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투자의 핵심”…일본(Japan), 반도체 라피더스에 27조원대 대규모 지원 확대
현지시각 기준 22일, 일본(Japan) 도쿄에서 일본 경제산업성이 반도체 업체 라피더스에 대한 대규모 추가 지원 계획을 공식화했다. 반도체 국산화를 내건 국가 전략 프로젝트에 공적 자금을 대거 투입하는 조치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경쟁이 격화된 국제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낳고 있다. 일본의 산업·안보 전략 전환 흐름 속에서 동아시아 반도체 지형 변화가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경제산업성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아사히신문 보도를 통해 2027회계연도(2027년 4월∼2028년 3월)까지의 연도별 라피더스 지원 계획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우선 일본 정부는 내년 3월까지 라피더스에 1천억엔을 출자하고, 2026회계연도에 1천500억엔 이상을 추가 출자할 방침이다. 출자와는 별도로 연구·개발 위탁 비용 등 명목으로 2026회계연도 6천300억엔, 2027회계연도 3천억엔을 각각 지원하기로 해, 2027회계연도까지 출자와 지원을 합친 규모는 1조1천800억엔을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 정부는 이미 라피더스에 1조7천억엔 지원을 결정해 둔 상태여서, 이번 발표를 통해 전체 지원액은 2조9천억엔, 한화로 약 27조3천억원 규모로 확대된다. 정부는 이렇게 투입되는 대규모 공적 자금과 연동해 라피더스에 대해 중요 경영 사안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를 확보하고, 사업 진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방식으로 감시와 관리 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국가 전략 차원의 투자인 만큼 경영 견제와 성과 관리에 직접 나서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라피더스는 도요타, 키옥시아, 소니, NTT 등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 8곳이 반도체 국산화를 목표로 2022년에 공동 설립한 업체다. 일본은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했지만, 이후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모두에서 미국(USA), 한국, 대만 등 경쟁국에 밀리며 존재감이 약화된 바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을 둘러싼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반도체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자, 일본 정부도 최첨단 공정 재구축을 통한 산업·안보 동시 강화에 나선 상황이다.
라피더스는 차세대 반도체 생산 체제 구축에 약 5조엔이 필요하다고 추산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정부 지원 외 민간 자금 유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규모 설비 투자에 따른 불확실성과 수익성 우려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배경에서 일본 정부가 직접 재정 지원과 함께 황금주를 통해 프로젝트를 견인하겠다는 구상을 분명히 하면서, 공공 주도 혁신 모델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라피더스는 2028년 3월 이전 2나노미터급 반도체 제품 양산을 시작한다는 일정표를 내놓고 있다. 이후 2029년께 흑자 전환을 이룬 뒤 2031년 전후로 주식시장 상장을 추진한다는 중장기 계획도 제시했다. 글로벌 선두 업체들이 이미 3나노 이하 최첨단 공정 경쟁에 돌입한 가운데, 일본의 신규 진입 시도는 미국과 대만, 한국이 주도해온 공급망에 도전하는 행보로 평가된다.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산업상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라피더스를 “정부가 추진하는 위기관리 투자의 핵심”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국익을 위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국가적 프로젝트로, 계속해서 성공을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기관리 투자라는 표현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망 불안 속에서 반도체를 국가 안보와 직결된 전략 자산으로 본 일본 정부의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의 이번 결정은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대규모 보조금을 제공하고, 유럽연합(EU)도 유럽반도체법을 토대로 투자 유치에 나서는 국제 흐름과 맞물려 있다. 각국이 국가 재정을 동원해 첨단 공정을 자국 내로 끌어들이는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일본의 공격적인 투자 확대는 동맹국과의 협력 강화와 동시에 공급망 재편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 전망이다.
국제사회와 주요 외신은 일본의 시도에 대해 신중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본이 그동안 축적한 소재·부품·장비 기술 역량과 글로벌 기업 네트워크는 강점으로 평가되지만, 이미 앞서 있는 선두 업체와의 기술 격차, 민간 자금 부족, 인력 확보 문제 등이 구조적 과제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라피더스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동아시아 반도체 지형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 막대한 재정 부담과 산업 전략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각국 정부가 반도체를 둘러싸고 이전과 다른 수준의 국가 개입에 나서는 가운데, 일본의 라피더스 지원 확대가 글로벌 공급망 경쟁 구도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