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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조기위험 2분 예측…고대안암, 비조영 MRI 제시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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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 노폐물 배출 통로인 글림프 시스템 기능을 조영제 없이 2분 만에 측정해 알츠하이머병 위험을 예측하는 기술이 나왔다. 기존에는 조영제를 주입하고 여러 차례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반복해야 해 환자 부담과 비용이 컸지만, 이번 방식은 단시간 비침습 검사를 통해 조기 진단 단계에서의 활용성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다. 의료계에서는 알츠하이머 진단 패러다임을 후기 구조변화 중심에서 초기 기능변화 중심으로 이동시키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은 영상의학과 김병준 교수, 유성혜 교수 연구팀이 글림프 시스템 기능을 빠르게 측정하는 새로운 MRI 기반 영상 진단법을 제시한 논문으로 대한신경두경부영상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우수논문상을 받았다고 21일 밝혔다. 논문 제목은 글림프 기능의 새로운 조기 영상 바이오마커 2분 위상차 MRI를 통한 대뇌 피질 동맥 박동성 지수로, 짧은 검사 시간 안에 글림프 기능을 반영하는 정량 지표를 추출한 점이 핵심 성과로 인정받았다.  

글림프 시스템은 뇌척수액과 간질액이 교환되면서 노폐물을 씻어내는 뇌의 배수망 구조를 뜻한다. 이 기능이 떨어지면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 물질로 꼽히는 아밀로이드 단백이 효과적으로 제거되지 못해 뇌에 축적될 수 있어, 기능 저하를 조기에 포착하는 바이오마커가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동안 글림프 기능을 영상으로 평가하는 방법은 조영제를 주입한 뒤 수 시간에 걸쳐 반복 촬영을 거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어 실제 임상 현장에서 널리 쓰이기에는 한계가 컸다.  

 

연구팀이 고안한 방식은 글림프 시스템의 구동력에 주목했다. 글림프 흐름은 뇌내 동맥의 박동이 만들어내는 압력 변화에 의해 촉진된다는 점에 착안해, 대뇌 피질의 원위부 동맥 박동성을 위상차 MRI라는 속도 측정 기반 시퀀스로 정량화했다. 위상차 MRI는 혈류 속도와 방향을 측정하는 기술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2분 내 촬영 가능한 시퀀스로 최적화하고, 후처리 과정을 통해 동맥 박동성 지수를 산출해 글림프 기능의 대리 지표로 활용한 구조다. 기존 글림프 영상법이 조영제 확산 패턴을 수차례 추적하던 방식에 비해, 단일 시점에서 동력원을 직접 계측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바꾼 셈이다.  

 

새 진단법의 가장 큰 차별점은 조영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영제 관련 부작용 우려가 있는 환자나 고령층에서도 비교적 안전하게 반복 검사가 가능하며, 검사 시간이 약 2분 수준으로 짧아 외래 진료 과정에서도 부담 없이 적용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비침습·고속 측정 특성이 향후 인지기능 저하 전 단계나 경도 인지장애 환자군에서 알츠하이머 진행 위험을 조기에 가려내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알츠하이머병 영상 진단은 뇌위축을 보는 구조 MRI, 아밀로이드 축적을 확인하는 양전자방출단층촬영, 대사 패턴을 파악하는 기능 영상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들 검사는 대부분 질환이 상당 부분 진행된 이후의 변화를 포착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번에 제시된 글림프 기능 지표는 병리 단백 축적 이전 단계에서 뇌의 청소 기능 저하를 정량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 진단 스펙트럼을 초기 영역까지 확장하는 도구로 평가된다. 김병준 교수는 새 시퀀스를 통해 기존에 알츠하이머병 후기 단계에서만 활용되던 MRI의 역할을 질환 초기 영역까지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시장성과 활용 측면에서 보면, 검사 시간이 짧고 조영제가 필요 없다는 특성은 건강검진 센터나 뇌 건강 스크리닝 프로그램에도 적용하기 쉽다는 장점으로 연결된다. 치매 가족력이 있거나 경도 인지장애를 호소하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기존 인지검사나 구조 MRI에 더해 글림프 기능 검사를 추가하면 개인별 위험도를 보다 입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생활습관 교정의 효과를 추적 모니터링하는 지표로도 쓰일 수 있어, 예방 중심 정밀의료 서비스와의 결합 가능성이 주목된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알츠하이머 조기 진단 기술 경쟁이 가속하는 가운데, 혈액 기반 바이오마커 개발과 인공지능 기반 영상 판독이 주요 축으로 부상해 있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혈중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을 정밀 계측해 조기 위험군을 선별하는 연구가 활발하며, 대형 병원과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MRI·PET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는 인공지능 모델도 개발 중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뇌 노폐물 배출 기능을 직접 영상화하려는 시도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고속 비조영 글림프 지표를 제시한 국내 의료진의 이번 연구는 차별화된 축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  

 

다만 글림프 기능이라는 개념 자체가 비교적 최근에 정립된 만큼, 새로운 영상 지표와 실제 임상 결과 사이의 인과 관계를 장기적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과제도 남는다. 건강한 성인과 다양한 단계의 인지장애 환자, 다른 퇴행성 뇌질환 환자를 아우르는 대규모 코호트에서 동맥 박동성 지수와 인지 기능, 아밀로이드 축적 정도의 연관성을 추적 관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제 학술지 등재와 다기관 검증 연구를 거쳐야 글로벌 표준화 가능성도 구체화될 전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롯한 규제 당국의 관점에서는 이 같은 새 영상 지표를 어떻게 분류하고 평가할지에 대한 논의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아밀로이드 표적 약물과 같은 치료제에 비해 위험도가 낮은 영상 기법이라고 하더라도, 조기 진단 지표가 실제 처방과 임상 의사결정에 활용되려면 재현성, 민감도, 특이도에 대한 체계적 검증이 필요하다. 향후 디지털 영상 분석 소프트웨어와 결합해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형태로 발전할 경우,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인허가나 인공지능 의료기기 심사 규정이 적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유성혜 교수는 글림프 기능 측정을 통해 알츠하이머병으로 진행될 위험이 있는 환자를 조기에 찾아내는 방법이 마련돼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운동과 수면 질 개선 등 글림프 기능을 향상시키는 생활습관 전략과 연계해 질환 진행을 늦추거나 예방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업계와 의료계는 비조영 단시간 검사라는 특성이 임상 현장에서 얼마나 빠르게 수용될지, 그리고 알츠하이머 예방 중심 정밀의료 체계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촉매가 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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