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 개인 AI 비서 키라”…크래프톤, 업무 혁신 겨냥
개인용 인공지능 비서 기술이 게임사를 넘어 전 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크래프톤이 사내에서 운용해 온 AI 업무 지원 시스템을 일반 사용자에게 오픈소스로 개방하면서, 개발자와 지식노동자를 겨냥한 로컬 중심 AI 비서 경쟁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공개를 국내 기업이 축적한 엔터프라이즈급 AI 에이전트 기술을 생태계 전반에 확산시키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게임 개발 과정에서 다져진 협업 워크플로우와 초거대 언어모델이 결합된 형태여서, AI 기반 디지털 비서 시장의 경쟁 구도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크래프톤은 15일 개인용 AI 비서 키라를 오픈소스 플랫폼 깃허브를 통해 공개했다. 그동안 사내에서 축적해 온 AI 에이전트 기술을 외부에 전면 개방한 첫 사례다. 사용자는 깃허브에서 키라를 내려받아 데스크톱 앱을 설치한 뒤, 앤트로픽의 클로드와 슬랙, 아웃룩 등 주요 업무 도구의 API 키를 연동해 활용할 수 있다. 비용 구조는 별도 사용료가 아닌 각 서비스 API 사용량에 따라 결정되는 형태다.

키라는 자연어 명령만으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AI 도구를 호출해 문서 작성, 일정 관리, 정보 탐색, 메일 처리 등 일상적인 지식 노동을 돕는 AI 비서로 설계됐다. 특히 업무용 메신저 슬랙을 기반으로 작동해 기존 기업 협업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구성됐다. 사용자는 슬랙 대화창에서 사람과 대화하듯 업무를 지시하면, 키라가 연동된 도구를 호출해 결과를 반환하는 구조다.
핵심 기능은 사용자의 맥락을 장기적으로 축적하는 스마트 메모리다. 키라는 대화 내용, 진행 중인 프로젝트 정보, 주요 의사결정 사항 등을 지속적으로 저장해 사용자가 같은 배경 설명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도록 설계됐다. 예를 들어 특정 프로젝트의 기획 방향을 한 번 공유하면, 이후에는 간단한 지시만으로 관련 문서 개정, 회의 안건 정리, 연관 업무 목록 작성까지 연속적으로 처리하는 식이다.
능동적 업무 보조도 차별점이다. 키라는 아웃룩 이메일을 분석해 사용자에게 할당된 업무를 자동으로 추출하고, 마감 기한이나 우선순위에 맞춰 정리해준다. 문서 업데이트나 업무 프로세스 변화가 발생하면 이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후속 작업을 제안하는 기능도 지원한다.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사용자가 요청하기 전에 필요한 작업을 먼저 제안하는 선제적 제안 기능이 대표적이다. 단순한 챗봇이 아니라, 사용자의 업무 패턴을 파악해 선행적으로 행동하는 에이전트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보안과 데이터 주권 측면도 강조됐다. 키라는 웹 기반 음성 입력 인터페이스를 제공해 음성만으로도 지시를 내릴 수 있지만, 대화 내용과 메모리는 외부 서버가 아닌 사용자의 로컬 컴퓨터에 저장된다. 기업 내부 문서나 민감한 프로젝트 정보가 외부 클라우드에 상시 축적되는 구조를 부담스러워하던 조직에게는 실사용 장벽을 낮추는 설계로 평가된다. 기본 모델로 앤트로픽의 클로드를 사용하지만, 크래프톤은 향후 다른 AI 모델 지원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개는 크래프톤이 사내에서 운영해 온 AI 에이전트 크리스를 개인용으로 확장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크다. 크리스는 슬랙, 메일, 문서 관리 시스템 등 주요 협업 도구와 연동돼 회의록 작성 시간을 1시간에서 3분 수준으로 줄이고, 반복적인 정보 검색과 정리 업무를 크게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래프톤은 이 내부 시스템을 토대로 환경 설정과 설치 과정을 단순화해 일반 개발자와 지식노동자도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재구성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오픈소스 AI 에이전트와 개인 비서형 도구 경쟁이 가속하는 상황이다. 일부 빅테크 기업이 자사 플랫폼에 종속된 비서를 제공하는 반면,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특정 서비스에 묶이지 않는 오픈형 에이전트 프레임워크를 선호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크래프톤의 키라 공개는 국내 기업도 이 오픈 에이전트 생태계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특히 게임 개발사 특유의 복잡한 제작 파이프라인과 운영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계된 워크플로우 자동화 경험이 다른 산업에도 전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린다.
크래프톤의 초거대 모델 전략과의 연계도 주목되는 지점이다. 크래프톤은 SK텔레콤 정예팀과 함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 참여해 5000억개 파라미터 규모의 초거대 모델 개발을 추진 중이다. 멀티모달 모델 아키텍처와 학습 알고리즘 연구를 주도하며 풀스택 AI 기술 내재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향후 이 모델이 오픈소스로 공개될 경우, 키라와 같은 에이전트 레이어에 결합돼 국산 모델 기반의 개인 AI 비서 생태계를 형성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규제 측면에서 보면, 현재 국내에는 개인용 AI 비서에 대한 별도의 인허가 절차는 없지만, 기업 환경에서 활용할 경우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등이 직접 적용된다. 키라가 데이터를 로컬에 저장하는 구조를 택한 것은 이러한 규제 환경을 고려한 설계로 볼 수 있다. 민감한 고객 정보나 내부 기밀을 다루는 금융, 의료, 공공 분야에서도 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실제 도입 과정에서는 각 기업의 보안 정책에 맞춘 추가 검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키라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AI 에이전트의 실사용 사례가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개발자는 오픈소스 코드에 각자의 업무 도구와 사내 시스템을 연결해 맞춤형 비서를 구축할 수 있고, 프리랜서나 스타트업도 비용 부담을 최소화한 채 엔터프라이즈급 AI 업무 환경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강욱 크래프톤 AI 본부장은 키라가 로컬 중심 보안 구조와 선제적 제안 기능을 통해 다양한 산업과 직군에서 새로운 업무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오픈소스로 공개한 만큼 글로벌 AI 커뮤니티와의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를 발전시키고, 국내외 오픈소스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산업계는 크래프톤의 AI 비서 기술이 실제 현장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향후 국산 초거대 모델과 결합해 어떤 새로운 서비스로 진화할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