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장을 피로 물들였다”…호주 시드니, 유대인 겨냥 부자 테러에 세계 규탄
현지시각 기준 14일 저녁, 호주( Australia) 시드니의 대표적 관광지 본다이 비치 인근에서 유대교 명절 하누카 축제 행사장을 겨냥한 대규모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한 다수의 사상자를 낸 이번 공격을 두고 호주 당국은 유대인을 노린 명백한 증오 범죄이자 테러라고 규정했으며, 충격을 받은 국제사회는 일제히 규탄과 애도를 보내고 있다.
뉴사우스웨일스주 경찰에 따르면 사건은 현지시각 기준 14일 오후 6시 45분경, 유대인 공동체가 주최한 야외 축제 현장에서 벌어졌다. 당시 현장에는 유대인 가족과 인근 주민 등 약 1000명이 모여 있었다. 인파가 가장 붐비던 시각, 무장한 괴한 2명이 주변 다리와 풀밭 등 여러 방향에서 포위하듯 총을 난사해 최소 16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부상자 중 일부는 위독해 사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경찰은 현장에서 사살되거나 체포된 용의자들이 50세 아버지와 24세 아들로, 부자 관계인 것으로 확인했다. 아버지는 합법적으로 소지 허가를 받은 총기 6정을 범행에 동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팀은 이들의 차량에서 급조폭발물로 추정되는 장치까지 발견해 제거 작업을 진행했으며, 이런 정황은 범행이 즉흥적 폭력 행동이 아니라 사전 계획된 테러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피해자는 10세 소녀에서 80대 노인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가족 단위 참석자가 많아 사상 규모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희생자 명단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겪고 살아남았던 홀로코스트 생존자 앨릭스 클레이트만 씨도 포함돼 국제사회에 깊은 충격을 주고 있다. 평생 차별과 폭력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온 생존자가 노년에 또 한 번 반유대주의 공격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대인 사회의 상실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유대교 국제 네트워크인 차바드 소속 랍비 엘리 슐랑거 씨도 이번 공격으로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호주 정부와 수사 당국은 범행 배경과 배후 세력 규명에 집중하고 있다. 용의자인 아들은 과거 테러 모의에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호주 정보기관 조사를 받은 이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에 사용된 차량에서 특정 극단주의 단체를 상징하는 깃발이 발견됐다는 현지 보도도 이어지고 있어, 조직적 테러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호주 정보기관은 최근 이란 혁명수비대의 호주 내 활동 가능성을 예의주시해 온 만큼, 외부 세력과의 연계 여부도 들여다보고 있다.
한편 참혹한 학살 현장에서는 시민의 희생적 행동이 더 큰 피해를 막았다. 현지 언론 세븐뉴스와 영국(Britain) BBC 등은 시드니에서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43세 무슬림 남성 아흐메드 알 아흐메드 씨가 총격범과 맨몸으로 맞서 총을 빼앗은 장면을 집중 조명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급속히 확산된 영상에서, 파란색 상의를 입은 아흐메드 씨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상황을 주시하다가, 총격범이 탄창을 교체하거나 사격을 멈춘 순간을 노려 전력 질주했다. 그는 검은 옷을 입은 범인을 뒤에서 덮쳐 목을 끌어안고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 끝에 총을 빼앗는 데 성공했고, 총격범은 균형을 잃고 쓰러진 뒤 공범이 있는 방향으로 달아난 것으로 전해졌다.
아흐메드 씨는 빼앗은 소총을 들고 범인을 뒤쫓지 않고 현장에 멈춰 선 채, 출동한 경찰이 자신을 용의자로 오인하지 않도록 총을 바닥에 내려둔 뒤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보이며 신호를 보냈다. 그는 제압 과정에서 팔과 손에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사촌 무스타파 씨는 현지 언론에 “아흐메드는 병상에서도 자신이 한 행동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며 “그는 진정한 영웅”이라고 전했다. 유대인을 노린 증오 범죄 현장에서 무슬림 시민이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한 사실은 종교와 이념을 넘어선 연대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호주 정치권은 충격에 빠진 국민을 위로하는 동시에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긴급 대국민 담화에서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축제의 장이 순수한 악에 의해 짓밟혔다”고 규탄했다. 그는 특히 아흐메드 씨의 행동에 대해 “많은 호주인이 타인을 구하기 위해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며 “그의 용기가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고 강조했다. 크리스 민스 뉴사우스웨일스주 총리도 “의심의 여지 없는 진정한 영웅”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국제사회 역시 일제히 목소리를 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Israel) 총리, 조 바이든 미국(USA) 대통령, 찰스 3세 영국(UK) 국왕 등 각국 정상과 지도자들은 성명을 통해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유가족과 호주 국민에게 위로를 전했다. 이들은 유대인 공동체를 겨냥한 증오 범죄를 강하게 비난하며, 유사 사건 방지를 위한 국제 공조 강화를 촉구했다. 주요 외신들은 이번 사건을 “호주 사회를 뒤흔든 참극이자 반유대주의 폭력의 비극적 재현”으로 규정하며, 서방 국가 전역에서 유대인 시설에 대한 보안 강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도 깊은 유감을 표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공식 메시지를 통해 “많은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것에 대해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며 희생자와 유가족, 호주 국민에게 애도의 뜻을 전했다. 외교부는 사건 직후 주시드니 대한민국 총영사관을 통해 한국인 피해 여부를 확인했으며, 현재까지 우리 국민 피해 보고는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호주 당국과 긴밀한 협조 체계를 유지하며 현지 교민과 여행객의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자유와 낭만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본다이 비치가 혐오와 폭력으로 얼룩진 현실은, 어느 지역도 극단주의 테러로부터 완전히 안전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총구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타인을 위해 몸을 던진 한 시민의 행동은 절망 속에서도 연대와 용기가 살아 있음을 일깨웠다. 국제사회는 이번 테러의 배후와 동기가 어떻게 규명되고, 호주와 각국이 증오 범죄 방지를 위해 어떤 추가 조치를 내놓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