략을 강조했다.

 

시장 측면에서 보면 어도비의 선택은 공격적인 ‘프리미엄’ 전략에 가깝다. 핵심 소프트웨어의 일부 기능을 무료로 노출해 챗GPT의 거대 이용자 기반을 체험 채널로 쓰고, 고급 기능과 워크플로 통합을 유료 구독 모델로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다. 현재 챗GPT의 주간 활성이용자는 약 8억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에게 어도비의 편집 엔진을 일상 대화 인터페이스 안에서 체험시키면 장기적으로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 가입과 기업용 라이선스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AI가 디자인과 문서작업의 초안을 빠르게 만드는 시대에, 후반 작업과 협업 관리 영역에서 어도비의 유료 가치가 부각될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번 제휴는 동시에 치열해진 AI 이미지·영상 편집 경쟁 구도 속 방어와 공세의 성격을 모두 지닌다. 구글은 제미나이 3.0 기반의 나노바나나를 앞세워 이미지 생성과 편집 기능을 강화하고 있으며, 업계 일각에서는 “포토샵을 능가한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별도 학습 없이 브라우저나 모바일에서 자연어 지시로 고급 편집이 가능한 서비스들이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데스크톱 기반 유료 소프트웨어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도비로서는 강점인 품질·정밀도는 유지하되 LLM 인터페이스를 전면에 내세워 사용성에서의 열세를 줄이고, 경쟁사가 구축 중인 AI 편집 생태계에 맞불을 놓는 형국이다.

 

오픈AI의 이해관계도 분명하다. 구글과 메타 등 빅테크가 이미지·영상·3D를 아우르는 멀티모달 AI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상용 콘텐츠 툴과의 통합은 챗GPT의 생산성 플랫폼 위상을 강화하는 수단이 된다. 나노바나나와 같은 구글의 AI 편집 도구가 자사 서비스 안에서 자연스럽게 흐름을 만드는 동안, 오픈AI는 어도비라는 산업 표준급 파트너를 품어 이미지·문서 영역의 빈틈을 메운 셈이다. 동시에 다양한 서드파티 앱을 호출해 사용자의 일을 대신 처리하는 AI 에이전트 전략의 신뢰도를 높이는 사례로도 활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휴를 계기로 챗GPT를 중심으로 한 ‘AI 에이전트 허브’ 경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본다. 최재식 카이스트 AI대학원 교수는 “이번 협업을 계기로 어도비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기업의 앱을 챗GPT를 통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픈AI는 거대언어모델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AI 에이전트를 플랫폼화된 챗GPT로 통합·구현하는 셈”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오픈AI가 어도비와 독점 계약을 맺지 않는 이상 구글과 앤트로픽도 다양한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제미나이와 클로드를 통해 제공하려고 시도할 것”이라며, 향후 주요 LLM 서비스가 생산성 툴과의 연동 폭과 깊이로 차별화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편 플랫폼 주도권을 둘러싼 규제와 거버넌스 변수도 남아 있다. 특정 대화형 AI를 거점으로 다양한 상용 소프트웨어가 묶이는 구조가 고착되면, 향후 수수료 체계나 트래픽 배분, 데이터 접근권을 둘러싸고 앱 마켓과 유사한 독점 논란이 재연될 수 있어서다. AI가 편집·디자인 작업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하는 과정에서 크리에이터의 저작권과 수익 배분 구조도 다시 설계해야 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계는 어도비와 오픈AI의 이번 전략적 제휴가 실제 유료 구독 전환과 생태계 확장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AI 에이전트 중심의 생산성 플랫폼 경쟁 구도를 어디까지 재편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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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도비#챗gpt#나노바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